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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디 May 08. 2024

책 읽느니 차라리 수학문제를 풀게요.

한결같이 책을 싫어하는 중2 아들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책으로 놀게 해 주세요."

"책을 아이의 눈길과 손이 닿는 곳에 여기저기 두세요."

"아이 혼자 읽게 두지 마세요. 부모가 읽어주세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고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공통된 조언들이다.

입시교육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캘리와 폴도 책의 중요성만큼은 그 어느 부모보다 잘 알고 있기에 독서습관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 교육이다.

그런데 캘리는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라는 것이다.


캘리와 폴은 둘 다 책을 좋아해서 식탁이나 거실 책상에 앉아 책 보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런 조언을 읽을 때마다 "우린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겠네"했었다. 집 거실 전면에는 당연하게 책장이 가득 들어서 있었고, 결혼할 때 샀던 작은 TV는 존재감 없이 작은방 어딘가에 있었다. 육아서에 나온 대로 캘리는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면서 책을 쌓아두고 읽고 또 읽어줬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책과 여행이 전부였다고 생각하는 캘리였다.

이런 환경에서 똑같이 컸건만 딸 웬디는 책을 참 좋아하고, 아들 핸리는 책을 참 싫어한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밤새 책만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웬디와 달리 핸리는 책 읽느니 수학문제집을 풀겠다고 하는 녀석이다.

어릴 때는 책을 꽤나 좋아했는데, 초등 5학년쯤부터 독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누나가 핸리의 취향을 저격할만한 '나 혼자만 레벨업', '전지적 독자시점'과 같은 웹소설 종이책을 추천해주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 책들로 흥미를 끌어올려보고자 했으나 그 책들을 완독하고 나면 그 이상은 없었다. 주말에 가족들이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있어도 옆에 와서 게임을 하는 핸리다. 혼자 하는 게임은 외롭다며 늘 가족들 옆에 와서 하는 건 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핸리가 책을 싫어하게 된 배후에는 게임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들과의 게임실랑이가 시작된 것도 이쯤부터였던 것 같다.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적당히 풀어주자니 끝이 없고. 참 어려운 문제다.


이런 핸리가 책을 자발적으로 읽은 며칠이 있었으니, 작년 미국에서 지낼 때 국립공원 로드트립을 다닐 때였다. 요세미티부터 옐로우스톤까지 미서부 쪽 국립공원을 약 보름에 걸쳐 여행을 다녔는데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데이터도 안 잡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10시간씩 차로 이동할 때도 데이터가 안 잡히는 도로가 많았다. 특히 국립공원 내 롯지에서 숙박을 하게 되면 세상의 온갖 디지털기기와 단절된다. 그야말로 강제 디지털 디톡스 환경이다. 그런 환경 속에 우리차에는 책이 단 한권 있었는데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이었다. 잠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황이 오니 핸리는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1이 재미있어할 만한 책은 아니었는데, 핸리는 끝까지 다 읽었다. 와이파이 환경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이나 학교에서도 이렇게 디지털기기가 아예 차단되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하고 캘리는 잠시 생각했다. 폰에 넘쳐나는 각종 콘텐츠 때문에 집중력이 짧아지니 점점 책에 집중하기 어려운 뇌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른도 통제가 잘 안 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이제 핸리는 중2다.

친구의 말이 부모의 말보다 영향력이 더 큰 나이다.

다행인 건 학군지로 편입학을 했더니 면학분위기가 좋은 편이라서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친구들처럼 해야 할 학원 숙제가 없던 핸리는 입학 후 책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과 같은 책들을 말이다. 수련회 갈 때도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이 문제집을 가져간다고 하자 핸리도 책을 챙겨갔다. (그런데 수련회 가는데 문제집과 책이 웬말인가..이건 면학분위기가 너무 심한 건 아닌가)


동기가 어찌 되었든 중학교 때는 그저 책이나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핸리는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 역시 지켜보고 기다려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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