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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화 Oct 05. 2023

아버지의 유산

독서 습관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친구 ‘빨강머리 앤’은 어떻게 나와 만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아버지의 공이 크다. 제주도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재일교포로 어머니와 결혼하면서 혈혈단신 고국 땅을 밟았다. 이곳에서 정착을 위해 시작한 버스 운전이 평생의 밥벌이가 될 줄은 몰랐겠지. 

근면, 성실했지만 4남매를 키우기가 여간 힘들었나 보다. 자주 돌아가신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아버지! 아버지! "라며 깊은 한숨을 토하며 그리워했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엄마 이상의 존재다. 일찍 사별한 할머니의 빈자리를 홀로 감당하며 키워주었기에. 할아버지를 일본 땅에 묻고, 홀로 돌아온 고국이 이국땅처럼 낯설고 고독했을 것이다. 어린 날 나처럼 친구도 없었을 테지. 

그 고독감이 아버지가 책을 가까이한 이유였을까? 운전이 2교대 근무라, 낮에 집에 있는 날엔 책을 읽거나 노트에 뭔가 적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나중에 이것이 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니, 자식들에게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마음도 컸으리라. 그렇다고 책 읽으란 잔소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의 성난 목소리가 집안 전체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니 우리 형편에 떡하니 전집을 사들이면 어쩌자는 거예요!”

아버지는 옆으로 돌아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전집이라고?” 

나는 애처로운 아버지를 뒤로한 채, 냉큼 건너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오, 놀라워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책상 위에 노란색 표지의 ‘세계문학전집’이  일렬횡대로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일촉즉발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내 얼굴엔 셀렘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지금까지 '국민서관'이라는 출판사 이름을 기억하는 걸 보면, 그 당시 내게는 두 번째쯤 기뻤던 일이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고생 끝에 방 2칸짜리 집을 사서 이사한 것이다. 


당시는 책 외판원이 있었다. 마침 아버지가 밤 근무라 낮에 집에 계실 때 외판원이 찾아왔던 모양이다. 외판원 수완이 좋았는지, 아버지는 엄마 말대로 우리 형편에 맞지 않게 30권짜리 전집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것도 할부로 말이다.

아무튼 그날 아버지가 엄마의 야단 폭격에 장렬히 전사할 결심으로 들여놓은 세계문학전집 덕분에 언니와 나는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학급문고에 있던 책들과는 달리 삽화도 많고, 고급스러워 빨리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느 날은 소공녀의 다락방에 찾아갔고, 어느 날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함께 들판을 뛰어다녔다. 톰 소여와는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건너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그중에 내 친구가 된 빨강머리 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엄마에게 혼쭐이 난 아버지가 그 뒤 전집류 사들이는 것을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색으로 된 전집을 또 사들였다. 예상과 달리 엄마는 이번엔 아무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책을 읽는 우리를 보고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버지의 전집 사랑은 꽤 늦게 구입한 <대망> 전집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 후론 종종 청계천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과 함께 몇 권의 책을 사 왔다.  <대망> 전집은 나도 한참이나 뜸 들이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읽었다. 아버지가 자란 일본의 역사, 그 시대를 풍미한 다채로운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와카의 절제미에 매료되었다. 책과 관련해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새삼 가슴을 파고든다. 

‘집에 책이 없는 것은 인간에게 혼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격언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풍부한 혼을 불어넣어 준 셈이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말이 아닌 부모의 행동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일 것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이가 있다. 바로 미국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이다. 에머슨이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홀로 네 명의 자식을 키워야 했다. 아이들이 외투 한 벌을 돌려가며 입을 정도로 살림살이는 궁핍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자식들을 열심히 공부시켜 네 명 모두 하버드대에 진학시켰다.

에머슨이 어린 날 마음에 새긴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바빠도 늘 책 읽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매일 시간을 내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도 다른 형제들도 모두 그런 모습을 존경했습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에머슨도 책 읽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평생 독서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으리라.      


자식들에게 독서의 존귀함과 기쁨을 행동으로 가르친 에머슨의 어머니 모습에 내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된다. 

비록 내가 에머슨처럼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평생을 구두쇠처럼 살았지만 책을 대할 때만큼은 후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자식들이 마음껏 읽을 책을 사주었고, 자신도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그뿐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 2011년 초,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쓰기가 중단된 일기장 한 권을 발견했다. 태우지 않고 유일하게 집으로 가져온 유품이다. 

때때로 이 일기장을 보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듯이, 나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파도 너머로 '독서습관’이라는 유산을 물려준 아버지를 향한 경애심이 출렁인다.

      

오늘도 이 유산 덕분에 책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활자문화가 쇠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욱 가치를 발할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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