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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까, 우화일까?

까마귀와 여우 : 장 드 라 퐁텐

by 최용훈

까마귀와 여우

장 드 라 퐁텐(1621~1695)


나무 꼭대기에 까마귀가 내려앉았어요.

부리로 치즈 한 조각을 물고 있었죠.

그 냄새에 끌려 나무 아래에서 여우가 말했어요.

그의 말은 대체로 이랬죠.

“이보시오, 까마귀 선생! 좋은 날이에요, 좋은 날!

아주 멋져 보이시고, 우아하고 고상하시네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선생이 부르는 노래들이 아름다운 날개 깃털과 어우러지면

선생은 우리가 선택한 이 숲의 불사조예요. “

이 말을 듣자, 까마귀는 황홀함과 경이로움에 빠졌답니다.

자신의 멋진 목소리를 뽐내려고,

까마귀는 부리를 크게 벌렸고, 그러자 입에 물고 있던 치즈가 떨어졌어요.

여우는 치즈를 낚아채곤 이렇게 말했죠. “멋진 까마귀 선생님!

아첨꾼은 자기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 덕에 사는 것이랍니다.

이 교훈은 정말 치즈 한 조각의 가치는 있는 것이에요. “

수치심으로 상처를 입은 까마귀는

조금 늦었지만 맹세했어요. 다시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노라고.


* 라 퐁텐의 프랑스어 시의 영문 번역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The Crow and the Fox

Jean de la Fontaine


At the top of a tree perched Master Crow;

In his beak he was holding a cheese.

Drawn by the smell, Master Fox spoke, below.

The words, more or less, were these:

“Hey, now, Sir Crow! Good day, good day!

How very handsome you do look, how grandly distingueé!

No lie, if those songs you sing Match the plumage of your wing,

You’re the phoenix of these woods, our choice.

” Hearing this, the Crow was all rapture and wonder.

To show off his handsome voice,

He opened beak wide and let go of his plunder.

The Fox snapped it up and then said, “My Good Sir,

Learn that each flatterer Lives at the cost of those who heed.

This lesson is well worth the cheese, indeed.”

The Crow, ashamed and sick,

Swore, a bit late, not to fall again for that trick.


라 퐁텐은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이자 동화작가였다. 그의 우화들은 이후 유럽의 많은 우화작가들에게 전범이 되었고, 그는 프랑스 학술원의 일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우화 같은 이 17세기 프랑스 시를 읽으며, 나는 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시적 운율과 상징과 은유 등은 과연 무엇일까, 한 편의 시가 담고 있는 의미와 그것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본질적인 시의 정의와 형식은 있는 것일까. 내용에 따라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구분되고 형식에 따라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나뉜다는 교과서적인 구분을 생각해 보면 사실 오늘날의 시는 그 내용과 형식에 별다른 규범이나 규칙이 없는 것 같다. 시라고 규정지을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과연 시는 어떤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여우와 까마귀의 우화는 과연 시로서 가치 있는 것일까. 긴 이야기를 요약해 행과 연으로 구분하면 동화조차 시가 되는 것일까? 그런데, 라 퐁텐의 시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린 딸의 침대 머리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젊은 아빠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느껴진다. 그래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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