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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Mar 03. 2022

Andante e Cantabile

작은 기도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안단테 에 칸타빌레를 쓰고 있는 레비타스라고 해요. 항상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누듯 글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저를 그대로 드러내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본래 예정되었던 글을 올리기 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단테 에 칸타빌레는 제가 2020년 4월 21일부터 12월 28일까지 바이엘을 하면서 겪고, 생각하고 느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지막 부분을 향해가면서 그동안 제가 만났던 음악가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죠. 제가 다녀온 공연 후기의 마지막은 예프게니 키신입니다.





 며칠 전 러시아의 기습공격으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예프게니 키신은 러시아인으로 그는 며칠 전 자국의 대통령 푸틴의 결정에 대한 규탄 성명을 내기도 했죠. 이 전쟁의 책임에 예프게니 키신이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러시아 국민들도 대다수 이 전쟁을 원하고 있지 않기에, 저는 러시아 국민들이 지배자의 광기로 받고 있을 고통에 마음이 쓰리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자국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가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역사를 배웠습니다. 저는 어떤 역사든 좋아해서 역사 공부만은 열심히 해왔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 속에는 전쟁이 왜 이렇게 가득할까?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전쟁을 유희적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분명 전쟁에 명분은 있습니다. 그 명분을 따라가다 보면 명분은 또 다른 명분을 가지고 있죠.





 사람은 각기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으니 언제나 분쟁의 소지는 가지고 있겠으나, 어째서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전쟁은 분쟁을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고, 그들은 효율성이라든가 미래지향적이라는 달콤한 말로 이것을 정당화시키죠. 그렇죠, 결국 핑계입니다. 전쟁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더 명분이 없거나 혹은 그가 내밀 카드가 더는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광기로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그 선택에 소리 내지 못했던 작은 민초들.




 어쩌면 스스로 일어나 지배자가 마음대로 휘두르게 둔 책임이 있다 타박할 수 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언제나 한 목소리로 지배자에게 요구해오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은 내 하루가 평안하고 사랑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겁니다. 국민의 궁극적 소망은 행복과 안녕입니다. 전쟁이란,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파괴하는 이기고 지는 자가 없이 상처만 남기는 게임이죠. 그러니 전쟁은 국민이 원한 바가 아닙니다. 그럼 왜 마음대로 전쟁을 선택하는 걸까요? 무슨 권리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시기였다고 합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이 서로에게 득이 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평화시기에도 각지에서 테러가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어디 하나 분쟁 없던 지역은 없었죠. 우리나라만 해도 북한과 오랜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니, 사실 이 평화시기였다는 말도 어떻게 보면 선진국에서 만들어 낸 달콤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전쟁을 신의 뜻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과연 신의 일일까요? 신은 그런 일에 의외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은 한 번도 인간에게 큰 걸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정말 작지만 어려운 일을 기대했습니다. '사랑해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까지도 사랑해라.' 어딜 정복하고 누군가에 위에 서서 호령해라 라는 말을 하는 신은 생각보다 그 명이 짧았죠. 그저 그는 언제나 한결같이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평화가 깃들기를 이라고 축복하고 인사했습니다. 그가 만약 인간을 믿지 않는다면 직접 세상을 다스렸을 겁니다. 생명에게 생각이나 의지를 주지도 않았을 테죠. 의외로 전쟁이나 기아 같은 슬픔은 신의 고통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고통이죠. 그러니 이 문제는 신에게 빌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겁니다.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선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선택해야 하죠. 세상에 기아는 왜 생길까요? 그들이 게을러서? 전쟁은 왜 일어나죠? 재수가 없어서? 아닙니다. 그건 그저 그들이 처한 고통을 피해자에게 넘기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해자 피해자는 따지지 않는 게 옳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피해자며 가해자죠. 그들의 불행이 극에 달할 때까지 방관한 가해자며, 그들의 불행에 가슴 아픔을 느끼는 피해자입니다.





 전 이 작은 기도를 신이 아닌 인간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대의 선한 의지가 이 비극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벌어진 죄에 대해선 어쩌면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죠. 겁이 날 겁니다. 무섭겠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속 남아있는 선한 의지와 용기를 믿습니다. 신은 한 사람의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기적이라고 하죠. 당신이 내려놓는 총. 당신이 집으로 돌리는 발길. 그 길 끝에 안락한 당신의 미래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선택으로 힘든 날이 있겠지만,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조차도 용서해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전장에 명분 없이 서있는 그들을 향한 기도입니다. 부디 그대들이 더 멀리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고향으로 돌아와 품에 안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길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지금 끝낸다면 분명 그 길의 끝에는 따뜻한 봄날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 상처는 여러분들을 더 강하고 아름답게 했습니다. 당신들의 선택이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나라를 지키는 그대들의 지도자를 존경합니다. 그들에게도 봄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무너진 탑 아래서 다시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자라듯 분명 그분들이 이 비극을 이겨내고 강해질 것이란 것을 믿습니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손으로 만든 새로운 우크라이나를 말이죠.






 

 예프게니 키신의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살짝 빗나간 샛길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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