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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Jan 26.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8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보잘것 없이 느껴질 때

캐나다에서 겨울이 될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 한 명이 있다. 현재는 미국에 있는 회사로 직장을 옮겨서 만나기 힘든 친구가 되었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한 친구였다.  

내가 캐나다 퀘벡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 한국에서 캐나다로 왔다는 걸 안 사람들은 첫 번째로 묻는 질문이 몬트리올에서 생활 해 보니 좋으냐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몬트리올의 긴 겨울과 프랑스어를 익혀야 하는 것 외에 모든 게 좋다고 대답했었다. 실제로 겨울은 너무 길고 추웠으며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은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내게 벅차기만 했다.

그 날은 그 친구와 만나 커피숍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날이었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는 첫 직장을 구하는 문제와 지독하게 춥고 긴 겨울 날씨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터라 나는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겨울은 너무 길고 춥고, 작업도 잘 안되고 이력서를 내도 연락 오는 곳이 없으니까  내가 진짜 이 일을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자신감도 없어져. 가지고 온 돈도 떨어져 가니까 더 조바심이 나고 초조해.]
[다른 일을 하면서 이력서를 내는 건 어때?]
친구의 질문에 나는 간단하게 그렇지 라고 대답했지만 다른 일이라 해 봤자 타지에서 경험도 언어도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 주방 일이나 편의점 뒷 일이라도 구하면 다행 일 것이다. 돈이 떨어지는 것도 겁났지만 내가 캐나다까지 와서 하던 게임 일을 못하게 되면 가족들, 친구들,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더 겁이 났다. 나는 주제를 돌려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때? 처음에 몬트리올에 왔을 때 좋았어?]
[응 좋았지.]
[겨울은 어땠어?]
[내 고향(우크라이나) 도 엄청나게 춥기 때문에 겨울은 견디기 힘들지 않았어. 밖은 춥지만 따뜻한 옷을 입으면 되고 집에서는 히터를 틀어 놓으면 따뜻하잖아. 그거면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상관없어. 우리 집은 고향에서 엄청나게 가난해서 온수도 히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집에서 가족들이 생활을 했거든. 물론 몬트리올로 이민을 와서도 초기엔 많이 힘들었고 5명의 가족은 아주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을 해야 했어.]
친구는 들고 있던 라테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구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족 모두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나도 카페에 나가서 파트타임 일을 했는데 그때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거든.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게임 그래픽 공부로 가득 차 있었어. 카페에서 일을 마치기 전  바닥을 걸레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할 때가 가장 좋았어. 왜냐면 곧 집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게임 그래픽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친구의 눈은 그때를 회상하며 빛이 났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다시 카페에 나가서 일을 했어.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해서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 가지고 있는 시간을 오롯이 공부에만 쏟아부을 순 없으니까. 그래도 계속했어. 그때 그렇게 해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나는 한국에서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서  반 지하에 단칸방에 살기도 하고 빌라 꼭대기 층에 살기도 했지만 난방이 되지 않거나 온수가 나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물론 추운 겨울밖에 나갈 때 입을 든든한 겉 옷도 몇 개씩 있었다. 몬트리올에서도 처음 얻은 방은 비록 공동으로 샤워실과 화장실을 써야 하고 두 번째 얻은 아파트도 아주 작고 볼품없었지만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연의 깊이가 더 깊고 얕고의 기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친구의 얘기를 듣고 나도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고 살면서 그것들을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며 더 갖지 못해 불평하고 화가 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친구와 수다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복잡하고 지쳐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후 꿈에 그리던 첫 직장을 잡게 되었고 나는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답장이 왔다.
[정말 축하해!! 네가 해 낼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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