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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Feb 28. 2022

Andante e Cantabile

피아니스트에게...

텅 빈 공연장.

노련한 피아니스트의 인사가 반갑다.


허공으로 번져가는

첫사랑의 기억

더듬고 더듬어

추억을 수놓는다.


처음 순간의 두근거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순간.

고백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

가슴을 떤다.


시기하는 자.


첫사랑을 어지럽히는 건,

누군가의 무심.


떨림이 순간을 잃는다.


그럼에도 길을 잃지 않는다.

사랑은 퇴색되지 않는다.


단지 세상을 설득하지 못한 추억이

침묵하며 옅은 미소를 남길뿐.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그의 고향의 연무가 맺혔다 사라진다.


빛을 등지고 어둠으로 돌아가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뒷모습에

시린 바람 하나 가슴에 맺히는 건,


그 사랑,

내 품은 사랑과 닮아서.



 예프게니 키신의 공연을 하루 앞둔 일요일 오후. 저는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의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프로그램은 바흐의 평균율 2부. 인터미션 없는 75분. 집중력을 흩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각하니 긴장됩니다.




 여기서 제 짧은 지식을 하나 풀어내 보려 합니다. 바흐의 평균율은 총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습니다. 바흐는 다복한 아버지라는 농담을 제쳐두고, 훌륭한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오르가니스트였으며, 조율사이기도 했습니다. 평균율은 건반 악기의 조율 방식입니다. 바흐가 살아가던 바로크 시대에는 평균율보다는 순정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순정률이란, 주로 많이 쓰이는 조성을 듣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 순수하고 잘 어울리는 화음을 내도록 조율하는 방식을 말하죠. 하지만 순정률은 정확한 조성의 음을 만들어도 전조를 해야 할 순간이 되면 건반 악기의 뚜껑을 열어 열심히 조율해야 하는 수고를 필요로 했습니다. 바흐는 1691년, 안드레아스 베르크마이스터가 쓴 안내서를 바탕으로 1722년과 1742년 두 권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작곡합니다. 두 권 모두 24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24개의 곡은 12개의 장조와 나란한 조인 12개의 단조를 모두 넣은 수작입니다. 결국 이 곡집은 바흐가 그의 이론을 증명한 논문인 셈이죠.




 평균율은 이런 이유로 건반 악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필수적인 교재라고 합니다. 평균율의 목적성은 3개. 교육 목적, 공연에서 작품으로서 목적, 혼자 즐기는 유희적인 목적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음대에 들어가면 무조건 이 평균율 1부나 2부 중 하나는 필수로 완성해야 하는 과제라 하니 그 중요성 말하려면 입만 아프죠.




 안데르제프스키의 평균율은 2부입니다. 제가 평소에 듣던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평균율 1부만을 녹음하셨기에 2부는 어떤 곡일지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프렐류드와 푸가가 반복되는 형식이 아닌 2부의 24개 곡 중 몇 개를 추려내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구성했기 때문에 안데르제프스키의  새로운 서사를 느끼기에도 좋았습니다. 이런 해석 방식도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게 느껴졌죠.




 기대를 가지고 도착한 공연장의 분위기는 삭막하고 쓸쓸했습니다.



 롯데콘서트홀 2000석이 넘는 대공연장에 결국 관객은 앞좌석만 어느 정도 채우고 있었을 뿐이었죠. 예전에 다녀온 공연에서 전 객석이 항상 가득한 모습만을 보았기에, 이 모습은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좀 더 채워지겠지 하는 기대완 달리 이 텅 빈 공연장에서 공연은 시작됩니다. 저는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한 공연장보다 침묵을 가진 공연장이 더 소란스럽다는 것을 말이죠.




 75분을 혼자 이끌어야 하는 노련한 피아니스트의 눈에 객석이 들어왔을 겁니다. 그는 짧지만 정성스러운 인사를 관객들에게 남기고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의 연주는 화려하진 않습니다. 교과서에 가까웠죠. 사실 재미나 감동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닮아지고 싶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이니까요. 기본이 탄탄하면 내게 어떤 흔들림이 생긴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기둥 하나 생기는 셈이니 굉장한 능력입니다. 이 기본기는 연습과 연습을 거듭하며 만들어진 것이니 이 소리가 가진 가치는 멋진 건축물과 다름없죠. 집중하며 음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겨봅니다. 좋은 스승 만났다며 행복하던 순간. 누군가 제 얇은 유리 같은 집중력에 돌 하나 던졌습니다.




 옆자리에 떨어진 일행은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겼다 접었다. 지루함에 하품소리. 자세를 바꾸며 나는 금속음. 고개를 돌려 저도 모르게 노려보게 되는 겁니다. 결국 직원이 주의를 줄 정도여서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어도, 흐름을 잃은 것이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던 듯, 연주자도 살짝 실수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입니다. 아주 노련하게 실수를 안고 다음으로 넘어갔죠. 저라면 도저히 못했을 겁니다. 수업 중에도 실수하면 멈춰서 굳어버리는 습관에 매일 한 소리 듣고 있습니다. 그 순간 심장에 가득 존경심이 꽃피웁니다. '멋있어!'하고 속으로 감탄사 한 번 내뱉고 저도 모르게 소란의 주범을 향해 눈총 한 번 발사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75분 공연은 관객도 연주자도 지치게 합니다. 새삼 인터미션의 소중함이나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시간을 고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런 작은 것 하나가 공연의 질을 좌우한다니. 어쩐지 무대라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연주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텅 빈 객석을 눈에 담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관객이 있는 앞자리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습니다. 원망도 슬픔도 담지 않은 오묘한 미소에 저는 왠지 가슴이 쓰렸습니다. 손이 붉게 부풀어 오르는 줄도 모르고 제가 낼 수 있는 힘을 가득 담아 박수를 보냈습니다. 닿아라! 닿아라! 오늘 당신의 연주는 제게는 최고였다는 이 마음이 간절히 닿길 바라지만 알아주셨을까요? 제 작은 마음 그 사람에게 장미 한 송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 마음이 허전합니다. 소란을 일으킨 일행은 끝났다는 안도감에 웃으며 떠납니다. 사실 그들을 원망할 일은 아닙니다. 결국 그들을 매료시킬 연주를 하지 못했다는 건 연주자의 역량이죠. 매정하긴 해도 그게 현실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그건 인간의 힘만으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줄 누군가가 없다면 그저 허상으로 사라져 버릴 것들. 그것을 사랑하고 그 길을 동경하는 마음이 서릿발을 데리고 옵니다. 시립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르르 떨어냅니다. 이 마음을 연주회가 끝난 후 카페에 앉아 펜을 움직여 그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썼습니다.





 이 마음 전해질까요? 그래도 그날 당신의 연주에 행복해하고 동경하던 관객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음을. 언젠가 당신에게 배움을 청하러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받아주실까요? 언젠가 또 만나고 싶은 연주자. 그가 다시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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