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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준 Aug 23. 2023

치매노인의 소리있는 아우성

떨어진 잎사귀가 말한다

지리산에 장마가 왔다.


낯선 폭우는 산기슭을 무너트려 도로가에 빗물을 잔뜩 머금은 흙을 내리깔았다.


그 여파를 첫 번째로 맞닥뜨린 사람은 대로변 닭집 가족이었다.


식당집 아주머니가 "우야노, 우짬좋노"라고 똑같은 말만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여러명이서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몇몇은 아주머니를 달래고 있었다.


건너 들은 말로는, 주인집 아주머니 남편분이 이장님한테 항의를 했다고 한다.

주변 도로 정비를 안해주고, 약속을 안지켰다고.


시골의 텃세인지는 모르지만 동네를 오래 산 주민들은 알고있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남성들은 집을 고치고 포크레인 기사를 불러 일을 처리하며 무너진 집을 고쳤다.

우리 형도 거기에 가서 도움을 주었다.

여성들도 돕는 이가 있었으나, 식당 일을 잘 하는 솜씨좋은 아주머니가 많았기에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렇게 일주일도 안되어 무너진 집은 다시 제 모습을 얼추 찾아갔다.



부끄럽게도 나는 학업을 핑계삼아 공사일에 가지 않았다.

여름철 땡볕에서 일할 자신도 없었거니와, 솔직히 마을 사람을 앞으로 만날 일도 없었기에 연이 없을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안다. 다만 일을 돕지 않았던 내 행동이 틀리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도 부끄러움이 있던걸까?

저녁이 다되고 어둑어둑해질 즈음 아이스 커피 몇 개를 주변 어르신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그렇게 마음속에 죄책감을 알아서 해결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웬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


요상하게도 생긴 할머니가 "써글년! 써글년!"하며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더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도덕있는 시민인 사람인 척 굴고 싶기도 했고, 마을사람들에게 괜한 죄책감도 남아있어서 할머니에게 무슨일인지 여쭈어 보러 갔다.


가까이서 본 할머니는 무서웠다.


뻣센 흰머리

초점이 고정된 허여멀건 젖어뭉그러진 눈알

떨어지기 직전인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손톱색깔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들


무섭지만 어떡하리? 내가 직접 다가간 것을.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할머니는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무언가 호소하듯 말을 했다.

시큼하면서도 썩은 입 냄새가 진동하면서도 침을 튀기시는데, 기분이 나빴다.

처음에는 당혹감이 들다가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내 마음이 180도 달라졌다.


그렇게도 욕이란 욕을 하며 소리지르며 배추 시래기들을 던지는 할머니가 날 때린다던지, 나에게 욕을 하지는 않고 무언가 자꾸만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이 말이 당연한 말 같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할머니가 분노에 차서 나에게 피해를 입힐 거라 생각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단어 몇 개는 알아 먹겠더라.


아들냄, 씨부럴, 써글년, 웃집, 손더리(이게 뭘까? 아직도 이건 모르겠다)

욕을 배제하고 해석을 최대한 해보았는데, 얼추 내가 꼭 자신의 아들내미 손주같단 말 처럼 들렸다.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말을 했지만, 할머니는 귀가 안들리시는지 자꾸만 그 말을 하고는 다시 욕을 하셨다. 써글년이라고.

장장 똑같은 말을 10분정도 들으니 머리가 아파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해도 써글년 써글년. 바빠서 이만 가겠다고 해도 써글년 써글년.

이러시니 원, 20분 정도 되었을까? 

내가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하며 도망쳤다.




이 일이 문득 생각난 어느날 그 할머니에 대해 물어봤다.

아빠는 잘은 모르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위쪽 마을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사실 이게 기독교를 가장한 사이비 집단이더란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를 하거나 무언가 약탈 또는 범법행위를 하지는 않는단다.

무교인 나는 모르지만, 종교적으로 매우 배타적인 행위를 하는 것 같아 보이더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내, 옛날부터 문둥병이나 치매노인들이 있으면 거기에 헌금한답시고 돈을 보내고 자신의 병든 부모를 맡기곤 한다고 그랬다.


옛날부터 촌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하며 별 탈 없을거라고 말하셨다.


실버타운에 예전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거기서 느꼈던 냄새가 아직도 머릿속 깊숙히 남아있다.

늙은 사람들의 홀애비 냄새, 꿉꿉한 먼지를 품은듯한 습기.

그리고 임종을 기다리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너무 무서웠다.

어릴 때 일이지만 너무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도 높은 곳에 올라 갔을 때 처럼 발바닥과 손바닥에 소름이 쫙 돋으며 땀이 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웃음기 없는 사람들 표정도, 목숨을 유지하려는 지렁이가 움직이는 느릿느릿한 행동도, 소독을 하기위해 뿌려지는 쌔한 알코올 냄새도 전부 무서웠다.


나는 그 날 이후로 호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죽는다면 호상은 아니겠거니 싶었다.

차라리 그냥 멧돼지 뿔에 찔려 죽는게 백배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들짐승 주린 배라도 채우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내가 죽는다면 세상에 남기는 것 없이, 나 없어도 홀연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마치 내가 없어도 사람들이 제 할일 바쁘게 살며 어련히들 하루 일과를 했으면 한다.


창창한 나이에 말하는 것도 웃기다.

그래도 내 삶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상상해보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다들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즐길지만 생각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계획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이 온다면 적어도 나는 덜 당황하지 않을까?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울고불고 살려달라며 아프다고 의사선생님 가운 자락을 잡아넘어지겠지만 말이다.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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