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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Feb 23.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12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 자리가 작던 크던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의미 있게 살고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거라고 느꼈다. 20 대 초반에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20 년 조금 모자라게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나에게 회사는 전부나 다름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랬기에 그곳 안에서 뭔가 이루고 싶었다. 나이 40 줄에 와서야 겨우 깨달은 거지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 집착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A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틴의 지나친 간섭은 날이 갈수록 더 해갔고, 2년을 넘게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익숙한 그 공간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고 서둘러 옮길 회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보통 링크드 인에서 온라인으로 채용 공고가 난 회사에 지원을 하고 회사에서 나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면 연락이 오는데 완벽하게 회사의 그래픽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대부분 사전에 테스트를 거친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든데 일을 하면서 테스트를 마쳐야 하므로 거의 밤 잠 못 자고 주말도 반납하고 테스트를 해야 할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고 작업의 퀄리티도 무시를 할 수가 없어서 그야말로 죽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테스트를 치러 내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테스트를 할 때마다 몸무게 2kg은 우습게 빠진다. 이렇게 회사를 옮길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테스트 때문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나와 궁합이 잘 맞고 망하지 않아 게임 바닥에서 나의 마지막 회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다.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던 중 테스트까지 해서 낸 회사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통과하지 못했다. 내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원해 벅차게 느껴졌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어찌어찌 제출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건 진즉에 느꼈다. 다른 회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마음이 떠난 A 회사에 대해 하루하루 불만만 더 쌓여갔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잠들 때까지 틈만 나면 남편에게 회사에 대한 불평과 이직 자리를 얻지 못하는 데 대한 짜증을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남편의 인내심은 보살의 그것과 같았다.

그렇게 며칠 후 남편은 나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왔다.
[우리 회사에 마침 3d 배경 디자이너를 뽑는데 지원해 볼래? 너만 괜찮다면 내가 얘기를 미리 해 놓을게]
[정말?]
망망대해를 다 부서져 가는 작은 배에 의지해 마실 물도 없이 헤매고 있는데 소나기를 만난 것 같았다. 남편의 도움으로 그 후 바로 인터뷰 날짜가 잡혔고, 무엇보다 테스트 없이 진행하겠다는 소식이 나를 기쁘게 했다. 인터뷰는 아주 편안하고 화기애애 하게 마무리되었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잠깐…….. 이렇게 너무 매끄럽게 진행이 되면 뭔가 잘 못 되고 있다는 증거인데……..

아니나 다를까 연봉에서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남편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현재 A 회사에서 받는 연봉보다 약간 낮은 금액을 제시받았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한번 숫자를 확인했다. 지금 받는 연봉도 딱히 높은 금액은 아니었으므로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구나 싶은 생각에 속이 쓰려왔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퇴근 후 풀이 죽어 있는 나에게 남편의 설득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런 상태로 네가 A 회사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연봉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 회사에 오면 네가 배울 것도 많아. 열심히 잘만 하면 연봉도 올릴 수 있으니까 일단 옮기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글쎄, 잘 모르겠어……]
패배감이 몰려와 결정하기 어려웠다. 링 위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코너에 앉아 다음 링을 기다리고 있는 곧 퇴물이 될 권투 선수 같았다. 마음도 몸도 무거웠다. 연봉까지 깎아 가면서 옮길 만큼 가고 싶은 회사도 아닌데 그대로 그 조건을 받아 들이 자니 자존심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다시 링 위에 올라가 두들겨 맞고 싶지도 않았다. 고민으로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오후 남편 회사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주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쉽사리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약속 시간에 임박해 전화기를 들고 비상구 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말했다.
[제시한 조건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이 회사에서 연봉 인상분과 약간의 인센티브도 약속을 받았는데 그 금액으로는 힘들겠어요. 다음에 꼭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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