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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Apr 07. 2022

안녕, 세콜리

00. 내 마음을 읽어줘.

 눈을 뜨면 세상은 아직 어스름한 푸른빛. 짙은 회색과 쪽색이 섞인 오묘한 빛이 눈꺼풀을 두드립니다. 집을 지을 때 세상의 색을 느끼고 싶어 긴 창을 놓고 커튼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람의 소란스러움은 필요 없습니다. 빛이 깨워주는 아침은 놀람에 가슴 쓸어내리기보다 평안함을 주죠.






 길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늘어지게 한 번. 채 뜨지 못한 눈은 차가운 물로 고양이 세수 한 번 하면 그나마 시야가 또렷하게 형태를 잡습니다. 그럼 어기적어기적 피아노 방으로 들어가 하농을 시작합니다. 1시간 30분 정도. 손이 적당히 풀어질 무렵이면 정신도 맑게 깨어납니다. 그럼 아침을 가볍게 먹고 스트레칭하고, 다시 제대로 세수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갑자기 어떤 손님이 오셔도, 일이 있어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준비가 필요 없을 정도로 화장하고 흩어짐 없는 모습을 만들죠. 그 후 책상 앞에 앉습니다.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와인색 천을 깔아놓습니다. 앞에는 차임벨을 두고, 향을 태워볼까요? 매화향을 담은 향기로 방을 채웁니다. 창을 열면 작은 새소리가 방울처럼 맑게 들립니다. 그럼 눈을 감고 차임벨을 울려봅니다. 낮은 '라' 음이 공기에 퍼져가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숨을 고르게, 고르게 합니다. 몸에 한가득 상쾌한 공기를 채우고 불편했던 마음은 날숨에 담아 길게 뱉어냅니다. 차분하고 맑게. 내 안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그리고 작은 기도를 담아봅니다.

 




오늘도 정성스럽게 연습에 임할 수 있기를.

좋은 글을 쓸 수 있기를.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지금은 자랑스럽게 내세울 결과 하나를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어느 날은 그것이 제게도 생겨나기를 빕니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웃음이 납니다. 어쩜 기도에 담는 소망이 이렇게 현실적이기만 할까요? 적어도 세계 평화는 빌지 못한대도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 수도 있을 텐데. 나를 우선하는 마음에 부끄러움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철이 덜 들었다 살짝 꾸짖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하나. 지금 저는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고 있고, 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면 타로카드를 꺼내봅니다. 제가 이 시간을 위해 쓰는 카드는 일반적인 78장짜리 타로카드가 아니라 오라클로 구분되는 카드입니다. 타로카드는 본디 점을 치기 위한 도구지만, 저는 이것을 점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점사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것은 저를 구속합니다. 귓가에 남아 제 일상에 영향을 주게 되죠. 그러니 제게 타로는 미래를 알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를 보기 위함이죠.







 카드는 단순히 도구입니다. 그저 셔플을 하고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는 건 유희에 가깝죠. 사실 어떤 주제를 가진 카드가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할까요? 바로 그 단어를 떠올릴 때 저의 생각이나 기억입니다. 지금 현재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제게 어떤 색으로 보일까요?






 타로카드가 가진 한 장 안에는 긍정도 부정도 없습니다. 에너지의 많고 적음은 있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나쁘다고도 볼 수 없죠. 타로카드라는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니 같은 카드를 보면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카드에는 해석 도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림'이죠. 그림을 보며 드는 느낌, 장면으로 읽히는 이야기는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색이 먼저 눈에 들까요? 어떤 모습이 먼저 보일까요? 그의 행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이 그림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렇게 무한대로 퍼져가는 스토리에 울타리 하나 되어주는 것이 '키워드'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해석 도입니다. 카드 하나가 가지고 있는 키워드에는 무작정 퍼져가는 이야기에 주제를 하나 제시합니다. 그럼 그 주제에 맞게 스토리를 맞춰봅니다. 답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느끼고 생각나는 모든 것이 지금 저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죠. 그것들을 잘 기록해두고 읽다 보면 제가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제가 쓰는 카드는 '세콜리 오라클 카드(Ceccoli Oracle)'입니다. 그래서 통칭 세콜리라고 부르고 있죠. 사실 이 카드는 이탈리아의 일러스트 작가인 니콜레타 세콜리의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 분이 이 카드를 위해 디자인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에 작업한 그림을 가지고 짜깁기를 한 전형적인 아트덱으로 점을 보기에 아주 적합하다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점이 아닌 도구로는 상당히 좋습니다.








 작가가 가진 정체성과 여성성. 그리고 그가 그리는 세계관은 몽환적이고 모호합니다. 동화를 기반으로 한 작업이 많고, 그림이 난해하죠. 아름답지만, 결코 아름답다고만 말하기 힘듭니다.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잔혹동화를 닮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그림에 마음이 쓰인 것도, 제 마음속 모습과 닮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순수하고 맑음을 지향하며 살아도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죠. 열등감과 질투심. 욕심이나 오만.  자신을 끔찍하게 미워하고 사랑하는 모순. 그러기에 제 마음을 여기에 가장 잘 비춰 볼 수 있습니다.





 32장의 카드와 떠나는 마음 여행기.

 




 손 안에서 카드를 섞어봅니다. 종이가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습니다. 셔플 중에는 마음을 비우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부르듯 말을 걸어봅니다.





 "안녕, 세콜리."





 그리고 왼손으로 넓게 펼쳐 냅니다. 오늘 나를 위한 단 한 장의 카드. 신중하게 골라볼까요? 오늘은 어떤 주제를 던져줄까요? 전 그 주제에 어떤 대답을 할까요? 이 대답이 저를 어떻게 다듬어갈까요? 마음공부를 담은 이야기. 저의 일상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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