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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화 Jul 27. 2023

윤동주문학관

봄꽃 같은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라는 김소월의 <산유화>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날이다.

“어머,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구나!” 봄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듯, 탄성이 연신 터져 나온다.

겨울을 이기고 온 전사처럼 당당한 연둣빛 새싹, 파란 창공을 향해 손을 흔드는 흰 매화와 노란 산수유.

달려오는 봄의 손을 ‘확’ 잡아본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듯 좋은 봄날을 얼마나 놓치고 산 걸까?

바쁠 망(忙)자는 마음 심(心)자에 망할 망(亡)자가 붙어있다.

바쁜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종종 마음이 무너지거나 잃어버릴 때가 있다.

바쁠수록 길가에 핀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하늘도 한번 올려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바로 오늘처럼.  


매화

   

산수유



오늘은 느긋하게 세검정을 시작으로 해서 백사실 계곡을 지나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수성동 계곡과 박노수 미술관에도 들렀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아름다운 코스이다.

서울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아름다운 곳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종로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눈길을 사로잡는 역사문화유적지로 가득하다.  

    

수성동 계곡



긴 여운으로 남은 것은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이다.

대로변 비탈길 코너에, 시인의 언덕을 배경으로 서있는 흰색 단층 건물이 윤동주 문학관이다.

사진 속 단아한 시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곳은 1974년에 세워졌다가, 35년 만에 용도 폐기된 ‘청운 수도가압장’을 종로구에서 2012년 변모시켜 개관했다고 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문화 공간을 만든 이들의 노고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건물 외벽에 <새로운 길>이라는 시가 세로로 서서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윤동주문학관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 넘어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은 새로운 길     

민들레 씨가 피고 산새가 울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 넘어 마을로


 <새로운 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지 한 달여 만에 지은 시인데, 새 출발에 대한 결의에 감성이 한껏 묻어있다.

풋풋한 대학생 윤동주가 새로운 길을 함께 가자며 두 팔을 벌려 손짓하는 듯하다.

시인의 환대를 받으며 제1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에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이란 정지용 시인의 글귀가 보인다.

마치 동백꽃 한 송이가 ‘쿵’하고 내게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민족의 겨울인 일제 강점기에 독립이라는 봄날을 위해, 봄꽃처럼 저항하다 28세 짧은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의 인생이 안타까워서일까?

9개의 전시대에서, 짧지만 고결했던 시인의 인생을 대변하는 시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하나하나 감상하는 사이, 순백의 시인의 영혼에 물들어간다.     



제1전시실을 지나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과 제3전시실인  ‘닫힌 우물’이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온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용도 폐기된 2개의 가압장 물탱크에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하나의 물탱크는 천정을 걷어내고 중정(中庭)을 만들어 ‘열린 우물’이라고 했다.

그곳에 서서 올려다본 사각의 파란 하늘은 감옥에서 시인이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그 하늘일 거다.

다른 물탱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 ‘닫힌 우물’이라 했다.

이름과 닮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2곳이 흑백의 대비를 이룬다.

‘닫힌 우물’에서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을 관람하고 나면 시인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시인이 조용히 말을 걸어오니까.

이제 시인은 닫힌 우물의 어둠으로 내려앉아 우리를 사색하게 하고, 열린 우물 하늘가 별로 떠서 이곳을 비추고 있으리라. 오늘은 밤하늘 별을 헤며 그를 추억해 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밤>



70년대 개발기, 고지대인 청운동 일대에 아파트를 지었지만,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청운 수도가압장’이 설치되었다.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해주는 곳이다.

이 터에 재생된 윤동주 문학관이 이제는 영혼의 가압장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바빠서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이곳을 방문해 아름다운 시어로 영혼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다시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던 차에 “오늘은 <별 헤는 밤> 엽서에 문학관 인장을 찍을 수 있어요.”라는 안내원의 말에 잽싸게 한 장 찍어 들었다.

나오는 길에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가 함께 하는 공간 그 418일간의 기록>이란 책을 샀다.

문을 나서는 데 시인에게 무슨 증표라도 받은 듯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     

 



문학관 뒤 산책로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면 카페 ’별뜨락‘을 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눈앞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보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친구들과 누상동에서 하숙 생활을 할 당시, 종종 올라와 시정을 다듬곤 했다던 바로 그곳이다.

가장자리에 서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비 앞에 서서, <서시>를 낭독해 본다.

젊은 날 윤동주 시인과 마주 보고 대화하듯.

그때 그가 그랬듯, 지금 나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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