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영웅의 탄생/ 자연과의 투쟁
2. 베오울프
앵글로-색슨의 문학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시가 ‘베오울프’(Beowulf)이다. 3,182행으로 구성된 작자미상의 서사시 ‘베오울프’는 7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강력한 괴물로 상징되는 거대한 자연의 힘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문학사가 윌리엄 J 롱(William J. Long)은 괴물과 맞서 싸우는 영웅 베오울프의 정신이야말로 자연의 절대적인 힘에 맞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과학의 정신으로 이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또한 그러한 이유로 문학이 인간의 삶에 실질적 효용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미미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인간들은 그 속에서 신이 만든 우주와 자연, 그리고 신의 섭리에 대한 인식에 눈 뜨고, 그 질서와 법칙을 찾고자 하였으며 그것이 곧 학문과 과학과 기술의 진화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문학은 그러한 인간의 노력을 기록하고 묘사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정신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이 시절의 영시는 베오울프와 같이 위대한 영웅의 삶을 그리는 영웅시(heroic poem), 키네울프(Cynewulf)의 ‘십자가 꿈’(The Dream of the Rood)처럼 예수의 고난과 기적을 그린 종교시(religious poem) 그리고 전쟁에 나간 전사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슬퍼하는 비가(elegy) 등으로 구분된다. ‘십자가 꿈’에서 화자(narrator)는 예수가 지고 갈 십자가가 될 나무와 이야기한다. 나무는 십자가가 되는 순간 예수와 똑같은 고난을 겪는다. 몸에 못이 박히고 온통 피투성이가 된다. 그리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부활한다. 십자가 나무는 예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이며 그와 한 몸이 된다. 그리고 그 충성의 관계는 기독교적 함의와 함께 전사의 시대에 가장 큰 덕목이었던 충성이라는 전사들의 가치를 보여준다. 500여 년 동안 로마에 의해 전파된 기독교적 영향과 함께 유럽에서 야만의 전쟁을 겪으며 형성된 앵글로-색슨들의 이교도적 요소가 이 시대의 시들 가운데 혼재되어 있었다.
베오울프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옛 전설에 기초한다. 서막에서는 덴마크의 왕 스킬트(Scyld)의 전설이 소개되고, 그의 후손인 흐로드가(Hrothgar) 왕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바닷가에 호화로운 연회장을 짓는다. 그리고 매일 밤 그의 신하들과 함께 즐겁고 화려한 연회를 연다. 어느 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바다 깊은 곳 동굴 속에 살던 그렌델(Grendel)이라는 괴물이 습격한다. 그리고 잔인한 살육의 잔치를 벌인다. 작품 속에서는 그렌델의 등장을 이렇게 묘사한다.
늪으로부터, 안개 낀 습지대로부터
미끄러지듯 다가와---거대한 분노로 가득 찬 채---
구름 아래, 그는 똑똑히 보았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인간들의 연회장을.
불로 달궈진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음에도 연회장의 문이 부서진다.
그가 앞발로 차자 문은 튕기듯 열린다.
그 비극의 전령사는 터져 나오는 분노로 잔뜩 부풀어 오르고,
눈에서는 불처럼 맹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1)
그렌델의 소문은 기트(Geats) 족의 왕자 베오울프의 귀에 들어간다. 바닷가의 거친 동물들과 싸우며 힘을 길러온 그는 덴마크인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의 이야기를 듣자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함께 흐로드가 왕의 연회장을 찾는다. 그리고 그렌델과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그렌델은 베오울프의 초인적인 힘에 눌려 치명상을 입고 바다에 빠져 죽는다. 그러나 며칠 후 환희에 젖은 연회장은 다시 한번 비극의 현장이 되고 만다. 자식의 죽음에 분노한 그렌델의 어미가 끔찍한 복수를 가해왔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유혈의 현장이 된 연회장에서 베오울프는 슬픔에 잠긴 덴마크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서러워 마시오, 현명한 그대들이여.
친구를 애도하느니 그의 복수를 하는 편이 낫겠지.
우리들 각자는 이 세상 삶의 끝을 기다릴지니; 죽기 전에
명예를 얻게 하시오. 그것이 전사의 삶이니까.
죽은 뒤 가장 높아지리라.
일어나시오, 왕국의 수호신! 서둘러
그렌델의 어미를 추적합시다.
그대들에게 약속하노니: 괴물은 결코 도망하지 못하리오.
대지의 가슴속, 저 깊은 숲 속
대양의 심연, 그 어디로 갈지라도. (2)
베오울프는 바다 밑 동굴로 찾아가 그렌델의 어미를 찾아 죽이고 마침내 덴마크의 왕이 된다. 그러나 전사의 운명은 죽음일 뿐. 노년의 베오울프는 또 다른 괴물 화룡(fire drake)의 공격을 받는다. 자신이 지키는 보석을 잃어버리고 분노에 날뛰는 괴물과 싸우는 베오울프는 이제 자신의 힘이 다하고, 죽음의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화룡이 뿜어낸 불로 그의 폐 속에 강한 화기가 침투되고 베오울프는 쓰러진다. 젊은 전사 위글라프(Wiglaf)가 괴물을 죽이고 왕을 발견하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렇게 한 영웅은 가고 또 다른 영웅이 등장한다.
‘베오울프’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그리고 있다. 그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사랑, 충성,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그려진다. 하지만 한 영웅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낳고,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English Texts: From Beowulf
Forth from the fens, from the misty moorlands,
Grendel came gliding___God's wrath he bore___
Came under clouds, until he saw clearly,
Glittering with gold plates, the mead hall of men.
Down fell the door, though fastened with fire bands;
Open it sprang at the stroke of his paw.
Swollen with rage burst in the bale-bringer;
Flamed in his eyes a fierce light, likest fire. (1)
Sorrow not, wise men. It is better for each
That his friend he avenge than he mourn much.
Each of us shall the end await
Of worldly life: let him who may gain
Honor ere death. That is for a warrior,
When he is dead, afterwards best.
Arise, kingdom's guardian! Let us quickly go
To view the track of Grendel's kinsman.
I promise it thee: he will not escape,
Nor in earth's bosom, nor in mountain-wood,
Nor in ocean's depths, go where he will.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