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마! 죽으면 영원히 쉴 수 있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읽은 글귀. 파도처럼 밀려온 공포에 숨이 막힙니다. 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건 멋진 일이고 동경할 일이지만, 죽으면 쉴 수 있으니 살아있는 동안의 쉼은 필요 없다는 말. 쉼은 삶의 걸림돌인가요?
아침에 눈을 떠 눈만 깜박깜박거려봅니다. 잠이 얇아 자도 자도 피곤을 느끼지만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는 없습니다. 게으름 한 번 부렸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의 일탈이 이제껏 노력한 수고를 무너지게 할까 두렵습니다. 공포를 원동력 삼아 몸을 일으켜봅니다. 하지만 영 몸은 따라주질 않습니다. 음악을 시작하고 6개월. 쉼 없이 굴러갔던 생활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이 무렵부터 제 하루는 제대로 굴러간다라는 느낌보다는 오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수업 중 집중도는 떨어지고 반대로 긴장도는 높아져 손을 떨며 겨우 시간을 채웁니다. 선생님의 걱정 어린 충고에 자책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실패한 수업을 곱씹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러다가 선생님께서 먼저 '그만둬요'라는 말씀을 하실까 전전긍긍하며 피아노 앞에 종일 앉아 연습을 합니다. 이 정신에 집중하지 못하면 못한다고 온갖 구박을 하니, 저란 사람 제게는 너무 잔인합니다. 눈앞은 흐려져 악보는 보이질 않고, 입맛도 사라져 음식 냄새에도 헛구역질을 합니다. 먹어야 하는 약마저 다 토해내고 보니 이제는 슬슬 무서워지려 합니다. 그래도 하루는 유지해야 합니다. 이 규칙이 깨진다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안이 집착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유지한 일상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음식 거부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물을 마셔도 그냥 뱉어버렸죠. 덕분에 일주일 사이 5킬로가 빠졌는데, 평소보다 제가 더 뚱뚱해 보이는 겁니다. 뭐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며 다시금 타박을 해봅니다.
"저기요.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의사 선생님이 물으셨죠.
"약 민감도가 높고 알레르기도 일으키는 터라 저도 예민하게 처방하고 있어요. 아무리 예민한 체질이라 해도 이 정도로 구토를 일으키진 않아요. 도대체 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죠?"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반. 아침 먹고 2시간, 점심 먹고 2시간, 저녁 먹고 2시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요. 그리고 음식은 거의 삼키지도 못하는 것 같네요."
하고 고백하니 의사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거 체력 탓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몸이 건강한 사람도 그렇게 하면 몸이 망가질 겁니다. 환자분은 지금 건강을 먼저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혹사를 하면 살은 빠져도 건강은 더 나빠질 겁니다. 그게 악순환을 가져올 거고요."
"하지만 모두 이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 재능도 뭐도 없어요. 그러니 남들이 2시간 하면 4시간은 해야 겨우 쫓아가게 될 거예요."
"손도 퉁퉁 부었고 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상당하지 않나요? 손톱이야 워낙 짧게 잘라 부러지지 않았다 뿐이지."
저는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피아노를 친다는 행동이 상당히 많은 칼로리를 소비한다는 걸 아십니까? 아무리 기초를 하고 있다 해도 운동량이 적지 않아요. 앉아있다고 해서 그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자신을 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본인을 좀 믿어주시면 좋겠는데요."
하시곤 입을 꾹 다무셨죠. 그렇게 혼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엉망이 된 기분으로 하루는 다시 굴러갑니다. 저는 이때 제게 생활의 변화를 주기보다 더 엄격하게 다그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가을이 시작되고 리사이틀이 많아졌죠. 이번 가을에는 4번의 리사이틀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울을 다녀오면서 쉬는 날 없이 연습했습니다. 서울에 가서도 연습실을 빌려, 6시에 일어나 오전 내내 연습하고, 가볍게 점심 먹고, 오후에는 일을 몰아서 하고 저녁에 공연을 가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던 언니가 결국 한 소리 합니다.
"넌 공연을 즐기러 온 거니, 아니면 너를 혹사시키러 온 거니?"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정을 소화하고 제주에 돌아와도 쉬지 않고 몸을 괴롭혔습니다. 열이 37도 38도가 올라도 쉬지 않았죠. 찬물로 세수하며 정신 차리라 다그치고 피아노 앞에서 쓰러져도 의지박약이라며 제 자신만 타박합니다.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연습을 한 게 아니라 학대한 겁니다.
그 무렵 선생님께서 자주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연습 하루에 두 시간! 딱 그 정도면 충분해요."
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그런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가득 찬 두려움은 채찍질을 가속화했습니다. 제 마음 줄 놓은 겁니다. 두려움이라는 맹수를 그냥 날뛰게 둔 거죠. 열심히 한다는 말로 합리화를 하면서요.
사실 저는 쉬는 법을 모릅니다. 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도, 쉰다는 일에 관대한 집안은 아닙니다. 타고나기를 느긋한 성격에 게으름은 타고나서 어렸을 때부터 '쓸모없다', '게으르다'는 소릴 하도 듣다 보니, 나를 증명하겠다며 무리하며 달려온 게 습관이 됐습니다. 제 끝은 끝을 봐야 끝이 납니다. 그 끝은 맺음이 아닙니다.
제가 무언가 한다는 건 몸과 마음을 태워서 극한까지 몰아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상해 병원 응급실에 누워야 비로소 휴식이 필요했구나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회복은 더뎌서 결국 이제껏 열심히 해왔던 것들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 자리엔 허무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는 단 한마디만 합니다.
'유치해.'
전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하며 무기력을 선택합니다. 나약한 나를 미워하기를 선택합니다.
실은 이 감정은 줄곧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감정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니 여러 번 상담받으며 도움을 청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감정은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서 생긴 허무감이라 했습니다. 생각하지 마라. 나가서 고된 노동을 해라. 고마움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 비난받는 솔직한 마음은 입안에 담는 게 낫습니다. 적어도 타인이 절 아프게 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 감정을 삼키고 삼켜 의연한 척하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패배자가 되는 것. 그게 이 감정을 다루는 가장 익숙한 방법. 실패하는 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 감정의 끝을 맺습니다.
"쉼표가 나왔네요. 쉼표는 그야말로 그 시간만큼 쉬어주라는 의미죠. 쉼표도 음표와 똑같아요. 쉼표의 종류도 온쉼표, 이분쉼표, 사분쉼표, 십육분쉼표 등 음표와 동일하죠. 바이엘에서는 대체로 쉼표가 음악의 종지에 많이 나오니까 쉼표가 가진 힘을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쉼표는 강력한 음표입니다. 곡의 중간중간 나오면 제시된 시간만큼 반드시 쉬어야 곡이 무너지지 않아요. 그저 쉼표니 대충 쉬어주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애매하게 넘어가면 노래는 규칙성을 잃게 됩니다. 혹은 과하게 쉰다면 전혀 다른 곡이 되기도 하고요."
쉰다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요? 그냥 쉬고 말면 되죠. 가볍게 넘긴 생각은 제게 독이 되어 돌아옵니다. 쉼표가 곡 중간으로 들어오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죠. 침묵이 가장 묵직한 언어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소리를 내는 음표들보다 더 까탈을 부립니다. 짧은 침묵이 절 괴롭게 합니다. 쉼표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다음 음으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음표를 스타카토처럼 소리 내게 만들어 강하게 효과를 주는가 하면, 쉬지 않는 한 손의 소리를 더 명확하게 들려주기도 하고, 짧은 쉼의 호흡이 독특한 리듬을 연출하며 음악을 더 깊게 만듭니다. 물론 대충 넘어가면 어김없이 옆에서는 제동을 걸어주시는 분도 계시죠.
"여기 쉼표! 주의하세요."
덕분에 형광펜은 쉼표 위에 어김없이 색을 채웁니다. 중간중간 쉼을 준다는 것. 그 적당한 길이를 가늠하는 것도 쉬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쉼은 어떤가요? 저만 유난히 어려워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뉴스나 유 퀴즈 온 더 블록 같은 예능을 보고 있자면 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주제 같습니다. 특히 일과 쉼의 적절한 균형을 잡는다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제 마음을 조절할 수 없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게 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죠. 달려온 시간 속 잠깐의 파격. 4분의 4박자 마디 안에 과하지 않을 만큼, 16분 쉼표 정도를 선물해줬으면 가을 동안 제 음악 여정은 더 즐겁고 재미있는 소리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카페를 놀러 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어도 좋고, 바다가 가까운 마을이니 파도 소리, 숨비 소리를 감상하며 산책을 즐겨도 좋았을 겁니다. 아니면 특별한 장소를 가지 않아도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밀린 예능을 보고 드라마를 보며 반나절 푹 쉬었다면 저는 제정신을 차리고 두려움의 노예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요즘 번아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휴식이 없는 사회를 살아가니까요. 일도 대인관계도 나 자신도 끊임없이 소리 내 살아야 하는 삶. 잠시 앉아 침묵 속에서 쉬는 시간을 선물하지 못하는 삶이. 몸도 마음도 고단합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마음은 삶의 의미를 잃게 하고 자책하며 자존감의 상실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또 우리는 쉼이 없어 잃은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며 또 다른 자학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하죠.
쉼표가 죄책감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쉼표는 죄라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음악을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소중한 침묵입니다. 쉼표를 잘 쉬고 연주하는 음악은 연주자도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도 편안함과 즐거움을 줍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오는 법만 배웠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한 살, 그저 공짜로 먹었다 쉽게 말하지만 어디 나이 먹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숨을 쉬는 순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살아가나요? 숨을 쉰다는 일만큼 고단한 일이 있을까요? 당연하다 여기는 건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초절기교처럼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는 정신없는 음악이기보다, 의자에 앉아 음미하며 오랜 시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소곡이나 소나타와 같은 음악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조금은 세상에 곡소리보단 하모니가 울리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 16분 쉼표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인생의 16분 쉼표는 충분하니 깊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지금 딱 떠오르는 즐거운 일! 그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16분 쉼표죠.
저는 오늘 제 손에 담긴 쉼표를 하나 사용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을 볼 거예요. 제 기질대로 애쓰지 않고 느긋하게 실컷 게으름 부릴 거예요. 여러분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쉰다는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나요? 며칠 동안 시달리며 지친 건반에도 쉼을 주고 내일은 더 맑게 울릴 음악을 기대합니다. 오늘은 웃으며 잠들 수 있습니다. 행복한 날입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남은 하루 푹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