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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Dec 17. 2023

우주가 사라질 때까지 나도 여기 있을게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작가의 짧은 소설을 읽었다.

췌장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딸 정연이 엄마와 이별하고 조우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지만 몹시 따뜻하게 그려 놓은 이야기였다. 김혼비 작가의 소회가 담긴 글을 서두에 읽으며 벌써 울기 시작해 작가의 마지막 편지글에서야 눈물을 그쳤다.

일흔 좀 넘은 엄마를 보낸 마흔 살 딸이 겪어내는 시간에 내가 보였다. 내 딸아이도 보였다. 그래서 펑펑 울었다.


책 속의 정연은 투병하는 엄마를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자신은 일상을 살았다는 사실을 가슴 아파한다. 엄마가 혼자 아파하는 동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하고 밥 먹고 사람들을 만나며 산 순간, 아픈 엄마의 현재보다 엄마 나이가 되어 혼자 아플지 모를 자신을 상상한 순간을 엄마의 죽음 후에 후회하고 아파했다.


나는...

나는 내 딸이 나의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죽을 날을 받아 놓았다 할지라도 일상을 접고 내 곁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 모습을 보아야 크게 안심할 듯하다. 내가 없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아가겠구나,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그런고로 나는 먼 훗날 엄마를 떠나보내게 될 때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일상을 연습한다. 자고, 먹고, 웃고, 떠들고... 차곡차곡해나간다.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면 참은 눈물에 영혼이 잠겨버리지 않게 실컷 울어 영혼의 물기를 뺄 테다. 엄마가 좋아하던 옷을 꺼내 입고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을 해 먹음으로 추억을 되새기면서.


정연은 엄마의 육신이 그릇 같다고 했다. 엄마가 살아온 세월과 기억을 담은 그릇, 그 그릇 안에 담긴 엄마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엄마 자신밖에 없노라 했다. 그 생각으로 정연은 아쉬웠을까? 엄마를 더 많아 알아가지 못한 시간이 혹여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나는 내가 없을 시간을 견뎌야 할 딸을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시간에 엄마에게 묻고 싶은 수많은 질문의 답을 적어 놓고 싶었다. 이십 대의 나, 삼십 대의 나 그리고 사십 대의 나를 기록한다. 앞으로 몇십 년의 나도 그렇게 기록되길 바란다. 나보다 서른넷 어린 딸아이가 스물, 서른, 마흔으로 살아갈 때마다  마중 나가 '엄마는 이랬단다'하고 알려 주는 길라잡이가 된다면 내 모든 글은 소명을 다한 셈이다.

요즘 엄마와 정성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려 애쓴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엄마의 내면, 엄마의 무의식으로 뻗어 가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아직 덜 자란 아이가, 꿈 많은 소녀가, 너무 일찍 늙어버린 할머니가 보인다. 엄마의 기억과 추억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이야기엔 철없는 외조부모의 막내딸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랑 듬뿍 받고 자란, 귀여운 꼬마가 고개를 삐죽 내밀 때면 웃음이 터진다.


얼마 전부터 나는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마흔이 훌쩍 넘도록 내가 김치 담그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 덕분에 이제야 김치를 담근다. 먹어 본 가락이 있어 제법 맛을 잘 내는데 엄마 솜씨를 빼닮았다.

딸이 유치원 다닐 무렵 시장에서 배추 두 포기를 샀다. 혼자 김치를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배추를 사다 주방에 던져두고 외출한 사이, 엄마가 우리 집에 들렀다 속이 꽉 들어찬 배추를 보고야 말았다. 외출에서 돌아와 없어진 배추를 찾느라 얼마나 애먹었던지. 온 집안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실한 배추를 엄마가 가져가 버렸다는 걸 몇 시간 지나고 알았다.


올봄에 갓 담근 김치를 맛 보라며 가져다주신 엄마에게 내가 숨겨 둔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나중에 김치만 보면 엄마 생각나서 울 것 같아요. 봄부터 겨울까지, 때만 되면 김치를 해다 나르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펑펑 울지도 몰라.... 그러니 이제 저도 담가 먹어 볼게요. 물론 엄마처럼 잘할 자신은 없지만, 엄마한테 모르는 거 물어가며 할 수 있을 때 해봐야겠어요."

내 고백에 그제야 엄마는 김치 담그는 걸 허락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먹는 파김치는 내 담당이 되었다.


정연은 엄마가 하던 칼국수 식당에서 엄마가 숨겨 둔 김치를 발견한다. 그 소중한 김치를 먹으며 정연은 엄마 잃은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다. 엄마 어깨너머로 보아 온 칼국수 만드는 방법을 되새겨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칼국수에 어울리는 겉절이를 담그려 알배추 다섯 포기를 주문하고 칼국수를 준비하며 끝이 난다.

나는 이 장면이 마음에 쏙 든다. 엄마가 해놓은 음식을 먹고 슬픔에서 빠져나온 아이가 엄마 손맛을 내며 살아가는 순간, 떠나간 사람과 남은 사람을 잇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느껴져 심장이 벅찼다.

훗날 나도 내 딸아이도 정연처럼, 엄마가 남겨 놓은 김치를 얹은 밥을 먹고 생기를 찾고 그 맛을 기억해 구현하며 또 살아가겠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이어져 없어도 있는,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그런... 그런 삶을 기쁘게 살아가겠지... 마음이 놓인다.



사람은 죽어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우주가 사라지기 전 까진 우주 안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다고 한다.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하는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주의 한 부분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함께 느끼며 지켜가 갈 테다. 그러니 정연도 내 딸도 당신의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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