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만약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가벼운 것이 아니며 무겁다. 반복이 묵직하고 고통스럽다면 일회성의 삶은 가볍고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로 묵직함은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진실, 거짓. 우연, 필연. 약함, 강함. 모든 대조적인 모순 가운데 가장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습이 가장 신비롭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모순을 쿤데라는 네 남녀의 이야기 속에서 보여준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연인이다. 사비나와 프란츠도 연인이다. 그리고 토마시와 사비나는 에로틱한 우정의 관계이다. 테레자는 무겁고 토마시는 가벼웠다. 사비나도 가벼웠고 프란츠는 무거웠다. 이 네 남녀의 이야기다.
프란츠와 사비나
사비나는 거짓말하지 않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자신의 사랑을 감추는 것이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알게 된 사랑은 무게감을 가진다.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는 거짓이 없는 것이다.
프란츠는 어둠에 매력을 느낀다. 절정의 순간 프란츠는 눈을 감는다. 사비나는 눈을 감은 남자를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프란츠를 보는 것이 불쾌해 눈을 감지만 그녀에게 어둠은 불화,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이라고 느낀다. 둘은 다른 이유로 눈을 감는다. 사비나는 우울할 때에 공동묘지를 산책한다. 그녀에게 공동묘지는 요람처럼 아름다웠다. 프란츠에게 공동묘지는 뼈다귀가 모여있는 하차장에 불과했다. 애초에 둘의 사랑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신 힘을 가끔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야?”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사비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이 말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둘째, 이 말 때문에 프란츠는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사비나는 프란츠를 배신한다. 진리 속에 살기 위해 본처를 배신한 프란츠를 배신한 것이다. 그녀는 정조가 아닌 배신에 욕구를 느낀다. 배신이란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며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녀가 배신의 욕구(테레자도 가끔 가벼워지고 싶은 추락욕구를 느낀다.)를 느끼는 이유는 그녀 속에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벼운 것이 그녀에게 참으로 좋은 것일까? 사비나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소식을 듣고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 둘은 무거운 상태로 떠났다. 후회하는 사비나의 심리를 묘사하며 쿤데라는 무거움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사비나는 자신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원망스러울까?
지금까지는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가득 채워주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 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제네바를 떠나온 이래 그녀는 이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 그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사비나의 부모는 같은 주에 세상을 떠났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같은 순간에 죽었다. 갑자기 그녀는 프란츠와 함께 있고 싶어졌다.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테레자
반복된 우연은 운명의 모습으로 그녀를 토마시에게 이끌었다. 테레자가 즐겨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는 연인 브론스키를 기차역에서 우연이 만난다. 테레자는 카페에서 우연히 책을 읽고 있는 토마시를 만난다. 가벼움의 극치였던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토마시에게 갈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반복되면서 운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단지 우연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해 보이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시와 첫 동침 이후 테레자는 토마시를 찾아간다. 그녀에게는 우연이라는 부실한 명분 밖에 없었지만 손에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티켓을 들고 있었느니 자신감은 있었다.
자신감이 불안과 고통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연을 운명이라 느낀 순간 테레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토마시에게 갔지만, 토마시는 한 없이 가벼운 사람이었다. 여러 여성과 가벼운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테레자와는 도무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토마시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운명, 필연은 무거운 것이다. 토마시에게 필연은 의학적 욕구뿐이었다. 테레자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가벼운 우연이 연속되어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떠밀려 간 것이었다.
자신의 호수에 물이 차는 것을 싫어했던 토마시는 물이 차오를 만하면 퍼내고 들어올만하면 담을 쌓았다. 그렇게 호수는 항상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테레자는 자신의 호수에서 물이 빠져나갈까 두려워 항상 담을 높게 쌓았다. 그런데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테레자는 호수의 담장을 허물었고 순식간에, 토마시가 손쓸 새도 없이 토마시의 호수는 테레자라는 물로 채워졌다. 토마시의 호수는 테레사로 가득 찼고, 테레자의 호수는 비어있다. 그 결과 테레자는 불안했고 토마시는 답답했다. 테레자는 토마시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괴로웠고, 토마시는 테레자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때문에 답답했다.
토마시는 원래 잠자리를 한 후 여자를 돌려보내지만 테레자에게 열이 나는 바람에 돌려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잠을 자는 테레자의 모습을 보고는 ‘바구니에 넣어져 ‘에 떠내려온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토마시는 사랑이란 것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항상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에, 토마시에게 이 은유는 위험했다. 사랑이란 은유로 시작된다. 내 앞에 있는 그녀가 어떤 특별한 은유적 표현으로 내 뇌의 한 구석에 새겨진다면 더 이상 다른 여자들은 침입하지 못한다. 가벼움을 추구하던 토마시는 우연의 반복으로 운명을 경험했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시작되었는데 토마시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원망했던 것이다. 그의 곁에 있는 그녀의 존재가 참을 수 없는 우연으로 비쳤던 것이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의 곁에 있는 것일까? 누가 그녀를 바구니에 넣어 물에 띄워 보낸 것일까? 그리고 왜 그녀는 토마시의 침대라는 강변에 접안했던 것일까? 왜 하필 다른 여자가 아닌 그녀였을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중요했다. 여섯 우연의 소산인 그녀, 외과 과장의 좌골신경통에서 태어난 꽃 한 송이. 모든 ‘es muss sein!’의 피안에 있었던 그녀, 유일하게 그가 진정으로 애착을 갖는 그녀. 그의 모든 결심 기준은 하나뿐이다. 테레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 것. 토마시는 정치범은 구할 수 없었지만 테레자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 아니다. 그것조차도 그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탄원서에 서명한다면 경찰이 더욱 자주 그녀를 괴롭히러 올 것이며 그녀의 손은 더욱 심하게 떨릴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생매장당한 까마귀를 꺼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토마시는 테레자를 알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이라 믿었던 테레자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채 그에게 갔다. 이 둘의 만남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가벼운 토마시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무거운 테레자는 운명이라 믿었다. 서로의 만남을 각자의 렌즈로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벼웠기에 무거움이 밀려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테레자의 불행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느낀 토마시는, 자신의 호수가 테레자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디어 그는 테레사의 렌즈로 둘의 관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호수가 합쳐지고 달랐던 감정의 수위가 한 지점에서 맞춰졌다.
한밤중에 그는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깨웠다. “내가 땅에 묻혀 있었어. 오래전부터 당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나를 보러 왔어. 당신이 지하 무덤의 문을 두드리면 내가 나갔지. 내 눈 속에는 흙이 가득했어. 당신이 말했어. ‘당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군’ 그러더니 내 눈에서 흙을 없애줬어.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어쩄거나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 눈 대신 그 자리에 구멍만 있어.’ 그러고 나서 당신은 오랫동안 떠나 있었는데, 나는 당신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어. 몇 주가 흘러도 당신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 나는 내게 돌아오는 당신을 맞이하지 못할까 두려워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했어. 어느 날 드디어 당신은 돌아와서 지하실 문을 두드렸는데, 나는 한 달 내내 담을 자지 못해서 너무 탈진해서 겨우 계단을 올라갈 힘만 남아 있었지. 드디어 문을 열자 당신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어. 내 안색이 나쁘다고 했어. 내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다은 것을 느꼈지. 뺨은 움푹 패고 두서없이 허둥지둥거리기만 했으니. 나는 당신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말했지. ‘용서해 줘. 요새 나는 전혀 잠을 자지 못했어.’ 그랬더니 당신은 위로하는 듯하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말을 했어. ‘그것 봐 당신은 좀 쉬어야 해.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져야만 해’ 나는 당신이 휴가라는 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잘 알아! 한 달 동안 날 보지 않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지. 다른 여자와 함께 지낼 것이기 때문이야. 당신은 떠났고, 나는 다시 무덤 속으로 내려왔어. 나는 또다시 당신을 마중 나가기 위해 한 달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거고, 한 달 후 당신이 돌아올 때면 몰골은 더 흉할 테고, 그러면 당신이 더 실망할 거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 그는 이보다 더 처절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테레자를 품에 꼭 껴안았고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감당할 힘이 이제 그녀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폭탄을 맞아 뒤흔들릴 수도 있고, 조국이 매일 새로운 침략자에게 약탈당하고, 그가 사는 거리의 모든 주민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차마 내놓고 고백할 순 없겠지만 이보다는 훨씬 쉽게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테레자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이 찢어졌다. 심장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토마시가 자신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뜻일까? 자신의 가벼움으로 인해 테레자가 고통받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토마시만의 잘못일까? 스위스에서 체코로, 다시 체코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사람이 아니라 트럭 엔진을 고치고 있는 토마시를 보고는 테레자는 갑자기 자신이 토마시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고 후회한다. 토마시에게 유일한 필연은 의학뿐이었는데, 자신 때문에 이런 시골에 추락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테레자는 자신의 약함을 인질 삼아 토마시를 끌고 다녔으며 그가 자신처럼 약해지기를 바랐다. 테레자는 자신의 약함이 악함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토마시에게 고백한다.
“당신이 늙기를 바라. 지금보다 열 살 더, 스무 살 더!”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나약하길 바라. 당신도 나처럼 나약하길 바라.”였다.
춤을 추면서 그녀는 토마시에게 말했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떄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밑바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취리히에 있었다면 당신은 환자들을 수술했겠지” “당신도 사진일을 했겠지” “비교할 수 없어. 당신에게 의사 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했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상관없어. 나는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 거야!”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마지막에서도 테레자는 무거움을 버리지 못한다. 토마시의 타고난 운명, 사명은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토마시는 말한다. 사람에게 타고난 사명 같은 것은 없다고. 우연히, 흘러가는 데로 사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IF
결국 토마시와 테레자는 한 곳에서 만났다. 그렇다면 이 둘의 마음이 좀 더 일찍 합쳐져서 빨리 평안에 이르지는 못했을까? 만약 토마시 또한 테레자처럼 진중하고, 필연과 운명을 쫒으며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테레자의 일찍 진심을 알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토마시는 가벼웠기 때문에 테레자로 채워질 수 있었다. 가벼웠기에 그의 뇌 속에는 다른 여자를 표현하는 ‘은유적 표현’이 없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보는,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온 아이’가 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각인되어 결국 테레자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매사에 진중한 남자였다면 테라자는 덜 공허했을지언정, 남자에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쏟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테레자 역시 가벼운 토마시였기에 한순간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토마시였기에 토마시의 호수가 빈틈없이 테레자로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둘이 더 일찍 행복해지지 못한 것은 토마시가 가볍기 때문이 아니다. 토마시가 갑자기 늘어난 질량에 익숙하지 않아 방황한 것이 이유일 것이다. 둘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갯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기에 가벼웠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공포도 없었다. 공포는 뭔가를 모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슬픔은 뭔가를 알기에 느낀다. 테레자는 뭔가를 알기에 슬펐다. 곧 둘의 행복한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슬퍼졌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책을 읽는 데에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토마시와 테레자에게 애정이 생긴듯하다. 나 역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