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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10. 2023

결혼할 결심

S가 울며 전화를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쳇, 뭐야 애인이 있었어? 아차차, 지금 난 위로자 역할. 내 역할에 맞게 차근차근 울고있는 그녀를 달래 본다. 누구예요. 얼마나 된거예요. 무슨일이 있었던 거예요. 괜찮아요?


만난지는 3개월쯤 됐다고 했다. 결혼 이야기가 오고갔다고 했다. 3개월만에 결혼 생각을 했다고? 놀랐지만 안놀란 척을 했다. 그녀가 너무 꺽꺽 울었기 때문이다. 헤어진 이유는 애매하게 말한다. 하긴, 뭐든 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법이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나의 위로와 X에 대한 편파판정일 뿐. 지하철을 타고 오는 40분 내내 나는 생판 모를 그 남자의 인성을 욕해주고 S에게 곧 더 좋은 내일이 올거라는 종교같은 희망을 심어줬다. 말하면서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나는 그다지 인생 희망론자는 아닌데.


한달의 제주살기를 마치고 마음을 수습한 S가 다시 날 찾아왔다. 살도 좀 찌고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세상 논리적이고 강해 보이는 그녀가 어찌 이리 섬세하고 약한 마음을 가진 것인지 의문이지만, 모든 사람에겐 감추고만 싶은 결핍이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 S는 결혼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다. 자신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남자를 만날 거라고 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거라고. 나보가 두 살 이나 어린 그녀가 뭐가 그리 급한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쨌든 그 마음도 존중해 주었다. 사람마다 소중한 가치관은 모두 다른 것이니.


문제는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 폄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본인도 여자면서. 그녀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비혼의 직장상사들을 험담했다. 그 상사는 결혼을 못했고 어쩐지 그래서 성격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녀는 세상이 결정한 '정상적인 삶'의 기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은 절대 저렇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준비했다는 듯 슬며시 이런 말을 꺼냈다.


제가 사실은 결정사 등록 해놓은 게 있거든요. 33살 제 생일 기념으로 저에게 선물한 거예요. 가입비가 한 500만원 정도 됐는데 그냥 명품백 하나 질렀다고 생각했어요. 총 다섯 번을 소개 받는건데 몇 번 만나고, 전남친 만나는 동안은 홀딩해놨거든요. 이제 다시 연결해달라고 얘기해놨어요.


S는 주말에 결정사에서 소개해준 남자와 만남이 있다고 했다. 수줍지만 자랑스럽게 사진을 보여준다. 꽤 멀쩡하게 생겼다. 그래요, 아픔도 겪었으니 이제 좋은 일들만 있길 바래요,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만남을 응원해주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왜이리 착잡하지? 라고 생각을 해보니 Y때문이다. 내 마음을 난도질했던 Y. 보고 싶었다며 꽉 안아줄 때는 언제고, ‘우리’에 관해 달콤한 내일을 지껄일 때는 언제고, 기다리란 말을 철썩같이 믿었더니만 군사 훈련하듯 심해 밑으로 잠수타버린 너, Y. 지키지도 않을 말을 사람들은 참 쉽게 내뱉는구나 생각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본다. 그런데 감은 두 눈 위로 자꾸만 어떤 단어가 맴돈다. 오늘 참 결정적이었던 그 단어. 결정사.. 결정사.. 결정사.. 결정사…!


약속된 시간은 11:00. 하지만 5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1층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하나 빵 하나를 주문하고 들고 온 책을 읽어보지만 단어 사이 사이 공백처럼 정신이 자꾸 아득해진다. 나 지금 좀 비장하니? 나 지금 떨고있니? 시간은 빨리 가는 것처럼 느리고, 느리면서 호들갑이다. 시계를 본다. 10분 정도는 빨리 가는게 예의지, 라며 코트를 입고 가방을 맨다. 카페 유리문에 한번 더 나를 점검한다. 음 오늘 좀 괜찮아.  


꽤 허름한 건물인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감당 안되는 분홍분홍한 사랑스러움의 공간이 펼쳐진다. 피아노 교습소처럼 칸막이쳐진 쪽방마다 열심히 상담받는 남자사람 여자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쭈뼛거리고 선 나에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극 E성향의 결정사 대표 목소리가 닿는다.


 왔구나?

유미씨 맞죠? 어서와요  왔어

일단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지금 상담이 많이 밀려있어서

이거 끝내고 금방 갈게 

금방 갈게요, 이따 봐요?


아 네, 네. 내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사라지는 그녀. 나도 저들처럼 나란한 작은 쪽방 한 구석으로 안내된다. 벽 틈으로 새어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외로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다들, 결혼에 참 진심이구나. 뉴스에 보면 요즘 결혼들을 안한다 난리지만 이렇게 다들 열심히 찾고 있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만 해. 서빙된 차를 마시며 5분 여를 기다리니 어떤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들어오신다. 음, 왜 대표가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어머 예쁜 사람이 왔네?


기분이 좋아졌다. 상담실장이라고 했다. 대표가 바빠서 못온다라나 뭐라나. 서로 인사는 간단하게 하고 상담을 가장한 호구조사가 들어가진다. 나이가? 아이고, 좀 많네. 부모님은 뭐하세요? 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직장은 어디예요? 연봉은요? 재산은 어느정도 되나요? 아아 본인거랑 부모님 재산도요. 노후 준비가 되셨는지도 중요한 부분이라서요. 그러고 나서 상담 실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남자분들 머리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건 알고 있죠?


기분이 X같아졌다.


아아 그럴 수도 있다고요. 다른 조건이 다 맘에 드는데 부족한 게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예요. 회원님의 경우엔 만 35세 이상이시기 때문에 가입비는 550이시고요. 아, 그렇죠, 소개받은 분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당연히 새로운 분을 소개해드리죠. 그, 그렇죠. 이 안에서 뭐 여러 번 만나다 헤어지시는 경우가 없진 않죠.. 그렇지만 저희가 다 철저하게 비밀로 해드려요. 저희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회원님들 사진이랑 프로필이랑 PPT에 띄워놓고 어떤 분끼리 매칭이 잘 되실지 무척 고민하고 연결해드리기 때문에 믿으셔도 정말 믿으셔도 돼요. 회원님 나이도 있으시니까 빨리 열심히 만나서 6개월 안에 결혼 목표로 하는게 좋겠어요. 6개월이 좀.. 부담이에요? 그럼 12월 전까지 결혼 하는 걸로 하죠. 아참! 그리고 저희가 성혼이 되면 성혼비가 있으세요. 신랑분 신부분 각각 내시는 건데요, 성혼비는 500만원 입니다. 가입비랑 성혼비 그렇죠, 따로 내시는 거예요. 아 모르셨구나.. 좀 부담이시구나.. 그러면 음.. 20% DC해 드릴게. 네? 회원님 안하신다구요..? 회원님, 회원님, 얘기 좀 더 해요, 저기요 회원님, 회원님!! 회원님!!!


그렇다. 비즈니스란 원래 다 그런것이다. 있는 결핍을 쑤시거나 없는 결핍을 만들어 자본과 교환하게 만드는 것. 그렇지만 삶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진정성어린 욕망과 외로움이란 본능에 가까운 결핍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비즈니스로 교환되는 것이 과연 '나에게' 맞는, 옳은 방식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돈 천만원. 까짓거 (솔직히 까짓것은 아니지만) 나한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렇지만 정말 천만 원의 투자가 곧 이상적인 미래와 등가교환 될 것이란 꿈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쩐지 나는 이 짧은 대화속에서 알아버린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나의 미래를 설계해달라 믿고 맡기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정보는 지워주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그곳을 부리나케 뛰쳐 나왔다. 몇 번의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네가 그렇게 눈이 높으니 결혼을 못하지. 네가 그렇게 자존심을 부리니 결혼을 못하지.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더 나이 먹어서 (너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서두르는게 좋을거야. 제발 아무나 만나서 결혼해. 혼자보단 둘이 행복한 거야. 너 나중에 정말 후회할거야. 그래, 뭐 누군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난 주제파악도 못하고 홀로 늙어가는 처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나는 이런 내가 좋은 걸. 좋은 삶을 살았다는 기준이 <결혼>인 세상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실패한 존재이겠지만 나에게는 지키고 싶은 소중한 다른 가치들이 많이 있는걸. 누군가가 정해놓은 보통의 삶과 행복이란 기준에 꼭 맞추지 않아도 누구든 존중받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고 여전히 믿고 있는 걸.


이 모든 건 작년에 겪었던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혼자다. 그러니 '그들'의 기준에 나라는 삶의 가치는 더 감가되고 결혼은 더더욱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저러고 있지'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더 좋고 분명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될 나다. 주어진 이 삶을 살아내려고 부단히 고민하고 애쓰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도 할 거다.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하고, 불같은 연애도 했다가 비참하게 차여보기도 하고 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할거다. 여전히 그렇게 '혼자'라는 불안을 지고 살아갈 거다. 하지만 결코 '평범'의 범주 안에서 안전해지기 위해 누군가 정해놓은 시간과 트랙 위에서 달리고, 그들이 선정한 삶의 순위로 나의 가치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난 분명 나에게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루하루 내 삶을 더 뜨겁게, 나답게, 매이지 않게 살아내야지. 이것이 미혼도, 비혼도 아닌 그저 하나의 삶을 사는 나만의 <결혼할 결심>이다.



202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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