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올수록 대구 출장도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지금의 삼성라이온즈파크도 덥겠지만 대구시민야구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 뜨거운 것이 존재했다. 선수들조차 두려워하는 그곳은 땅 위에 달걀을 깨뜨리면 바로 프라이가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온도가 높은 건 물론이요, 아주 습하기까지 해서 해가 질 때까지는 그 더위를 오롯이 버텨내야 한다. 그런데 또 비는 잘 안 온다. 천연 돔구장이라고 할 정도로 우천 취소가 없었다. 아무튼 신비한 날씨를 가진 신기한 야구장이다. 하지만 그 날씨를 무릅쓰고도 대구 출장을 갔던 건 여러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시민야구장은 지금은 사회인 야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2015년까지는 삼성라이온즈의 홈구장이었다. 삼성라이온즈가 명문구단이 될 수 있었던 은혜의 땅이기도 했다. 특히나 내가 데뷔한 2013년도부터 삼성라이온즈는 역대급 왕조를 세우고 있었다. 많이 이겼고 어쩌다가 연패에 빠지더라도 ‘괜찮아 오늘 이기면 되지.’라는 선수들의 마음이 항상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 선수들도 프런트도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주었다. 그게 현장 아나운서로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가끔 우리 방송사가 중계를 갈 때 승률이 안 좋다고 눈치를 주는 팀도 있었고 팀 분위기상 자유롭게 인터뷰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삼성라이온즈는 원래도 높은 승률에 우리가 가면 거의 매번 MVP 인터뷰를 했으므로 (이겼다는 뜻이다.) 팬들이 우리를 반기는 건 당연했다.
또한 대구구장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48년에 개장하여 올해로 74년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녹아있을까. 시설들도 그 오랜 시간을 다 머금고 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중계석과 구장과의 거리다. 정말 코앞에 있다. 잠실 야구장을 예로 들면, 야구장이 있고 홈플레이트 뒤에 중앙석이 있고 그 위에 중계석이 쏙 들어가 있다. 다른 구장들 역시 중계석과 그라운드는 꽤 거리가 있어 눈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화면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봐야 한다. 그런데 대구구장은 그라운드와 중계석 사이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 2층에 중계석이 있다. 이게 얼마나 가까운 거리냐 하면,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다. 지금이야 비디오 판독이 전광판으로도 나오지만 그때는 중계화면이 아니면 선수들을 비롯하여 관중들도 결과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이 위를 바라보며 ‘아웃이야?’ 물어보면 화면으로 결과를 보고 ‘아웃이야..’하고 손짓을 해주곤 했다. 지금은 신축구장인 라이온즈파크에서 최신식 시설들과 함께하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가 나오면 경기 중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며 그리워한다.
야구장 조명 아래 서면 화면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칙칙하게 나온다. 그래서 현장에 있을 때와 스튜디오에 있을 때 다른 나의 얼굴색에 놀랄 정도다. 야구장은 야구공이 잘 보이면 그뿐, 나의 얼굴은 회색빛으로 나와도 상관이 없다. 흔히 말하는 카메라 마사지가 여기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구구장은 카메라가 희한한 곳에 있었다. 다른 구장들은 보통 더그아웃 바로 옆에 카메라가 있어 시선처리가 익숙하지만 대구구장은 1층도 2층도 아닌 1.5층 같은 곳에서 내리찍는다. 셀카는 보통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으면 잘 나온다고 하지만 이 무기 같은 카메라는 그렇지가 않았다. 옆에 선수를 보고 내 손에 질문지를 보고 카메라를 보려면 위로 시선을 올려야 해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대구구장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남겨달라는 어느 매체의 부탁을 받고 중계진들이 다 같이 사진을 남겼다. 2015년 9월 9일이었다. 제목은 ‘우리도 마지막일 것 같아서.’ 말 때문인 건지 정말 그 후로 대구구장을 간 적이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편해진 라이온즈파크가 우리 곁에 있지만 가끔은 낡디 낡았던 대구구장이 아리게 그리울 때가 있다. 얼굴이 회색으로 나와도 좋으니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한 번쯤 다시 방송할 날이 꼭 다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