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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Mar 02.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13

지금이 바닥 같지? 응 , 아니야...

연봉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쩐지 모든 일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다. 이렇게 결론이 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라고  천천히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채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이 지났을까? 메일 알람이 울렸다. 좀 전에 전화 통화를 한 남편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나는 메일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메일 읽기를 다 끝내자마자 책상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들고 다시 비상구 계단으로 잽싸게 나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인사 담당자한테 메일을 받았는데, 제시했던 연봉은 바꿀 수 없지만, 지금 회사에서 받는 연봉만큼 모자란 차액을 현찰로 입사하는 날 주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래.]
나는 들뜬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잘 됐다. 난 괜찮은 조건 같은데. 너는 어때?]
[나도 괜찮은 것 같아.]
[그래. 여기로 옮겨서 열심히 일하면 연봉이야 내년에 올리면 되지.]

보통 회사를 이직할 때 그 전 회사에서 받았던 연봉은 다음 회사에서의 연봉 책정에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연봉 계약을 원하는 금액으로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인사 담당자의 메일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니 이것마저 안 받아들이면 진짜 끝이니까 잘 생각하라는 압박을 느꼈다. 그렇다면 여기서 슬쩍 못 이기는 척하고 넘어 가 주지!! 드디어! 드디어!! 여기를 나갈 수 있게 되었구나. 행복했다. 사무실 복도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새로운 회사를 간다는 설렘보다는 지금 여기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이 결정되었을 때 최소 2주 전에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한다. 남아 있는 휴가를 다 소진하고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퇴사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은 나의 뜬금없는 발표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길 바란다며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퇴사 전까지 한 번은 이안과 한 번은 인사 담당자와 2번의 긴 면담을 했다. 그동안 같이 일해서 좋았고 회사를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맙다는 형식적인 말을 시작으로 왜 회사를 떠나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면담을 하기 1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왜 회사를 나가고 싶은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바닥은 매우 좁디좁다. 그 말 인 즉 말과 행동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 적으로, 곧 게임 업계를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퇴사 이유를 너무 솔직히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므로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내가 했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여기서 있는 동안 너무 즐거웠고 프로젝트도 잘 끝나서 기뻤다. 모두들 잘 대해줘서 고맙고 내가 떠나려는 이유는 다른 회사에서 좋은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현재 팀에서 오래 있었고 회사 안에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옮기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면 최고의 모범 답안은 아니어도 나쁘진 않다.  미주알고주알 왜 퇴사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본 적도 있지만 경험상 관철되었던 적은 없었다. 사실 한국이나 이곳이나 인사 담당자나 그에 준하는 담당자들이 퇴사자가 하는 말에 과연 관심이 있을까?

얼마 있지도 않은 소지품들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는데 시원 섭섭했다. A회사는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많은 회사였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렇게 떠나게 되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더 다닐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미 마음이 떠난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곧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버스 내부에 에어컨이 없어 활짝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더운 바깥공기가 얼굴을 휘감아 돌았다. 더운 공기에 몸이 축축 늘어졌지만 왠지 노곤해지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바닥 같고, 상황이 너무 거지 같아서 피하고 나면 마치 새로운 신세계가 열릴 듯 느껴지지만 우리는 그 밑에 지하 1층, 2층, 3층 그리고 더 밑바닥까지 있다는 걸 다음 단계로 나아가 봐야 알게 된다. A 회사에서 막판에 마음고생을 했던 터라 그것만 끝나고 나면, 거기만 벗어난다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남편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 옮기고 일을 하게 되면서 나의 게임 업계 종사 18년 역사상 가장 최악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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