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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준 Aug 10. 2023

그 년은 엉겅퀴보다 독한 것이여!

썩은 나무둥지에서 피어난 녹푸른 이끼



심마니도 혀를 내두르는 독초


지리산에서 나고 자라면서 심마니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통념적으로 여겨지는 숫자를 훨씬 넘어가는 수요를 말해주면 다들 놀라곤 한다.


이름 언급을 함묵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칠삭둥이 아이를 가진 어머니부터 유명한 국회의원 부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약초, 한약재, 버섯 등을 찾아 양약부터 한약까지 싹 다 뒤지며 돌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내거는 맹목적 믿음의 안식처는 산골짜기 심마니인가보다.


그도 그럴것이, 한약방에서 쉽게 구하는 중국산 약초는 애초에 좋기는 커녕 몸에 해롭지만 않으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재에 대해 모르지만, 집 근처에 사는 심마니가 꽤 있기 때문에(각자 영역 및 구역을 공유하며 친하게 지내는 듯 하다) 약초학에 대해 건너 들었던 것만 해도 수백가지인 것 같다. 


나조차도 이렇게 많이 아는 것 같다 생각하면, 심마니는 얼마나 많은 것을 머리에 기억할까?




심마니 아저씨의 덕을 본 것은 몇 번 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관자놀이 부근이 못을 박은 것처럼 아프고 눈물이 났는데, 정작 두통약이나 진정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응급실에 가서 30만원 정도의 CT촬영부터 뇌 검사까지 해도 이상은 없었고, 그나마 마약성 진통제가 일시적으로 효용이 있었다.

 

언제 한번은 새벽내내 두통이 시작되서 악을쓰고 버티다가 소리를 질렀다.

깜짝놀라 부모님이 깨셨는데, 어머니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흔들어주는 건 기억이난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 지도 몰랐다. 그냥 아픈게 얼른 가셨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차가운 수건에 잠에 빠졌던 것 같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깜깜한 때에, 아버지가 나를 조용히 깨우셨다.

무슨일이냐 묻자 아무말도 없이 손가락만한 산삼을 심마니한테 받아 구해오셨던 것이다.

물 한컵과 잘근잘근 씹어 삼키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사극 드라마에서만 봤던 산삼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조그마한 풀뿌리 같은 느낌에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씁쓸한 풀내음부터 치고 올라오는 알싸한 뿌리맛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이상하리만큼 몸이 뜨겁더라.

효능이 뭔진 모르지만, 확실히 무언가 있긴 있나보다.




이런 심마니도 조심하는 풀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쐐기풀이란다.

이렇게 말하면 생각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텐데, 장미처럼 가시가 돋은 풀을 생각하면 쉽다.

장미는 나무지만, 풀에 가시가 날 정도면 얼마나 독할까!


생각보다 쐐기풀을 한국에서 찾기는 매우 어려운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깻잎모양의 풀에 하얀 잔가시가 거칠게 나있는 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냥 먹을 수 없는 깻잎이라 생각해도 좋다)


심마니 아저씨는 쐐기풀은 양분이 빼곡히 있는 곳에서만 자란다고 하셨다.

그래서 옛날에 쐐기풀이 옹졸히 모여있는 곳 밑에는 시체가 묻혀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이셨다.

쐐기풀은 씨앗재배가 매우 어려워 따로 재배하고 키우기가 어렵단다.

특히 한국에서 그리 인기도, 쓰임새도 풍부한 풀은 아니라고.


다만 사람을 기겁하게 만드는 풀이라고 하셨다.


엉겅퀴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꽃에 난 가시에 찔리면 극도로 쓰라리다.

이건 피부가 찔려서 생긴 고통이 아니라 '개미산'이라는 성분이 뿜어져 나온다고 그러셨다.


검사의 기다란 은월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도가 무섭다

엉겅퀴에 쓸리면 하얀 잔가시가 남기는 여운은 극도의 쓰라림과 정신적 고통 뿐이다.


그래서 엉겅퀴 꽃말도 '악의가 가득찬 마음'이란다.

얼마나 독한 맘을 먹으면 이렇게 이름부터 무서워보일까?


우리 어머니도 밭일을 하면서 팔뚝이 붉게 긁혀서 하루종일 긁고 난리를 칠때면, 그때의 반절은 엉겅퀴에 찔렸다고 그러더라. 가시는 뺐는데 여운은 가시지 않는단다.




이런 심마니도 조심하는 엉겅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단다.

바로 마누라란다.

얼마나 뭐라고 쪼아대면 못살겠다고 아들과 산을 탄다고!


치기어린 독을 품은 마음은 분명 해로운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은장도였을 것이니라.

그리고 그 가시돋은 삶에 심마니가 찾아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명절이 되면 심마니 아저씨가 손수 말린 약초를 집에 가져다 주시는데, 그 때마다 심마니 아주머니가 오셔서 담소를 나누곤 한다.


정말 미안하게도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 뿐이다.



'얼마나 독하면 심마니도 혀를 내두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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