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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준 Aug 28. 2023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도박의 무게


우리가 약속을 할 때에, 자신이 가져가는 이득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의 무게와 신뢰를 잊어버린다면 크나큰 대가가 따른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잃어 버릴 것이다.


언약의 무게는 사채업자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새 말에 대한 책임을 내어놓으라 강요한다.


당신은 말했던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지리산 산 너머에 어르신들이 '재미삼아' 화투를 치는 하우스가 있다.

물론 옛날 초등학생의 어릴 적 기억이므로 지금은 어떤 지 모르겠다.


돈 놀이에 술이 빠질 순 없다.

항상 그곳은 술 마신 분들이 많았고, 어린 나에게 동전이나 지폐 몇 장을 쥐어주시곤 했다.

어르신은 그걸 뽀찌(ぽち)라고 하셨는데 승리한 사람이 여윳돈을 다른 이에게 가볍게 나눠주는 팁 같은 것이었다.


화투판이 열리면 그날은 내 용돈이 생기는 날이었기에, 그리도 재밌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오묘한 열기는 화투를 모르는 나에게도 경쟁심과 전투적인 본능을 일깨우곤 했다.


'떠버리 할배'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어렸을 때는 떠버리의 뜻을 몰랐다.

말이 가볍고 수다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란다.


떠버리 할배는 화투에서는 그렇게도 말이 많아지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잔돈을 가볍게 쥐어주고, 심부름도 시키고, 규칙도 알려주고.

가끔씩 어르신들 말마따나 소리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난리 부르스를 치곤했다.


한번은 떠버리 할배가 도박판에서 300만원이랑 자기 송아지를 걸었는데, 시원~하게 탈탈 털렸다.

술김에 그랬다고, 봐달라고 사정사정 했지만.  그럴리가 있나?


떠버리 할배는 엉엉 울면서 내가 미쳤다고, 미쳐서 송아지를 걸었다며 펑펑 울었다.

할배는 남은 막걸리가 어딨냐고 할매한테 물었다.

할매는 부엌에 있을거라고 말하면서 너무 마시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이내 부엌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다되가는 시간에 구급차가 할배를 근처 병원에 데려갔다.

떠버리 할배가 술김에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며 도박한 손가락을 술김에 뭉뚝한 식칼로 내리친 것이다.


그런데 늙은 할아버지가 무슨 힘이 있을까?

깔끔히 잘리지 않은 뭉개진 검지와 약지는 괴사했고, 다행히 중지는 뭉뚝히 잘려 신경은 살았다고 한다.


떠버리 할배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내걸었던 말의 무게를 책임질만큼 능력있는 사람인지를!


그 댓가는 손가락 두개였다.


나는 그 이후로 도박에서 돈을 십원 하나도 안걸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무언가 다른사람과 돈과 관련된 약속을 한다면 '내가 당장 내다버려도 좋을 만큼의 금액'을 쓰기로 생각했다. 

떠버리 할배가 준 교훈 덕에 지금까지는 그 생각 그대로  잘 지키며 살고 있다.


아직은 말이다.


 



떠버리 할배는 어떻게 되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우스장에서 본게 마지막 모습이다.

할배는 남은 엄지-중지-소지를 써서 화투패를 잡고 놀음을 신~나게 하고 있더라.


이 자리를 빌어 떠버리 할배에게 글을 남긴다.


할배요. 손모가지가 싹 날라가도 화투를 주댕이로 쳐불것소!
그래도 술 마실 손가락은 냄겨둬야 쓰지 않나 싶어 글로 말을 냄김니다. 걱정되서 그려요.

돈놀음도 좋지만 거 앵간히만 해두소. 쪼까 보기 그려요잉.
저번에 술마시고 트랙타 몰고 집문 뿌사분것도 다 그러려니 했잖어요.
돈 잃고 찡찡 대는 거 듣기 싫응게 고만하쇼.
술 마시고 어먼놈 붙잡고 으짜쓰냐고 앞집가서 지잉지잉~~
뒷집가서 지잉지잉~~ 눈물 찍찍 빼지 마십시다.
보기 흉합니다잉.

그리고 나 지리산에 지금 없응게 나좀 제발 찾지좀 마세요 제발로.
여름 저녁만 되면 뭐 그리 바람들어서 사방팔방 술동무를 찾아요.
내가 무안할까봐 말은 안했는디 진~짜 꼴뵈기 싫어요.
사람말뽐새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고운말이 나올래야 나올수가 없어요 보며는. 제발로.

할배요.
딴 할배들은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겠다고들 그렇~게들 염병했싸든디 
할배는 머던다고 그렇게 돈이고 재물이고 다 도박으로 쳐박아버림니까. 우짤라고 그래요.
광줏집 아지매가 김치노나주면서 걱정 오지게 했어요. 쥐도새도모르게 뒤져불거같다고.
할배 혼자 객사할거같어요 내가 봐도.
걱정되니까 화투 고만하세요. 재능이 없어요 할배는.
나 손주 생길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쓰지 않것슈?

싫음 걍 계속 하십쇼.
손모가지 날라가서 똥도 못딲것다.
드러븐거.
징한거.
찡찡거리질 말던가 돈을 잃지 말던가 잘좀 해보쇼.

말이 심했으면 미안혀요.
그래도 면전에 대고 하기는 할배가 안들을거 같어서 여따가 글남겨요.
1절만 합시다잉~ 서로기분 상하지 말고요~

항상 무병장수 하세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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