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는 자신이 무엇을 목격한 것인지 묻지 않았다.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철조망으로 덮어 놓은 하수구 구멍 주변에는 붉은 피가 여기저기 튄 상태였다. 구 병장이 밟고 서 있는 철조망 아래에서는 한 여성의 신음이 들려왔지만, 창수는 차마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구 병장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하지만 구 병장은 창수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하수구 속의 표적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창수는 안구의 측면에서 번들거리는 그의 날 선 광기를 똑똑히 목격했다. 그 분위기가 즐거웠는지 구 병장의 입꼬리도 점점 올라가는 듯했다.
“구 병장님, 구 병장! 아니 지금 무슨…….”
머리가 어질어질한 와중에도 창수는 그를 붙잡으러 다가갔다. 하지만 곧 총소리를 들은 분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오오! 구 병장님, 잡으셨습니까!”
“벌써 쏘셨습니까? 아직 살아 있습니까? 구경 좀 하게 해주십시오!”
창수보다 한참 짬이 낮은 후임들마저도 건방지게 그를 밀치며 하수구로 몰려들었다. 구 병장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수구 구멍을 까라고 후임들에게 지시했고, 그들은 신이 나서 구멍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쯤 되니 창수로서는 더 보고 서 있을 재간이 없었다.
“우욱, 우우욱!”
창수는 연신 헛구역질을 하면서 벽을 짚고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 집의 문이라도 열고 들어가서 저 구역질 나는 광경을 더 안 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는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런 창수를 보고, 구 병장은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러다 손끝에 한 집의 무거운 철문이 닿았고,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으윽, 으으으윽!”
배신감, 수치스러움, 자신의 안목에 대한 한심함. 끓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창수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몸의 균형만 겨우 유지한 채로 가까스로 서 있는 와중에, 그는 눈앞에 다가온 한 거구의 노인을 발견했다.
“으어!”
소스라치게 놀란 창수는 그만 뒤로 쓰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해를 등지고 서서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계엄군으로 들어온 사내가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쓰겠나. 일어나게, 보기 흉하네.”
창수는 노인이 내민 손을 잡고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을 붙잡은 노인은 팔 힘도 외관에 걸맞지 않게 무척 억셌다. 밖에서 들려온 총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할 법한데도, 노인은 창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창수는 창수대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구 병장의 충격적인 전향은 아직도 그의 뇌리를 떠나가지 않고 선명히 남아 있었다.
“감, 감사합니다. 어르신.”
“계엄군이 폭도에게 감사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군. 그래, 괴뢰군을 수색하는 중인가?”
창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한번 열심히 뒤져 보시게. 아마 사람 형상을 한 상들이 많아서 꼼꼼히 뒤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야.”
“이건…… 다 어르신께서 만든 물건들입니까?”
“내 손을 거치긴 했네만, 혼자 만든 물건은 아닐세. 도와주던 조수들이 여럿 있었지.”
있었지? 그럼 지금은? 창수는 굳이 뒤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이 시기의 광주에서 젊은 남자가 자취를 감췄다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노인은 뒷짐을 지고 창수에게 물었다.
“송암동에 있는 모든 집을 다 뒤지고 다니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저 아래쪽에 파란 대문 있는 집도 들렀다 왔는가? 어린 남자아이 하나와 젊은 어미 하나 사는 집일세.”
“예. 다녀왔습니다. 고맙게도 아이에게서는 물도 한 그릇 대접받았습니다.”
“쯧, 아비가 그리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외부인은 늘 경계하라 했거늘.”
자신을 힐난하는 말이 아니었음에도 창수의 고개는 절로 내려갔다. 마침 그가 시선을 떨군 근처에는, 그 소년과 체구가 비슷해 보이는 작은 형상의 석상이 서 있었다.
“계엄군으로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안타깝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아버지 없이 앞으로 어찌 살아갈지.”
“시대를 잘못 만난 죄지 누굴 탓하겠나.”
“시대를 잘못 만난 죄…… 정말 그게 전부라고 보십니까?”
창수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의외의 대답을 들은 듯, 노인은 눈빛을 반짝이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창수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구 병장의 얼굴을 힘겹게 몰아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생각도 조금 듭니다. 난폭한 시대일수록 스스로 몸을 보호하고 가족을 살필 의무는 더 커져야 한다고. 계엄군이 들어왔다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바꾸려고 저항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되지 않습니까. 속담에도 있듯이, 모난 돌이 정을 맞습니다. 정을 맞지 않기 위해 일시적으로 모를 감추는 것도 돌이 보여야 할 덕목이지 않을까요.”
멀쩡해 보이던 사람도 하수구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고 웃으며 총을 겨누는 판이다. 창수는 듣는 사람 없는 자신의 일갈이 백번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노인은 그에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노인은 잠시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더니 자기 키만큼 큰 석상에 기대어 있던 쇠몽둥이 하나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자네는 혹시, 광주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다행일세.”
그 말을 하자마자, 노인은 손에 든 쇠몽둥이로 강하게 창수의 오른쪽 다리를 내리쳤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의 공격에 창수는 맞은 부위를 붙잡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데굴데굴 굴렀다.
“아아아악!”
영문 모를 공격을 감행한 노인은 쇠몽둥이를 던져 버리고 창수의 눈앞에 다가와 쪼그리고 앉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올바른 청년을 만났네. 저 밖에, 광기에 휩싸여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는 이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사실을 알겠네. 갑자기 다리를 가격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정강이뼈를 정확히 부러뜨렸는데, 회복을 잘하면 아무 상처 없이 금방 아물걸세.”
“아, 아니. 대체 무슨……!”
기막힌 일을 당한 창수는 노인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다. 자신이 흉포한 계엄군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시민의 공격에 희생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생겼다.
“내 금방 나갈걸세. 그런데 가기 전에 자네에게 이 사실 하나만큼은 꼭 말하고 가고 싶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랬지? 맞는 말이야. 참으로 맞는 말이야. 석공이기에 나는 그것이 더욱 와 닿았네. 그런데 말일세.”
노인은 창수의 방탄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자네가 돌과 정을 잘 구분을 못 하는 듯하여, 내가 차마 그냥 모른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네. 괜히 저항하다가 총을 맞았다니 그럼 우리가 돌이라는 말인가? 나는 절대로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네. 젊은이. 우리는 돌이 아닐세. 반대로 우리가 정일세. 저들이 돌이지.”
으으윽, 다짜고짜 사람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무슨 헛소리야! 창수는 노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노인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얘길 계속했다.
“단단한 돌을 뚫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아는가? 먼저 구멍을 뚫어야 한다. 최초의 작은 구멍을 뚫기만 하면 그 뒤는 쉬워. 겨울이 되기를 기다린 후에, 뚫린 구멍 속에 물을 붓고 하룻밤. 딱 하룻밤을 기다리면 돼. 그럼 아침에 왔을 때 그 단단하고 큼지막한 돌이 보기 좋게 반으로 갈려있지. 지금껏 석공으로 살면서, 돌을 깨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네. 첫 구멍을 뚫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 그도 영물이라고 저항을 하는지, 약한 정을 쓰면 정이 부러지고 휘어지기 일쑤라네. 하지만 그렇게 몇 개의 정을 쓰면서 돌을 계속 찍어대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돌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이치지.”
“어, 어르신…….”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가 않네. 비록 지금은 정이 꺾이고 부러지는 중이지만, 끝에 가서는 반드시 정이 승리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내 부탁하는 바는, 부디 먼저 다친 정들을 버리지 말아 주게. 기억을 해주게. 우리가 정이었음을.”
노인은 창수의 등에 메여 있는 소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드디어 죽는 것인가. 공포감이 극에 달한 창수는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노인은 총을 뺏으려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끼운 뒤, 허공을 향해 총알을 여러 발 발사했다. 우렁찬 총성은 마당의 석상들을 골고루 때리며 메아리를 울렸다. 뜻한 바를 이룬 노인은 무릎을 붙잡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아이고. 나는 이만 가네. 총성이 들렸으니 곧 자네 동료들이 올 것이야. 혹 지휘관이 오거든 기습을 받아 쓰러진 상태에서 도망치는 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고 말하게. 그리고 다리를 다쳤으니 꼭 후방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고 요청하게. 곧 광주에서는 큰 난리가 날 걸세.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칠 거야. 부디 그곳에 있지 말게. 평생 마음에 짐이 될 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네. 광기에 휩쓸리지도 말고, 죄책감에 파묻히지도 말게. 난 자네가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주면 좋겠어.”
“어, 어르신, 어르신!”
“끌끌. 말이 길었네. 잘 있게.”
노인은 나이가 믿기지 않는 날랜 걸음으로 마당을 벗어났다. 그가 건물 뒤쪽으로 달아나자마자, 총소리를 들은 계엄군들이 철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몇몇은 바닥에 쓰러진 창수의 상태를 확인했고, 몇몇은 총을 들고 노인의 뒤를 쫓았다. 달려가면서 동시에 총을 쏘는 추격조의 가장 선두에는 구 병장이 있었다.
“괴뢰군이다! 서라, 서라!”
후임병들은 창수를 부축하여 집결지로 이송했다. 아직도 그 평상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소대장은 다리가 부러진 창수의 모습을 보고는 길길이 뛰며 화를 냈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운전병을 불러 창수를 이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임병들의 도움을 받아 군용 트럭의 조수석에 몸을 실은 창수는, 완전히 진이 빠져 창문에 힘없이 이마를 기울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야전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가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수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교수님, 기자회견 준비 다 마쳤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어, 잠시 학교 뒷산에 올라와 있어. 금방 내려갈게.”
“어디 계신지 말씀 주시면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날씨도 찬데 무리하지 마십시오.”
“나이 들었어도 무릎은 멀쩡해. 환자 취급하지 말아.”
“아니 뭐, 환자 취급한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뒷산에 뭐하러 가셨습니까?”
“맑은 물을 좀 마시고 싶어서. 그것도 가지고 왔어. 기억하니, 네가 나한테 물 담아서 줬던 그릇 있잖니.”
“아, 기억하죠, 당연히. 그건 또 어디서 찾으셨대요.”
“조금만 걸어가면 계곡이 나온단다. 거기서 시원하게 물을 한 잔 떠 마실 생각이야. 우리 둘 다.”
“우리요? 또 다른 분이 함께 가 계세요?”
“아니, 계곡 옆에 구멍 뚫린 돌이 하나 있어. 돌도 목이 마렵다고 하는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내려가서 얘기해 주마.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다. 좀 쉬고 있어라.”
정기는 교수님과의 전화를 마친 후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기자회견실에서,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교수님이 앉을 책상 뒤쪽, 회견장의 벽에는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는 현수막이 잘 나오도록 핸드폰의 각도를 이리저리 조정한 뒤에, 촬영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