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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9. 2024

두 얼굴의 월요일

월요일 아침.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기독교의 7일 주간을 기준으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1년 공식적으로 7일의 일주일을 포고했고 일요일을 휴일로 지정한다. 이는 유럽 전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진다. 오늘날에는 일요일뿐 아니라 토요일도 휴일이 되었고, 심지어는 금요일부터 휴일의 분위기가 시작된다. 하긴 사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으니 쉬는 것도 더 많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의 구분은 그나마 참 다행스럽다. 월요일이 있어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전 주에 벌어진 마음에 들지 않은 말과 일들을 잊고---잊지는 못 하더라도 조금은 덮어놓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새로운 한 주 즐겁게 지내세요.’라는 인사는 월요일이 주는 매력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다른 면에서 월요일은 다시 시작하는 노역과 피곤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월요병’이라는 말은 주말의 자유분방함과 방종의 찌꺼기가 남아있음을 말하지만 다시 시작되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두려움과 짜증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월요일의 두 얼굴. 그러니 인사말도 하나 더 첨가된다. ‘아이고, 다시 고생이 시작되는군요.’ 하지만 우리 주변에 이렇게 인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담긴 희망과 기대라는 감정이 좌절과 실망보다 앞서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늘 희망을 얘기한다.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더 나은 순간에 대한 기대에 기댄다. 그것이 삶의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수많은 현자들과 시인들이 희망을 거론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앞서 이미 마음속에 그것을 품어왔다.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것으로 인해 어두운 삶에 작은 빛줄기라도 찾아들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안개가 짙은들 산까지 지울 수야.

어둠이 짙은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

안개와 어둠 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 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안개와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믿음. 물소리, 새소리, 피는 꽃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 우리를 꿈꾸게 한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한다. 영겁의 세월 속에 한결같이 피어났던 마음의 꽃. 그것이 한 주의 시작 월요일에 보는 아름다운 환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오늘 시작해 새로운 끝을 맺을 수는 있다.’ 나는 월요일뿐 아니라 매 순간을 맞이하는 마음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면 굳이 거기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지금 시작한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끝을 보게 되지 않을까? 


월요일을 즐기라. 지금 이 날이 나를 움직이게 하지 말라. 내가 이 날의 주인이니까. 두 얼굴의 월요일이 내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제의 나를 잊으라. 오늘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 새로운 날, 새로운 얼굴,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새로운 하루의 끝에 또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월요일이 그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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