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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근화 Jul 22. 2020

가슴에 새긴 카르노

  기계공학부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열역학이라는 과목을 전공필수로 지정하여 모든 학부생이 2학년 때 수강을 하도록 개설이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이 가장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대상이 내연기관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 장치이기 때문에, 열역학을 통해 입력 에너지 대비 출력 에너지의 효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당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 중에 ‘카르노 기관’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에너지의 손실이 전혀 없는 이상적인 기관을 상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현실의 기관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실제로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종의 이데아와 같은 것인데, 너무나 간절하나 결코 닿을 수는 없다는 역설이 주는 애절함 때문인지 이 단어를 입에 담기만 해도 경건함을 느끼는 공학도들도 꽤 존재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인데, 환경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환경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이 전공을 택한 공학도로서 그 경건함의 크기가 다른 누구보다도 크다고 자신할 수 있다.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고 싶다는 꿈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일류의 어린이 과학 잡지로 군림하고 있는 어린이 과학동아를 봤을 때부터 확고한 장래희망으로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지구온난화가 현재의 추세대로 계속되면 언젠가 현재 육지의 80%가 물에 잠기리라는 예측 결과를 지도에 구현한 사진을 봤는데, 그때 느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아이에게 당장 내가 사는 이 집이 물에 잠길 수도 있다는 경고는 먼 미래의 일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당시에는 나의 지구가 절대로 이런 꼴이 되도록 두지 않겠다는 다짐에 불타올랐는데,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몰랐을 나이라 그저 그린피스에 들어가 환경운동가가 되자는 단순한 진로 설계에 그쳤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흘러 과학을 통해서도, 아니 어쩌면 과학을 통해야만 전 지구적인 재난을 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부터 지금의 학과로의 진학을 희망하기 시작했다.     


 전공의 이름만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적합해 보이는, 환경공학과라는 학과가 존재하나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물론 환경공학에서 주목표로 삼고 있는 오염물의 제거와 정화 역시 환경 보호라는 목표를 이룸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지만.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결국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환경 정화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오염물질 자체가 끝없이 생산된다면 그 노력은 과실을 맺을 수 없다.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목표에는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이 더 적합하리라는 판단을 내렸고 실제로 공부를 해 본 결과 그 판단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환경 문제를 만들어낸 1등 공신은 자동차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의 기계공학 역시 이 문제를 최우선 화두에 놓고 발전하는 중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동차 때문에 생기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배출되는 오염물질 자체를 줄이면 되는데, 오염물질을 줄인다는 말은 기관의 효율을 높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엔진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결국 내부에서의 연소로 인해 발생하는 탄화 생성물인데 엔진의 효율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오염물질은 적게 나온다는 것! 비전공자에게 전달하기에는 몹시 난감한 내용이지만 한 마디로 더 좋은 기관을 개발하는 것이 환경오염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론상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기관이 ‘카르노 기관’으로 설계된다면 우리는 환경오염의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엔진이나 기관 이외에도, 에너지가 동원되는 더 거대한 시스템을 설계할 때도 ‘환경성’과 ‘효율성’은 늘 함께 다니는 주제이고 해결의 도구는 언제나 기계공학에서 찾을 수 있다. 각종 발전소를 설립할 때도 기계공학을 고려하지 않고는 일을 시작할 수조차 없는데, 이러한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전공 선택 하나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학을 통해 지구를 구한다는 아이디어에 온 몸을 던진 유명인으로는 일론 머스크가 첫 손에 꼽히는데 개인적으로 롤모델로 두고 있는 분이다. 하지만 롤모델이라고 해도 그분과 내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분의 판단으로는 이미 지구는 되살리기가 늦은 행성이고, 환경오염이 가속화되어 언젠가는 죽음의 행성이 된다고 한다. 그에 대비하여 인류는 지구를 대신해서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하고 그 기술이 마련될 때까지라도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환경 보존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스페이스 X를 설립하여 재활용 가능한 로켓을 만들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지만, 너무 절망적이지 않은가? 이미 늦었으니 더 늦기 전에 다른 행성으로 피신하자. 지구에 정이 들고 말고를 떠나서 앞으로 발견할 어떤 행성도 이 푸른 낙원보다는 살기가 힘들 텐데, 과연 이곳을 버리고 새 터전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과학의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도, 사람마다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각자 자신의 의견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와 실험에 정진하는 모습. 열두 살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나는 진심으로 과학의 힘을 통해 지구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머스크는 머스크대로 더 많은 인원을 더 효율적으로 우주로 이주시킬 방법을 찾으려 할 테고. 언젠가 한쪽의 주장이 틀렸다고 결론이 난다 해도 그 결과물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실패한 연구일지라도 학문의 발전에 분명하게 기여한 공로를 평가받을 것이며, 이러한 보험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자로서 걸어갈 앞으로의 길에 두려움을 덜어 준다.


 과학 잡지에서 물에 잠긴 바다의 사진을 봤던 나이로부터 정확히 두 배 더 나이를 먹었을 때 나는 카르노 기관에 대해서 배웠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만남은 퍽 운명적이었다. 카르노 기관은 학문적인 이데아일 뿐만이 아니라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이 마지막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무기. 하지만 결코 쉽게는 얻을 수가 없는 장비. 다도 아니고 일부만 얻어도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꿈속의 도구. 카르노는 나에게 그런 의미이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엄밀한 목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일종의 상징적인 단어로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비전공자를 너무 배려하지 않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사회성 없는 공돌이의 말처럼 들렸을까 뒤늦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나온 전문적인 용어는 몰라도 환경 보호라는 목표를 바라보는 나의 진심과 열정은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 목표를 가진 모든 사람이 가슴 속에 저마다의 카르노를 가졌으면 좋겠다. 과학이 아닌 어떤 분야라도 그곳에서 환경을 보호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되 그 목표는 최대한 높은 곳을 바라보자.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높은 목표라 해도,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다 보면 기적처럼 이뤄질 수도 있음을 과학의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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