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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Mar 17. 2022

Andante e Cantabile

Andante e Cantabile

 맑은 음이 공기에 퍼져갑니다. 옛사람들은 공기가 물로 이루어졌다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틀린 말도 아니죠. 이 공기 속에는 물의 원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결을 일으키며 가슴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행복하게 받아냅니다. 청량함에 속이 시원합니다. 먹먹하게 울리던 피아노 소리가 한 거플 벗겨져 다른 소리를 냅니다. 얼굴 가득 미소가 올라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파동은 은어의 모습으로, 작은 금붕어의 모습으로 방 안을 유유히 헤엄칩니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악보 위에 앉아 저와 눈을 마주치죠. 세상의 빛이 변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요? 실제 하지 않더라도 전 그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상상을 현실로. 그것이 아무리 바보 같고 어리석어서 아이 같은 상상이라 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런 순수함이죠.





 저는 언제나 이 깨끗함을 동경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옛날의 내가 눈을 뜹니다. 하나도 심술궂지 않은 표정으로 제 피아노 의자 옆에 앉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이죠. 살아서 적당한 시간에 멋진 선생님을 만나게 해 줘서 여기에 앉아 있다고 말합니다. 사과를 건넬 수도 있습니다. 너를 소중하게 대하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줘라고 말이죠.





 사랑만큼은 내 것이 아니라 욕심내지 말자라고 살아왔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을 탐했던 저를 압니다. 그 사랑의 형태가 남에서 흘러오는 것이라, 누군가에게 구걸하듯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실 사랑은 어디에나 있어서 제가 선택하면 가볍게 품어졌을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씨앗이 되고 열정으로 키워져 꿈을 품고 자라나 현실이라는 꽃을 피워 나눔이라는 열매로 맺어지리라는 걸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아직 여물지 않은 타인의 열매를 탐하고, 그것 받지 못함을 원망했던 겁니다. 남을 미워할 이유도, 나를 미워할 이유도 없었죠.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일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고, 그 상처로 저도 아파하며 그저 살아지는 일상에 전 왜 그리 벌을 주지 못해 안달을 하고 살았을까요? 그렇게 자격이 없다 타박을 했을까요?





 과거의 나와 건반 위에 손을 얹어 이 작은 방 안을 울려봅니다. 그리고 까르르 웃어봅니다. 이 작은 소리가 얼마나 즐거운가요? 평생을 살면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이 소중한 시간이 웃게 합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꿈을 꿉니다. 이해가 필요하지 않죠. 허락도 필요 없습니다. 이건 제가 선택했으니 제 허락만 있으면 됩니다. 이렇게 즐기면서 걸어가면 됩니다. 그 아이는 처음으로 제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제 가슴에 기댑니다.






 이제는 괜찮아.

 더는 걱정하지 않을게.

 네가 살아낸다면 과거의 나는 널 응원할게.

 지금의 너는 내일의 너를 밀어줘.







 하고는 눈을 감고 사라집니다. 따뜻한 온기가 몸에 전해져서 괜스레 눈시울만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12월의 제주.

 가을이 끝난 제주는 귤 향기 가득한 금빛으로 물드는 계절입니다. 1년 정성껏 키운 열매를 수확하고 그 풍요를 한껏 즐깁니다. 이 수확이 끝나면 쉼에 들어갑니다. 제주의 1만 8천의 신도 일을 내려놓고 쉼에 들어갈 준비에 들어가죠. 서귀포의 겨울은 봄보다 온화하고 따스합니다. 한라산에 쌓인 눈은 찬바람을 지상으로 내려보내도 그 추위가 날카롭지는 않습니다.






 피아노에게도 잠시 쉼을 주고 CD플레이어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봄에 아찔하게 했던 귤꽃 향기가 이제는 은은하고 새콤한 귤향기로 맺어졌습니다. 곳곳에서 장작 태우는 냄새에도 귤 잎사귀와 가지가 불에 그을리며 달콤한 향내를 뿜어내죠. 바다까지 난 돌담길을 걸어갑니다. 드문드문 사람을 만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제 세계는 모차르트가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 연주자는 글렌 굴드. 귓가에서 차분하게 연주되는 음악은 제 길을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풀향기에 돌아가는 시선이 제가 가는 길을 막진 않죠. 양지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먼나무에 달린 붉은 열매를 나눠먹는 사이좋은 방울새 커플은 제 인사를 뿌리치지 않죠. 돌부리 가득한 길에 들어서고, 옆은 낭떠러지, 방풍목이 어둡게 내린 응달길을 걷는대도 이 아름다운 음악은 제게 꿈을 잊지 말라고 응원하죠. 이 돌길 앞에는 큰 바다가 있습니다. 거대한 음색으로 제게 달려들어도 그들을 압니다. 저는 그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즐기기도 하고 그 안에 들어가 시달린다 한들 괴로운 일 속에서도 즐거운 추억이 쌓이겠죠.





 바다를 끼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걷는 길에는 잘 포장된 도로도 있고, 가파른 경사길도, 숲에 쌓인 길도 있습니다. 잘 가꿔진 공원이 있고, 버려져 잡초가 무성한 공원도 있죠. 눈에 담기는 그 속에 추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이 길의 끝에는 제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마저 이 사랑스러운 음악은 저를 잘 보호해줄 겁니다.






 괴로움이 있다면 어떤가요? 한계가 있다면 돌아가 보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선다는 마음보단 제 등에 날개가 활짝 펼쳐졌으면 합니다. 날개를 크게 키워서 하늘로 향하는 길을 산책합니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길이죠.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우는 길. 삶은 선물이고 꿈은 꿔야죠.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또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다음으로 향하는 정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설렘은 여행의 시작을 달콤하게 만드는 최고의 향신료죠. 제 곁에는 훌륭한 길잡이가 있으니 그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제 산책은 여기까지. 제 음악인생 여정의 1악장. Piano sonata. Andante e Cantabile. C Major.

다음은, 다음은............









<붙임글>


 안녕하세요.

 레비타스입니다.

 2021년 12월 28일 무사히 초급과정을 마쳤습니다.

 이 무렵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3월의 반이 지나갔습니다.

 제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일희일비하는 버릇은 여전하고,

 무리하는 버릇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단단해져 버텨내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꿈을 더 명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손가락에는 멍이 들고 부어오른 날이 많지만

 그 모든 게 너무 즐겁습니다.

 두서없이 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담아봅니다.

 피로하게 해 드린 건 아닐지 걱정도 듭니다.

 글도 음악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 글을 쓰면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어요.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를 빌었습니다.

 이 이야기로 도전하는 용기를 얻는 분이 계시기를 빌었어요.

 그리고, 이 여정이 끝나면 꼭 여러분 앞에 나가 연주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빌어요.

매일매일 이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진 모르지만,

많은 걱정 하기 싫으니 이미 이뤄졌다 믿어봅니다.

2주 쉬었다가 새로운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면서 겪는 이야기는 다시 올해 12월에!

Adagio Sostenuto로 찾아뵐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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