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01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야.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 언젠가 이런 문장을 입 밖으로, 말로 뱉어보고 싶었다. 깜짝 놀랄 만큼 멋진 일이 벌어졌을 때 말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서른이 넘어 느닷없이 백수가 되어버린 지금,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야….
요즘 같은 불경기에 믿을 구석 하나 없이 퇴사할 만큼 비범한 사람이 아니다. 비빌 데가 있었다. 이직할 곳도 있었다. 하지만 야심 가득한 이직이 실패로 끝나버렸다. 새 회사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발적 퇴사. 기껏 올린 연봉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일이 너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보잘것없는 이유로 이 나이에 백수가 되다니. 이직 실패를 인정하고,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경력 이직 첫날, 온보딩이 끝나기 무섭게 업무가 떨어졌다.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실무가 시작됐다. 업무량도 많고 업무 강도도 센 편이었지만, 사실 이런 것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팀원과 리더 모두 유능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어떻게 하면 함께 성과를 만들며 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도 알 것 같았다. 순조롭게 새 회사에 적응 중이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두 가지 문제점을 인지했다. 내부 시스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위험 요소가 지나칠 정도로 불안하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같은 패턴의 일을 반복하는 걸 내가 견디지 못한다는 것.
퇴사하고 싶은 나, 퇴사할 수 없는 나. 두 자아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한 놈은 딱 1년, 아니 딱 11개월 2주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정 안 되면 도중에 이직을 하는 방법도 있을 테니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고, 바깥은 춥다고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했다. 다른 놈은 자꾸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이런데 일 년을 정말 할 수 있겠어? 한 달 일해야 연차 하나 생기는 주제에 다니면서 이직은 어떻게 할 건데? 1년을 다니지 않는다면 이 회사 경력은 쓰지도 못할 텐데 그 공백은 또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시간이 갔다. 회사도 골치가 아팠지만, 방통대 편입 첫 학기 기말고사가 당장 눈앞에 있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면서 망한 이직을 생각할 때면 머리가 아팠다. 모든 게 내 탓이었다. 할 일은 명확했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내 책임이었다. 휴일을 시험공부에 다 바치고 기말고사를 친 다음 날, 출근한 회사에서 여섯 시간을 일하고 깨달았다. 답은 퇴사다.
3년 넘게 다닌 이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과 만기된 적금이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놀 수는 없다. 백수의 삶을 빠르게 청산해야 한다. 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맛이 벌써 그립다.
무직이 되는 순간, 목표는 두 가지다. 우선 빠른 백수 탈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그리고 일하지 않는 시간을 백수답게 누리기. 백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가진 게 시간뿐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원 없이 하고 소중한 일터로 돌아갈 계획이다. 물론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백수일기가 금방 끝나버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