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 준 May 29. 2024

다름과 틀림, 그 사이의 반짝임

Alhazred의 이야기

뱀이 그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이, 나는 나라는 껍질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꿰뜷어 보았다. 그랬더니 나는 그였다.
(바스타미; 코란 속 지혜에서 발췌)


Alhazred는 아랍계 전통 복장을 갖추고 찾아왔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종교를 타국에 설파하고자 젊은나이에 여행길에 올랐으나,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설파할 만큼 스스로가 똑똑하고 강인하지 못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계기는 그가 처음으로 일본에 방문하여 10살 남짓 남자아이를 만났을 때였다고 말했다.


Alhazred는 일본 동경에 도착한지 3개월 되는 해에, 자신의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를 곪는 힘겨움도 결국 믿음을 시험하는 신의 시험과정이라 굳게 믿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Alhazred는 매일 설교를 하러 간다. 그 지역 민의 고통받고, 삶에 힘들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신께서 이들이 그 힘듦을 이겨낼 지혜를 부드럽게 얻어가길 기도했다. 그것이 Alhazred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여느 때처럼 설교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던 찰나에, 자신의 설교를 듣던 귀엽게 생긴 꼬마 남자아이가 안경을 지겨운 듯 요리조리 돌리고 있더랜다. Alhazred는 다가가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붙였다고 한다.

Alhazred는 아이에게 자신의 설교가 재미없었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대단한 사람 같아서요. 저는 아저씨처럼 그렇게 영어공부를 잘하지도 못거든요. 그렇게 대단하신데 왜 여기에 계신거에요?"

그 순간 Alhazred는 순수한 아이의 이 질문에 자신의 인생을 관통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 인정한다면, 비록 신의 뜻이더라도 이 고행길에 올라 타국에서 굶으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대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인정한다면, 타국까지 올라 타인에게 설교를 하는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설교를 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이 또한 옳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Alhazred는 비난이 아닌 아이의 이 순진난만한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자기모순에 빠진 Alhazred는 이내 배움에는 끝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Alhazred는 이번에 자신이 방문한 이 나라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왜 살아가는지에 의문을 품고 이곳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3년 후에는 자살할 예정이라 말했다.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묻자 "태어난 것은 선택이 아니었으나, 죽음만큼은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라 말했다. 과거 자살시도나 자해 및 자상흔, 또는 죽음으로 이어질 트라우마 사건은 발견되진 않았다.


Alhazred의 말 중에서 자신이 죽을 예정이라는 것을 마치 정해진 듯이 말하는 것이 특이했는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마치 당연한 삶의 일과인 듯이 말하였다.


"모두가 인생에서 돈을 벌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좋은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반대로 돈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슬픈 일을 겪을 것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삶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의 끝이 자살이라는 건가요? 쉽게 이해되진 않는데요."


"이해를 바라진 않습니다. 제 의무를 다하면 삶을 마무리 하려 하는 것이죠."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진정으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한 당신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에 대해 알 수 있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의식적인 요소를 파고들려 하는군요. 무의식은 알 수 없는 것인데, 어찌 알려고 하십니까?"


Alhazred는 웃으며 기도를 드리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Alhazred를 볼 수 없었으며, 그가 다시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병리적 진단을 고려할 때에, 문화적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Alhazred와 같은 경우에는 종교적 이념이 섞여 있었으며 자살과 자해에 대한 통념이 서구적 문화와는 매우 상충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현재에도 많은 논란과 의논이 오가고 있다.


Alhazred의 경우 급성적인(Acute) 충동으로 자살을 하려 하거나 계획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엄사 하듯이 바라는 듯 이야기 한 것으로 보아 현재 의학적 분류 ICD나 DSM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약물치료보다는 실존주의적 심리치료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다른 문화권 사람과의 마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자아를 망가트릴 만큼 자아탄력성이 강하다 평가된다면, 향후 다문화 집단상담 및 종교적인 활동에 참여해 진정으로 자살에 대한 평가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R/O F43.2 적응장애 (Adjustment disorder); DDx: F19 vs. F3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