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외로움이 겨울비에 젖어
이른 어둠 속에 침묵을 깨운다.
지는 황혼보다 더 서러워
소리 없이 내리는 저 비,
그리움마저 흐느낌을 멈추면
사랑은 희미해지고, 흐려진 기억만큼
고독은 커져만 간다.
어둠 속에 빛을 찾고, 뜨거운 태양에
그늘을 찾아들 듯
사랑이 흐려지면 다시 이 밤
새로운 만남을 꿈꾼다.
가라 어리석은 믿음이여
미련만 남은 추억들이여.
해가 높으면 그림자가 길듯이
열정의 꼭대기에서는 언제나
절망의 깊은 골을 만나는구나.
젊음이여 꿈이여 다시없을 사랑이여
떠나라 나를, 지워라 초라한 내 기억을.
비 내리는 이 밤
따스한 열기에 목말라
내 지친 육신이 간절히 바라는
은둔의 환희
절멸의 평화
세월의 망각.
그친 듯 다시 내리는
초겨울 찬비에 한기를 느껴도
아직은 두터운 코트를 입진 않으리라.
여전히 젊은 나의 영혼이 붙들고 있는
새로운 사랑
깨어난 향수(鄕愁)
예리한 기억.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 무수한 얼굴, 손길, 숨결에
민감해진 나의 살갗이
다시금 불러낸 그리움,
오라 다시, 사랑이여
나의 저린 가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