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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우 Oct 06. 2020

이별하셨나 봐요...

아름다운 이별이 되지 못한 이유


  눈물을 훔치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마 누군가 봤다면 '이별하셨나 봐요.' 라며 휴지를 건넬 법한 장면이었다. 15년 전 대학교 졸업을 앞둔 추운 어느 날 이별 통보를 해오던 선배와의 마지막 만남 같았다. 너도 취업을 했으니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라며 어줍지도 않은 위로를 하던 그 선배는 이미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던 거처럼, 더 좋은 회사에서 다시 만나자는 다정남 코스프레의 사업부장도 이미 플랜비가 있었다.


 분명 전에도 시그널이 있었을 텐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모르고 싶었던 거 같다. 취업 준비로 바쁘다던 그 선배의 시그널을 모른척했던 거처럼


 출산을 하던 날 첫 출근을 했던 사업부장

(출산휴가도 못 들어가고 사업부장의 출근만 기다리다 첫 출근 날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인수인계도 못하고 휴가에 들어갔다.)

못 만나서 아쉽고 회복 잘하고 보자는 연락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었고, 3개월의 출산휴가 후 복직한 내게 일을 시키지 않던 그 사람을 보고 배려심이 깊다고 생각했었다.


진짜 미련 곰탱이다.


 14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복 MD로 입사했던 나.

단단해지라고 엄하게 가리켰던 팀장님, 남자들 틈에 고생한다고 맛있는 밥과 쌉싸름한 술로 나를 살찌우던 선배들, 해도 뜨기 전 출근해 해가 지고 나서야 퇴근했던 나, 목구멍 터져라 싸우던 일들, 최연소 승진의 연속, 팀장

이런 일들은 나에게만 추억이고 역사일 뿐 타인에게는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품 나는 일상일 뿐이었다.


 퇴사 권고를 들은 후의 출근은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이게 꿈인가 싶어 눈은 번쩍 떠졌으나 출근할 생각을 하면 눈 앞이 다시 깜깜해졌다.


 노무사를 선임해 회사와 정면으로 싸워 보라는 조언이 있었지만 영혼까지 너덜너덜 해지고 결국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던 선배가 떠올라 그 짓은 못하겠고

퇴직 보상금(?)이라도 두둑이 받고 나오라는 친구의 이야기도 결국 실패로 끝나고 퇴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던지라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조용히 퇴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고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들어가는 건 그렇게 어렵더니 나오는 건 서류 몇 장과 짧은 면담, 동료들과의 인사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남편에게 회사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하지 않던가.

아마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멋들어지게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프로 사직러를 상상했겠지.

그런 프로가 되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워 스스로를 책망하던 시간들

하지만 그것은 집착이었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려 한다.

앞으로의 나는 꼭 박수를 받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P.S: 나를 내보냈던 그 사람은 내가 퇴사하고 2달 후,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9월의 어느 날  쓸쓸히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다더니 그렇게 빨리 나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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