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행복한 자매
‘누가 나와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라디오 전파를 타고 들려오던 이 노래에 왈칵 눈물을 쏟은 젊은 날도 있었다.
노래방에서 절규하듯 이 노래를 부르던 상사를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은 날도 있었다. 최성수의 ‘동행’은 때론 실연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고, 때론 삶의 고독을 달래주기도 하며 나와 동행한 노래다.
이 노래처럼 나와 함께 울어주며 따뜻한 동행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 딱 한 사람만 꼽는다면 2살 터울의 언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랜 동행을 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엔 쌍둥이냐는 말을 듣다가 청소년기가 되자 친자매 맞냐고 할 정도로 외모도 성격도 달라졌다. 이제는 나이 들수록 분위기가 닮아간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언니와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는 닮은 점이 하나 더 있다. 언니는 너무 이른 나이에 시집가서 녹록잖은 결혼생활의 시름으로, 나는 너무 늦도록 결혼하지 않아서 부모님의 애를 끓게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형부가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기에 우리 자매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 되었다.
형부가 9년 병상 생활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간 2020년, 우리는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친숙함이 있지만, 언니와 함께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딱 그만큼의 이유로 선택한 제주도는 슬픔과 고단함이 베인 일상에서 벗어나도록 상냥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사려니 숲, 무지개 해안도로의 밤 바닷길, 제주 올레길에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은 듯 언니는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다.
매년 오자던 약속대로 작년에는 배를 타고 우도까지 들어갔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전기자전거 ‘타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인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뚜껑 없는 ‘타미’를 골라 타자마자 운전미숙으로 담벼락을 받을 뻔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대여점에서 추천하는 다른 종류의 타미로 갈아타고 길을 나섰다. 언니는 내심 걱정됐든지 운전하지도 못하면서, 섬을 도는 내내 래퍼처럼 운전자 가이드용 랩을 쏟아냈다.
“조심해!, 앞을 봐, 저기로 가, 오른쪽으로 돌아야지, 야~~~, 멈춰~….”
멋있는 풍광이 나오면 멈추고, 예쁜 카페가 나오면 들르기를 반복하며 느리고도 즐거운 우도 일주를 마쳤다. 언니의 랩 덕분에 무사고로 멀어지는 우도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도 여행처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쭉 함께 하자. 인생 여행! ’
돌이켜보면, 같은 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혼자인 내게 언니는 엄마같이 따뜻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형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언니에게 아빠같이 의지할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인생 후반전엔 서로에게 든든한 엄마 아빠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여행길에서도,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도 우리 자매의 아름다운 동행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