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여성시인들(4)

엘리자베스 비숍 : 대화

by 최용훈

미국의 여성시인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은 1911년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비숍이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비숍이 다섯 살이 되던 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외가에서 양육되던 비숍은 이후 친가의 부유한 조부모의 돌봄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비숍은 생전에 미국 문단에서 인정은 받았지만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1979년 그녀의 사후 그녀의 시가 새롭게 조명되었고 마침내 20세기 ‘가장 중요한 미국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되었다. 비숍 자신은 완벽주의적인 기질로 그다지 많은 시를 쓰지는 않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시를 끊임없이 고쳐 쓰곤 하였다. 그녀는 불과 101 편의 시를 남겼을 뿐이었다. 그녀의 시는 사물의 세계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시적 평정(poetic serenity)의 분위를 보이고 있었지만 시에 내재된 주제들은 관계에 대한 갈망, 슬픔이나 그리움과 같은 사적인 경험 등을 다루고 있다.


비숍은 뉴욕에 있는 바사르 대학(Vassar College)에 다니던 시기에 평생의 친구가 된 시인 마리안 무어(Marianne Moore)를 만나게 된다. 졸업 후 그녀는 뉴욕에 살면서 프랑스, 스페인, 아일랜드, 이태리, 북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였다. 그녀의 시는 그녀가 다녔던 곳들, 그녀가 보았던 장면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1938년 키 웨스트(Key West)로 이주한 비숍은 그녀의 첫 번 째 시집 ‘북과 남’(North and South, 1946)을 출간하였고, 이후 두 번째 시집 ‘북과 남/ 어느 차가운 봄’(Poems: North & South/ A Cold Spring, 1955)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비숍은 1944년 키 웨스트를 떠나 건축가였던 동성의 애인 소아레스(Soares)와 함께 그녀의 조국인 브라질에서 14년을 살았다. 1967년 소아레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그녀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매사추세츠 등지에서 주로 머물다가 1970년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해 그녀는 자신의 시 모음집(The Complete Poems)으로 시 부문 전미도서 상(National Book Award in Poetry)을 수상하였다. 그 이후, 특히 1978년 ‘지리학 III’(Geography III)의 출간과 더불어 그녀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비숍은 시인일 뿐 아니라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시들은 중요한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본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특권층의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 가운데 상당수가 노동자 계급의 배경, 즉 분주한 공장들, 농장과 어촌들을 담고 있었다. 평론가 어니 힐버트(Ernie Hilbert)는 이렇게 쓰고 있다. “비숍의 시학은 평온한 관찰, 기술자와 같은 정확성,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세밀화가의 신중함과 집중력으로 특징 지워진다. 비숍의 생애 후반 미국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세련되고 매끄러운 시들과는 달리 그녀의 시들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미국의 조각가, 최초의 ‘모빌’ 작가)의 모빌들처럼 균형을 이루어, 모든 요소, 모든 의미와 노래의 추(錘)가 완벽하게 맞추어지고 있다.”


미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 비숍의 짧은 시 ‘대화’(Conversation)를 소개한다. 질문과 대답, 사랑과 미움, 감각과 지각, 실재와 함축 그리고 그 속에서 함몰되는 자아가 평이한 단어들로 가라앉지 않는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대화

엘리자베스 비숍


가슴속의 동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멈춰서 스스로 대답한다.

똑같은 목소리로.

누구도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순수하지 않은 이 대화들이 시작되고

감각들이 개입되고

의미는 반쪽이 된다.

그러고 나면 선택도 없고

지각(知覺)도 없다.


마침내 하나의 이름과

그것이 담은 모든 함축이 하나가 된다.


Conversation


The tumult in the heart

keeps asking questions.

And then it stops and undertakes to answer

in the same tone of voice.

No one could tell the difference.


Uninnocent, these conversations start,

and then engage the senses,

only half-meaning to.

And then there is no choice,

and then there is no sense;


until a name

and all its connotation are the same.


비숍의 대화는 누구나 경험하는 자신과의 대화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아마도 사랑이거나 미움 혹은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그 무엇일 것이다. 마음을 휘젓는 그 무엇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어줍지 않은 대답을 던진다. 질문도 대답도 모두 하나의 목소리.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나와의 대화는 언제나 순수하지 않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가. 서툰 나의 몸짓에 핑곗거리라도 만들고 싶은 것인가. 의도는 감춰지고 곧 나약한 감정에 휘둘려 의미는 희미해진다. 답은 언제나 모호하고 선택은 언제나 벽에 부딪힌다. 감각에 밀려난 지각. 그러면 마음속 그 동요의 실체(이름)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그 속에 숨은 수많은 의미들과 더불어 함몰된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버린 대화의 끝에 분명해지는 한 가지. 이 무의미한 질문과 대답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 사랑도 미움도 후회와 연민도 그저 공허하게 담기고 남겨질 뿐이라는 것.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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