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시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집에 시계가 없으니 잠들기 전 머리맡에 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합니다. 알람은 울리지 않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은 대체로 일정한 편입니다.
아침 6시. 시간만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습관이라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차가운 물에 세수 한 번 하고 나면 떨쳐낼 잠입니다. 적어도 몸만 일으켜 세운다면 맑게 깨어날 정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꼭 한 시간 그렇게 미적거립니다.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기사가 있나 찾아보고, 유튜브로 놓친 영상 보고, 사람들이 올린 가볍고 우스운 이야기에 히죽히죽 웃는 게 전부입니다. 제게 필요한 시간일까 생각하면, 글쎄요.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매일 이 일을 후회하니까요.
그럼에도 뉴스를 찾아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일을 쉬이 멈출 수가 없습니다. 특히 살아가는 세상이 좁은 제게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지 않기에,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별일'을 읽는 것으로 불안한 연결고리를 이어봅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소식에 진정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잘 한 적 없고, 우리나라 국민은 투덜이죠. 누가 누구를 죽였고, 누가 누구에게 사기를 쳤습니다. 누군가는 자살하고, 누군가는 억울하죠. 행복이 없는 '현실'이라는 세상을 보며 혀를 끌끌. 안타까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한 숨 푹. 그렇게 읽어대는 정보지만, 이것을 알고 있다 한들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가끔은 관음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남의 불행이나 악행을 왜 이렇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가슴 벅차도록 감동 깊은 사연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댓글을 보고 있자면 그곳은 또 다른 전쟁터입니다. 진실이니 거짓이니 나름 판사봉을 들고 판단하거나, 평론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감동은 사라지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댓글에 빠져드는 겁니다. 그 순간 인정하게 됩니다.
'아, 나 관음증 있구나!'
하고 말이죠.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수로 탁탁 불쾌한 기분 털어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1시간 피아노 앞을 지키고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흐릅니다. 손가락은 퉁퉁 부어서 오래 연습을 이어가진 못하죠. 그러니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 중간마다 책에 먼저 손이 간다면 그날은 책 읽는 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책을 손이 닿는 자리에 둡니다. 침대 옆엔 시집이랑 인문서가 있고, 피아노 근처에는 음악 이론이나 교양서적을 두죠. 그런데 많은 비율로 책 보다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핸드폰이죠.
연습하는 동안 핸드폰에서 해방됐는데, 쉼의 명목을 삼아 또 핸드폰을 잡습니다. 핸드폰이 연인보다 더 애틋해서 이 아이가 없던 시절 어떻게 살았나 싶습니다. 손안에 잡히는 세상을 통해 사람을 보고 있지만, 소통의 도구라고 하기엔 그 사람 이야기에 시시덕거릴 뿐 상대에게 제 정보를 주고받는 관계는 아닙니다. 그 사람에겐 제 인내를 담아 본 광고의 광고료가 갈 테니 어쩌면 소통은 소통일까요? 감정 하나 담지 않고 습관처럼 눌러대는 좋아요가 소통일까요? 그럼에도 마치 만난 사람처럼 반가운 건 역시 인간의 뇌는 그와 소통을 했노라 큰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치인이든 유튜브 스타나 연예인에게 참견이 그렇게 쉽습니다. 사실 우린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도 말이죠. 그렇게 착각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간은 또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읽겠다던 책은 내일로 또 미뤄졌습니다.
명상을 하는 내내 신경은 핸드폰으로. 연습 중에도 연락 온 건 없을까 싶어 신경은 핸드폰으로. SNS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은 온통 핸드폰으로 쏠리고 가끔은 가지지 않아도 될 정보를 과하게 찾으며 핸드폰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가끔은 제가 건강하지 않다는 점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핸드폰을 오래 쥐고 있는 날이 계속되면 컨디션이 나빠집니다. 어지럼증이 오고 손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지죠. 감정이 불안정해지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학하는 날도 생깁니다. 예민함이 경고장을 보냅니다. 제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죠. 그럼 어김없이 핸드폰 속 세상에 빠져 살았던 일상을 발견합니다.
그제야 핸드폰을 멀리 두고 화분을 돌보고, CD플레이어와 책을 들고 훌쩍 산책을 나갑니다. 좋은 바람, 새소리, 파도 소리, 음악가의 섬세한 연주에 집중하다 보면 이내 어지럼증은 가라앉고, 짜증 가득한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습니다. 열등감이나 분노, 좌절은 지금 제가 느낄 감정이 아닙니다. 제 일상에 이것을 만들어내는 사건은 없었으니까요. 오로지 SNS나 유튜브를 통해 만들어진 타인의 감정을 탐욕스럽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나를 아프게 하고, 그 아픔으로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고 힘들게 만들었음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쉼을 위한 놀이라고 느껴던 행동이 일상을 멈추게 합니다. 좋은 방향이 아닌 나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주는 좋은 방향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생각을 담은 글을 나누며 꿈을 꾸고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미디어도 도구이기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되기도 약이 되기도 하죠. 그러니 그저 미워만 하거나 사갈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반성해야 하는 것은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습관입니다. 너무 의지했고, 나를 중심에 놓지 못하고 휩쓸린 일상. 탐욕스럽게 정보를 긁어모아 내 안에 가두려 하는 것. 모르면 세상에서 퇴화하게 될 듯한 불안을 제어하지 못한 것. 세상 일을 다 알아야 할 것 같은 강박. 그 마음속에서 저는 제게 쉼을 주는 놀이를 찾지 못하고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제게 주는 쉼. 휴식을 위한 최고의 놀이는 무엇일까요? 나를 가득 채워주는 것. 나를 일으켜 쓰러지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해주는 나를 채워주는 놀이. 그것을 찾는 것이 숙제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습니다. 적어도 세상을 염탐하는 일이 좋은 놀이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