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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Feb 02.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9

나는 남편이 있어!

캐나다 퀘벡 주는 프랑스 어를 공식적으로 제1 언어로 지정하고 있고, 프랑스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며  많은 프랑스 인들이 학업 직장 정착을 위해 퀘벡으로 많이 이주를 한다. 더불어 퀘벡의 프랑스 친화적인 분위기 덕분에 프랑스인들은 많은 혜택과 함께 퀘벡 정착을 시작한다. 내가 다녔던 A회사 같이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들은 지역 회사인 경우가 많아 프랑스어가 익숙지 못한 나 같은 외국인을 위해 회의나 그 외 회사의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을 경우 영어를 함께 써 주지만, 프랑스어가 익숙한 사람들끼리는 굳이 잡담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영어를 써야 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사무실에서는 늘 프랑스어 대세였다. 외국계 회사인 경우 아무래도 구성원들도 외국인이 많았고 영어의 사용빈도가 더 높기 때문에 영어가 더 빈번히 사무실에서 들렸지만 퀘벡 정부에서는 반드시 프랑스어를 더 권장할 것 과 영어를 쓰더라도 꼭 프랑스어도 같이 사용하고 표기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 대부분의 퀘벡 토박이나 프랑스 인이라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에 그들과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끔 그 들 중에 영어를 거의 못하는 개발자들도 있긴 했다.


A 회사에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UI)인 막심과 함께 일을 할 때였다. 불행히도 막심은 프랑스 인으로 영어가 아주 서툴렀고, 나는 프랑스어가 몹시 서툴렀다. 그는 나를 위해 서툰 영어로 말을 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알아듣기 힘들었고, 나는 그를 위해 안 되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작업한 이미지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와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은 평일 오후 나는 일을 하다가 막심에게 물어볼 일이 생겨 그의 자리로 갔다. 내가 더듬거리는 프랑스 어로 물어보면 그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대답을 했다. 어찌어찌 일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은 후 자리로 돌아가려든 찰나 막심은 내게,
[Do you have boyfriend? (너 남자 친구 있어?)]
라고 물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 boyfriend라고 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What?! I have husband.(뭐? 나 남편 있어.)]
라고 자신 있게 쏘아 부쳤다.  남편도 있는 아줌마니까 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말라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대답이었다. 갑자기 일 얘기하다 말고 이게 무슨 생뚱맞은 질문인가? 내가 얼마나 쉬워 보였길래 일 적인 대화 외에는 나눠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저런 질문을 하는 가 싶어 은근슬쩍 기분이 불쾌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막심은 귀 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마구 양손을 휘저었다.
그는 다급하게,
[No! No!]를 연신 외쳐댔다.
그는 다시 천천히 영어로,
[ Do you have references? (너 참고자료 있어?)]
라고 물었다.
그렇다. 막심은 내게 References라는 말을 묻고 싶었던 거였는데 나는 그의 발음을 완전히 잘못 알아듣고 오해했던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막심의 영어 발음은 프랑스 어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프랑스 어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 녀석이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 지의 여부를 묻는 다고 생각했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단단히 믿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얼굴이 빨개 질 차례였다. 나는 막심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심 너무 창피하고 미안했다.  막심 역시  빨개진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책상 위에 있던 자신의 여자 친구와 딸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어여쁜 두 명의 여자가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니 더 민망하고 더 미안해졌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은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정말 귀엽고 예쁜 딸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 후 재빨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에 카페테리아에서 줄리엣과 마주쳐 커피를 마시며 이 사건의 전모를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
[ 막심은 무려 2살짜리 예쁜 딸도 있어.]
라고 말하며 웃었다. 
[알아. 사진 봤다고. 정말 창피해. 내가 왜 그랬을까?]
[괜찮아.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데 뭐. 적어도 막심은 네가 남편이 있다는 사실 하나는 정확히 알았네.]
줄리엣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일을 하러 자리로 돌아갔다.


이 자리를  빌어 막심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그의 당황한 얼굴이 떠오른다. 

[막심, 잘 지내고 있지? 그때 당시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그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모두들 정말 즐거워 하드라고.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나 분위기를 띄울 때 너와의  얘긴 정말 좋은 소재가 되었어.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맙고. 언젠가 다시 같이 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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