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참 놀라운 창조물이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고 상처라도 입게 되면 한동안 온 신경이 그곳에 쏠린다. 보이지 않는 몸속의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과식해도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온다. 한참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진다. 눈도 침침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잠시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쐬면 금방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난다. 몸은 내 것이지만 내 것 같지 않은 때가 많다. 젊은 시절에도 피곤하거나 아픈 적은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확실히 몸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통풍 약을 십여 년 전부터 먹어왔다. 당뇨 약을 먹기 시작한 것도 4-5년은 된다. 그러니 우스개처럼 약 기운에 산다고 말한다. 나뿐 아니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나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도 비슷하다. 증상도 제 각각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책상 위에 약병이 늘어가는 것이라 했던가. 술 좋아하는 동생은 대동맥 관이 부풀어 올랐다나. 어떤 친구는 심정지에서 살아난 뒤 가슴에 ‘제세동기’라는 기계를 넣고 산다. 몇 년 전에는 가까웠던 후배 한 사람이 산책 중에 쓰러져 세상을 떴다. 함께 교수 생활을 했던 동료 한 사람은 퇴직 3년 만에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주변에 알던 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요즘은 80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사람은 그보다 젊은 나이에 투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니 제각기 타고난 수명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요즘 부쩍 몸속 보이지 않는 구석들이 궁금해진다. 평범하게 숨을 쉬고 먹고 움직이고 잠자는 동안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삶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치아가 흔들리고 먹는 것이 힘들어지는 순간 활력도 사라진다. 그리고 나이 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움직일 수 있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알겠다고. 이럴 수 있는 날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늙음과 죽음은 사람의 숙명이지만 그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 지금의 좋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즐기자는 말이 왠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을 생각나게 하니 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치매라는 병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 지나온 인생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잃게 되는 것.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하는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것. 그렇게 될 때 진정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참 인간은 약하고 약한 존재다.
가끔 병원엘 가면 아픈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놀라게 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덩달아 아파진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주변 사람들을 너무도 힘들게 하겠지. 선배 한 분은 부인이 뇌수술을 한 뒤 지난 30년의 기억을 잃은 것 같다고 한다. 칠십이 넘도록 일을 하던 그가 요즘은 집에서 아내의 간병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만나 식사도 하고 얘기도 하던 그 선배를 못 본 지 여러 달이 됐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 전에 본 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수년간 간병하던 한 노인에게 의사가 물었다.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어찌 그리 헌신적일 수 있냐고.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지. “하지만 나는 아내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는 걸까?
한 해가 끝나간다. 참 시간이 빠르다. 나는 사실 세월이 흐르고 몸도 마음도 늙어가는 것을 애써 의식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몸이, 주변이 자꾸 변화된 나의 상황을 깨닫게 한다. ‘카르페 디엄’ ‘오늘을 즐겨라!’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말이다. 즐기라는 것이 꼭 쾌락에 빠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소중한 날들을 아껴 생의 환희를 만끽하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와닿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오늘을 감사하라.’ ‘내 몸에 감사하라.’ 스스로 움직이고, 기억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듯 아직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사랑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몸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