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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May 18. 2021

낮은 자존감 회복 첫 단계

내 탓이 아니란 걸 인정하자.



나는 늘 부모님의 이혼이 그리고 우리가 단란한 가족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나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부모님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자주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지만 이런 중요한 문제를 나에게 묻는다는 것에 한껏 고무되어있었다. 게다가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부터 그 사람의 고민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좋은 징조로 보였다. 아마도 엄마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혼을 결심해 놓았지만 매 순간마다 자식들이 마음에 걸려 내렸던 결정을 수도 없이 포기하고 다시 마음먹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관계가 애초부터 나빴던 것도 아니었고 집안 분위기가 이렇듯 적막하고 건조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믿기 어렵겠지만 늘 웃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주말엔 텐트를 가지고 강으로 산으로 캠핑도 가고, 놀이동산도 가고 집안 살림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월급날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읍내 작은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며 함박 스테이크를 썰며 기분도 내곤 했다. 언제부터 그리고 무엇 때문에 둘 사이의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 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가지 큰 사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지금은 판단하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다툼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다 파악하고 있고 그 분석이 옳다고 믿었지만, 나이가 든 지금 기억들을 더듬어 보니 나의 그런 행동들이 실소를 자아 낼만큼 어리석고 유치했다.  


가족 안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다 지워져 버릴 만큼 부모님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일관적으로 엄마의 이혼 결심을 지지했다. 아빠는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고 싶어 했지만 어렸던 나는 이지경이 되었는데 서류상으로 부부인 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 싶어 아빠의 고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속 서로의 발목을 붙들고 상처를 내며 남은 인생을 사는 게 의미 없고 잔인해 보였다.


결국 부모님은 별거에 들어섰고 한 밤 중 쫓기듯 간단한 짐만 챙겨 집을 나서는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 한참을 울었다. 나와 동생이 10 대 때 일이었다. 그렇게 둘은 과거를 뒤로 하고 다른 시작을 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최소한 같은 공간에 붙어 있으면서 싸우며 불행해 하진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마는 아빠와의 별거 이후 더욱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빠는 별거가 일생의 수치며 실패한 인생의 증거라도 되는 양 모든 걸 포기한 채 술만 마셔댔다. 그리고 나와 동생마저 본인의 인생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았고 나는 점점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고심을 하고 스스로 질문을 퍼부어 봤지만 결과는 같았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더 답답했다. 부모님이 방황하는 모습에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지만  내가 직장을 잡아 일을 시작하면서 분노는 연민과 죄책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말할 수 없이 안쓰럽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갈등을 내 힘으로 없애버리고 치유하고 싶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이제 일을 막 시작했으니 나에겐 아직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순진한 생각을 했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 와 남의 집 지하 작은 단칸방 하나를 빌려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친한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전재산을 날린 아빠의 빚도 갚아 주고, 매일 돈이 없어 불행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에게 넉넉한 생활비를 준다면 둘이 다시 함께 수는 없더라도 조금은 행복하게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 하나 희생해서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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