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05
백수가 되어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 약속 하나 없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됐다. 오전 11시 15분, 재빠르게 양치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3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쓰지 않은 모닝 페이지 노트를 펼쳐 떠오르는 것을 마구 적었다.
모닝 페이지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의식의 흐름을 세 장에 기록하는 것이다. 지난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통해 모닝 페이지를 알게 됐는데, 회사 때문에 괴로웠던 시기에 모닝 페이지가 많은 도움이 됐다. 아침에 써야 한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기상 직후, 손글씨로 세 장, 나 혼자 읽기 위한 글이라는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무엇을 써도 괜찮다.
저자는 모닝 페이지를 창조성 회복의 도구로 설명하는데, 실제로 모닝 페이지를 쓰다 보면 하고 싶은 것들을 마구 떠들게 된다. 밤에 쓰는 일기에 '오늘도 제가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반성이 가득하다면, 모닝 페이지에는 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다. 생생하고 이상한 꿈, 오늘 해야 할 것, 하고 싶은데 할 자신이 없는 일들, 주식과 코인 얘기, 노래 가사, 보고 싶은 영화, 마음이 불편했던 일, 갑자기 떠오른 이상한 사업 아이템…. 올해 초에 쓴 모닝 페이지에는 악몽을 욕하는 내용, 회사 스트레스와 고군분투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매일, 오래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많다. 브런치 작가 신청, 러닝, 포트폴리오 만들기를 비롯한 이직 준비까지. 펜을 든 아침마다 솔직하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내용을 적은 후에는 스스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비록 이직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새 회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닝 페이지를 통한 나와의 대화가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 다시 모닝 페이지를 써보기로 한다.
꼬박 한 시간 동안 모닝 페이지를 쓴 후 씻고 어제 산 소금빵을 먹었다. 우선순위 두 번째가 건강한 습관이지만, 좋은 식사 습관을 만드는 데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본격적으로 구직 준비를 시작하기 전,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사러 집 밖을 나섰다. 나의 빛, 사랑, 연료, 각성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무시무시한 구직의 세계로 다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낮에 고작 10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날이 너무 더운 나머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양산도 후덥지근한 공기를 막아주지 못했다. 고막이라도 시원해지기를 바라며 우즈의 '파랗게'를 들었다. 귀만 시원하고 온몸이 더웠다.
커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뒤 원티드와 잡코리아에 로그인했다. 검색창에 직무를 적고 엔터를 누른다. 우르르 뜨는 공고를 보니 잠시 아득해진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미친 회사도 많다. 공고에서 블랙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빠르게 넘어간다. 두 달 전에 본 공고가 아직도 있다니, 여기도 지나간다. 애매한 곳들은 일단 북마크를 해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부터 우선 지원하기로 한다.
이미 한 번 이직을 했다 퇴사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한 회사를 지원하는 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포트폴리오도 있고, 각 기업에 맞춰 써둔 자기소개서도 많다. 잘 섞기만 하면 된다.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처럼, 가진 것 중 가장 맛있는 내용만 골라 마구 섞는다. 순식간에 네 곳에 지원을 마쳤다. 오늘 구직 활동은 여기서 끝이다. 이제 오후 네 시 반이다.
가장 중요한 구직 활동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스픽 20분, 롱블랙 읽기 10분. 이제 다섯 시다.
동네 분식집에 가서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스트릿우먼파이터를 틀어두고 한 시간 반 동안 화장실 청소와 방 청소를 했다. 방전이다. 여덟 시에 티켓팅을 해야 하는데 누워서 그대로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 티켓팅을 시도했는데 망했다. 아홉 시다.
자기 전까지 스우파를 보며 핸드폰을 했다. 서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시간이 많다고 아주 잘 쓰지는 않는구나, 다시 깨달았다. 인간이란….
무더운 여름 낮에는 외출을 삼가자
매일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오전 루틴으로 만들어 실천하자 (기상→모닝 페이지 쓰기→씻기→모닝 커피→구직 활동→스픽→롱블랙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