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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근화 Jul 21. 2020

쓰레기 섬을 아십니까

 2019년은 유난히 과외 성사가 많이 이루어졌던 한 해였는데, 탐구과목의 중요성이 높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 과외 교사를 구하는 수요가 꽤 있었다. 물화생지 네 과목 모두 가르칠 자신이 있어서 선택과목을 불문하고 어떤 학생이든 맡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구과학 강의의 수강을 원하는 학생은 한 명밖에 없었다. 수업하기 전에 준비를 꼼꼼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상 듣는 학생이 한 명뿐이라 해도 최대한 알찬 강의를 구성하기 위해 지구과학 교재도 꼼꼼히 공부했는데, 그 책에서 본 내용 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다. 


 해류의 순환을 공부하는 부분이었는데 책의 서술에 따르면 물의 양이 워낙 많은 대양에서는 해류의 순환이 주로 외곽에서만 일어나고 중심부의 물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자연현상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에 문제를 느낄 만한 부분이 없는데, 해양 쓰레기의 존재로 인해 이 대양의 중심부에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육지에서 버려진 이후 외곽 해류를 타고 순환하던 쓰레기들이 속도가 조금씩 줄어 대양의 중심부로 흘러들어오는데 움직이지 않는 해류를 따라 쓰레기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쓰레기가 하나가 되고 둘이 되면서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새 쓰레기 섬이라 불릴 정도로 크기가 커져 버렸다.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간단하게 서술된 고등학교 과학의 한 내용이었지만 그 사진과 글을 보고 내가 느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쓰레기 섬에 대한 내용은 내가 수능을 공부할 때도 알고 있던 바였지만, 몇 년 사이에 그 크기가 너무 많이 커져서였다. 2016년만 해도 한반도의 5-6배 크기였던 쓰레기 섬은 2019년에는 한반도의 15배 크기로, 이제는 섬이라기보단 대륙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지경이 되어있었다. 해양 쓰레기의 특성상 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썩지 않는 폐기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해류와 바람에 깎이며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에게 유입되어 결국 그 생물들을 섭취하는 인간의 몸에 쌓이게 된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는데, 한때 생선 요리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은 사람으로서 내 몸에도 플라스틱이 쌓인다는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외를 준비하면서 읽은 부분은 거기까지였지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 머리에서는 쓰레기 섬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았다. 공학도로서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면 자연스럽게 그 해결책을 고민해 보게 되는데, 2016년에도 이미 큰 문제였던 쓰레기 섬이 어떻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는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었다. 약간의 조사만으로도 그 원인은 알 수 있었다. 태평양은 어떤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은 공해이기 때문에 누구도 쓰레기 섬을 치워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꼭 해야 하는 일을 차일피일 미뤄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고등학교 청소 담당을 정할 때 생기는 문제가 국제적인 규모로 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쓰레기 섬은 지금도 계속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을 터인데 이런 한심한 이유 때문에 더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당장은 해야 할 공부가 더 많은 힘없는 대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린피스에 후원금 3만원을 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후원금과 더불어서, 적어도 내가 사는 곳 인근의 바다에서만큼은 이런 쓰레기로 고통받는 생물이 없기를 기도했다.


 쓰레기 섬, 아니 쓰레기 대륙의 사진을 찾아보면 픽사에서 만든 [월E] 라는 명작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쓰레기로 가득 찬 지구, 그런 행성을 버리고 우주로 도망친 인간들 그리고 생명의 씨가 말라버린 행성에 유일하게 남아 일을 하는 로봇이 나오는 영화이다. 아이들 보라고 만든 영화니만큼, 영화 속에 나온 쓰레기 행성의 모습이 정말로 지구의 미래가 되리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도 아닌 나는 그 예상에 의문이 든다. 정말로 지구는 언제까지나 푸르게 빛나는 생명의 행성으로 남을 수 있을까? 만약 몇 년 후에도 쓰레기 섬의 크기가 더 켜졌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면 그 희망도 점점 꺾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 영화 속의 쓰레기 행성을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전 세계가 쓰레기 섬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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