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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화 Jul 28. 2023

행주산성둘레길

혼자 걷는 즐거움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볼을 스친다. 사삭사삭 흙 밟는 소리를 리듬 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쉬고 싶을 때 쉰다.

다시 일어나 걸을 땐 꾹꾹 생각을 눌러 담아 걷기도 한다.

가고 싶은 만큼 가다가 되돌아올 때도 있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된다.

침묵이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만드는 혼자 걷는 길.   

  

언제부터인가 혼자 걷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 3년 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 그 시작이었다.

고양시로 이사 오면서 한번 가봐야지 했던 ‘행주산성 둘레길’을 가겠다며 집을 나섰다.

10여 분 정도 차를 달려 행주산성 입구에 도착하였다. 한산할 줄로만 생각했던 산성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의 여유로움, 팔짱 낀 연인들의 다정함, 산행 모임에서 지각한 동료를 반기는 왁자지껄함이 활기를 더했다.   

  

행주산성 입구


안내표지판에 행주산성 둘레길 가는 입구 표시가 없길래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길을 모를 땐 시간 낭비 말고 알 법한 사람에게 묻는 게 상책이다. 잽싸게 다가가 물었다.     

“행주산성 둘레길 입구가 어디 있어요?”

“이곳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진강정(鎭江停)이 나오는데, 거기서 내려가면 둘레길이 나와요.”

라며 아줌마는  행주산성 입구를 가리켰다.

산성 밖에서 가는 길도 있냐고 물으니, 아래로 내려가 고양시정연수원 쪽에서 출발하는 길도 있다고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그 길은 혼자서는 좀 무서울 텐데.”라는 말을 덧붙이는 거다.     

 

행주산성 가는 길


나는 두 가지 길 중 가까운 쪽인 행주산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산성 길을 느긋하게 활보하자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 덕에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일행이 있으면 인원수만큼 시선과 생각이 분산되고, 사진 찍기에 바빠 생각이 머물 틈조차 없다.

그런데 그날은 혼자여서인지 스치는 바람, 보이는 풍경, 마주치는 사람들을 눈에만 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담았다. 따스한 햇볕에 감싸이니 보이는 것마다 온기가 머물고 소소한 감동이 따랐다.

저절로 시심이 풍부해지는 시간이디.    


진강정과 수변길 분기점

 

행주산성둘레길


어느덧 귀에 익은 진강정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부터는 흙길이 시작되어 둘레길에 들어선 느낌이 물씬 났다.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헷갈려 두어 번 더 길을 물어 걸었다.

저먼치 엄마와 딸로 보이는 사람 둘이 올라오고 있었다.

절에는 더 생각나는 부모님인지라, 두런두런 얘기하며 걸어오는 모녀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이젠 엄마와 함께 올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현실에 울컥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또래 사람이 엄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효도하려 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어도, 귓등으로 들은 듯 무심했던 시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후회막심일 뿐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강정에서 바라번 한강의 대교들
행주산성 둘레길에서 바라본 행주대교
행주산성 둘레길


조금 울적해지려는 찰나, 눈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한강의 풍광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앞을 향해 계속 걷다 보니 산이라는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노 저어가는 사공이 된 기분이다.      

종착지가 멀지 않은 곳에 통나무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앉아 달콤한 배를 먹으며 쉬고 있는데, 너덧 명 되는 여성 일행이 다가와 행주산성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이곳에서 길을 묻는 걸 보니 고양시정연수원 쪽에서 출발했나 보다.  

 “쭈욱 가다가 진강정 표지판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가세요. 작은 문이 나오거든 안으로 들어가 조금 더 올라가면 행주산성이 보여요”  라고 말해주었다.

출발점에서는 길을 묻던 나였는데, 도착점 부근에선 어느새 길 안내를 하고 있다니.

역시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하다. 앞선 작은 경험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 필요한 안내 역할을 하게 되니 말이다. 역시 인생에선 경험 많은 사람이 최고다.     


진강정


그날 저녁 차를 마시며, 주말엔 꼭 행주산성에 가리라 다짐했건만,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매주는 아니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행주산성 둘레길을 걷는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엔 풀꽃들과 대화하며 걷기도 하였고, 어느 날엔 진강정 벤치에 앉아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을 읽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번 주말에도 혼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러 둘레길을 가야겠다.                    

고양시정연수원에서 시작하는 행주산겅 역사누리길
진강정 앞 벤취-식사합시다 촬영지
진강정 앞 벤취에서 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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