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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Feb 21. 2022

Andante e Cantabile

닮고 싶은 사랑법.

 작년 여름은 길고 끈질겼죠. 10월이 되도록 더위가 사그라들 기세는 보이지 않습니다. 9월만 해도 이 정도 더위는 참아주겠노라 인내심을 보이다가, 10월까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이러다 가을 냄새 맡아보지 못하고 겨울이 될까 서운한 마음도 듭니다. 더위를 좋아하지 않는 스승과 제자도 수업을 마치고 피아노에서 벗어나면 이 지긋지긋한 여름 언제 끝나나 한탄했습니다.





 그 무렵 한 달 전, 발렌티나 리시차의 공연을 다녀온 후로 실제 만난 무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살짝 열병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또 연주회를 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불안은 도무지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이엘도 평균율도 뭔가 제대로 하는 것 없어 초조한데, 연습보단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만 커집니다. 핑계가 필요합니다. 불안이란 아이가 어쩔 수 없이 저를 놓아줄 수밖에 없을 정도의 강력한 핑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자 한 통이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소식을 전합니다. 제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얄밉게 웃음을 흘립니다. 핑계가 도착했습니다.





 "가지 않으려 했는데, 베토벤이잖아요. 베토벤 소나타만 들을 수 있는 이 기회를 어떻게 마다할까요?"




하며 울먹이듯 말하니,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렇네요, 베토벤이면 이해하죠. 프로그램 어요?"




 질문에 저는 얼른 핸드폰을 열어 프로그램을 보여드렸습니다. 이번에 오는 루돌프 부흐빈더의 공연은 양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19일은 본래 2020년 앙코르 공연이 예정되었던 것이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어, 이번에 코로나가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베토벤 소나타 중 가장 인기 있고 주옥같은 작품만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고, 20일은 디아벨리에 의한 변주곡으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었죠. 저는 초심자니 아직 디아벨리의 변주곡은 어려워 19일 앙코르 공연만을 예매했습니다. 그날 연주될 곡은 소나타 14번, 20번, 8번, 10번, 21번. 워낙 제 최고의 사랑이 14번(월광)과 8번(비창)이었으니 이걸 실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죠. 프로그램을 쭉 보시던 선생님께서 몸을 부르르 떠시더니 말씀하십니다.




 "딱 주옥같은 곡만 하네요. 아, 이 21번. 제 입시곡이었어요."




 하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베토벤 소나타 21번. 부제 발트슈타인. 베토벤이 그의 후원자 중 한 명인 페르난드 폰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한 곡으로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웅장하고 풍부한, 피아노 한 대 만으로도 오케스트라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환상적인 풍모를 가진 작품입니다. 언젠가 저도 연주해야 할 과제 같은 곡이겠지만 지금은 그게 멀게 느껴지니 그저 눈만 깜박거리며 순진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확실히 루돌프 부흐빈더의 공연을 앞두고 제 기분은 들떠있었습니다. 여름 내 피로는 누적되고 건강악화로 살이 확 빠지기 시작하고, 빈혈이 심해 몸은 고통스러워도,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신대로 공연에서 듣게 될 베토벤 소나타 악보를 먼저 넘겨보며 하루를 꿈처럼 보냈습니다. 아직 솔페즈가 능숙하지 않으니 악보가 그저 암호문처럼 느껴지지만 이 하나하나 음이 어떻게 피아노에서 표현될지 상상해보고 가늠해보고, 피아노에 손을 올려두고 더듬더듬 한 음씩 눌러보며 지내는 시간이 꿈과 같았죠.




 부흐빈더의 공연을 더 기대한 것은 제가 동경하던 사람이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당시 전 부흐빈더가 어떤 음악가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짧은 소개글과 인터뷰만으로 그를 가늠해 볼 뿐입니다. 나이 지긋하고 깊은 주름이 멋진 할아버지는 표정에도 굳은 의지가 보입니다. 그의 음악을 기대하게 만든 건, 그의 생김 때문이라기보다, 단 한 줄. 그를 설명하는 수많은 글 중 한 줄만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60년 간 베토벤을 애정하고 흠모하여 연구하고, 몇 만 번 연주하며, 무대 위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사람.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깊이, 이렇게 오래 흠모할까요? 이런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외롭고 힘겨운 사랑입니다. 그런 사람의 손에서 피어나는 베토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영화나 책에서 보면 그다지 따뜻하거나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특히 청각을 잃은 후 더욱 사나워지고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괴팍한 성격으로 변모했지만, 그 시기의 음악은 더 아름답고, 마치 천국의 열쇠를 얻은 사람처럼 인간사 이야기를 들려준다기보다 삶에서는 보기 힘든, 우리가 그렇게 그리워하 돌아가야 하는 세상을 그린듯한 작품이 나옵니다. 이렇다가도 굉장히 고독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많은 염문설의 주인공이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곡을 바치는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기도 하니, 사람으로만 본다면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쩌다 용기를 내  사모하는 마음 적어 편지를 보낸다한들 거들떠보기는 해 줄까요? 차라리 그의 손에 찢기기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그렇게 되어도 좋으니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상대가 베토벤입니다. 어쩌면 좋죠? 이 매력적인 남자는 250년이 지나서도 기꺼이 펜을 들어 기어코 사랑을 고백하도록 만듭니다.





 이 지독한 남자는 만나러 가는 길도 결코 평탄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여름이 끝나지 않을 듯했던 작년.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무섭게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2021년 10월 13일. 얼음 조각을 쏟아내는 듯 맹추위가 왔습니다. 여름옷만 준비해 갔던 터라 언니에게 코트를 빌려 며칠을 지냈지만, 손발이 모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연습실에 앉아 계속 얼어붙는 손을 겨우겨우 녹이며 연습하니, 건반에도 겨울이 찾아왔는지 소리가 차갑고 날카롭습니다. 아무리 제게 여행 징크스라는 것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고단합니다. 하지만 가야죠.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루돌프 부흐빈더의 공연은 10월 19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나름 일찍 갔어도 최근 나온 CD는 이미 완매 되어 구하지 못했지만, 베토벤 소나타 전곡 CD를 구했으니 만족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음반매장에 들려 바흐와 멘델스존의 CD를 구하고, 악보 매장을 구경하며 집에서 공부할 이론서와 읽고 싶은 책까지 구매했더니 양손이 무겁습니다. 게다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바쁜 마음으로 음악당으로 걸어가는 길. 마치 부흐빈더의 마음이 되어 걸어봅니다. 발걸음이 느긋하고 안정적인 느린 템포로 변모합니다.





 그의 인생 어느 날. 한 남자가 마음에 들어왔을 겁니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오로지 그의 숨결과 영혼만이 남긴 오선보 위의 점들그가 이 세상에 머물러갔음을 증명합니다. 그 음악을 피아노 위에 어떻게 그려놓을까요? 그것을 처음 그려냈을 때, 그는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요? 사랑에 빠진 소년은 그에게 매일 물었을 겁니다. 어떻게 연주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요? 그의 마음은 너무나 깊으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매일 다른 소리를 했을 수도, 혹은 어떤 대답도 없이 굳게 침묵을 지키는 날들이 계속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어느 날은 빌기도 했을 겁니다. 당신의 음악을 완벽하게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게 해 달라 간청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연주자에게도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클래식 작곡가들, 그중에서도 괴팍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베토벤이니 그 부탁 쉽게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사랑이 꽃밭 일리가 없습니다. 냉혹하고 까탈 부리는 얼음 밭이요, 가시밭이었겠죠. 그럼에도 60년 묵묵히 잘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남자가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들려주세요.

당신이 베토벤에게 들은 대답을 제게도 들려주세요.





 객석에 어둠이 깔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남자는 겸손하게 인사하고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숨을 고르게. 손가락이 차분하게 허공에서 박자를 맞추고 건반 위로 내려앉습니다.




 첫 곡은 베토벤 소나타 14번. 무겁고 깊게 공기를 누르며, 더 깊고 명확하게 말합니다. 물이 흐르는 듯한 맑고 청아한 소리. 두근거리는 심장을 따라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그는 제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들었다.




 라고 말이죠. 담담하고 엄숙한 어조로 베토벤이 가진 고민과 고통. 그의 꿈이나 바람. 지워내고 떨쳐내고 싶어도 쫓아오는 미움이나 열등감. 누군가를 애정하고 연모하고 열망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 음악이란 나에게 고통이며 사랑인 세상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를 치고 고함을 지르고 흥분해서 마음껏 지껄이는 그런 상스러움을 베토벤은 원하지 않죠. 그 어떤 말이라도 숭고하고 아름답게. 지적이고 우아하게. 철학적이고 담담하게. 인터미션을 앞둔 소나타 8번까지 정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했더니, 체력 소모가 상당합니다. 그 순간 물었죠. 지금 전 누구에게 반한 걸까요? 베토벤? 아니면 해바라기 같은 순수함을 지닌 저 음악가에게? 결론이 뭐가 중요할까요? 그저 두 사람 모두에게 매료되었음을 고백하죠.





 남은 두 곡은 10번과 21번. 두 손을 꼭 쥐고,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꾹 누릅니다. 하지만, 어쩐지 진정이 되기보단 재촉을 하게 됩니다.




 들려주세요,

 들려주세요.

 당신의 베토벤이 나를 계속 매료시키고 깨어나게 하도록 해주세요.



 하고 재촉합니다. 아, 이렇게 참을성 없는 관객이라니. 어쩐지 부끄럽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능숙하게 숨길만큼 어른이 되지 못했으니 부끄러움은 마땅히 제가 감당해야죠. 두 손을 모아, 제발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계속 이 연주가 새벽이 되도록 끝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연회는 없는 법이죠.




 공연이 끝나고 멍하니 빈 무대를 바라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떼어냅니다. 불 꺼진 거리를 걸으며 감정에 취한 저는 무지한 저를 탓합니다. 어떤 대답을 들으셨을지, 아직 제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대답이 제 마음을 이렇게도 아련하게 하는지, 그 선율 도저히 잡아낼 수 없죠.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아 시작한 공부. 아쉬운 마음에 그저 한 숨 한 번 폭 내쉬니 찬 공기 속 영혼 한 줄기 하늘로 꼬리를 달고 올라갑니다.





 두 사람의 깊은 속삭임 속에 감히 제가 끼어들 자리 없죠. 결국 제가 찾아야 하고, 제가 물어야 합니다. 귓동냥삼아 들은 수는 있어도, 내 몸으로 어떻게 연주를 해야 할지,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낼지, 어떤 감정을 제 몸과 영혼을 도구 삼아 사람들에게 기나긴 세월 전하고 싶을지. 그 모든 것은 제가 찾아내야 할 것이죠. 결국 제가 음악을 시작한 그날. 선생님께 잘난 척하며 말했던 최고의 연주는 제가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슴을 울리고 그와 공명하여 담아내며 공감하고픈 제 열망은 결국 제가 찾아가야 하는 과제. 기술적인 것도 학문적인 것도 열심히 배워 쫓고 쫓아서 가야 하는 곳. 천재가 아니라면 닿을 수 없는 세계라 해도 상관없죠. 하나뿐인 인생. 꿈이라는 불구덩이에 한 몸 던져 괴롭다 몸부림쳐도 얼굴에 화색이 가시지 않고 하루가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고 행복합니다.





 누군가에게 일생을 바쳐 편지 씁니다. 하루하루 매일같이 당신의 음악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 하늘에서 팬레터 그만 보내라며 타박하실지도 모르고, 아직 쌀도 씻지 않았는데 밥을 지어보고 싶다 조른다며 한바탕 혼을 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부흐빈더처럼 진중하고 멋진 문체로 편지로 보내고 있진 못하지만, 언젠가 제 소리 제대로 내게 되면, 그분들 제게 답장을 주실까요?





 아무래도 전 열심히 오래 살아야겠습니다. 많은 편지를 보내야죠. 부흐빈더가 그렇게 했듯. 당신들을 이해하고, 부디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제게 주세요 하고 말이에요. 제 연서는 이제 막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부흐빈더가 앉은 저 자리에서 저도 대답 들었음을 고백할 날 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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