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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Feb 20. 2024

성산근야 습상원야

천성은 비슷하나 나중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의 근원은 비슷하나 무엇을 배우고 익히느냐에 따라 사람의 격은 달라진다는 뜻을 내포한다.


"으이그~!! 그 사람은 공부를 그렇게 한다면서 변한 게 없냐? 우리 집 강아지도 그만큼 가르쳤으면 변했겠다." 남편의 실소 가득한 한탄이 터졌다.


"뭘 또 그렇게 말해.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나하고 안 맞는 거지 다른 사람 하고도 그럴까 봐?" 나를 염려해하는 말인 줄 알지만 남편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는 게 싫어 중재했다.


"당신이 그러니까 맨날 이용당하는 거야. 뒤통수를 그렇게 맞고도 몰라?" 남편의 이 말은 좀 기분 나빴다. 이건 바보 취급인 건가? 싶었다.


"뒤통수는 무슨.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삶이 무너져야 뒤통수 맞은 거라 생각하는데? 그 사람이 아무리 갈기면 뭐 해. 난 그걸 기반 삼아 더 나아졌는 걸. 그럼 뒤통수 때린 게 아니고 내 성장의 재료인 거지!" 개똥철학을 그럴싸하게 읊어댔다.



오랜 친구였다가 지인으로 격하시킨 그는 똑똑하고 영리하다. 자산도 자식도 남부럽지 않게 많고 자기애도 흘러넘치는 그를 많은 이들이 부러워한다. 남편 사랑도 옵션으로 깔고 산다. 인물은 또 어떻고?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하다. 그이를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첫눈에 좋아한다. 나도 그랬다.


넘치게 많은 걸 가진 그이는 늘 불행하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안고 사는 양, 언제 한 번 속 시원하게 웃는 걸 못 봤다. 피식, 김 빠지는 웃음을 잘 짓는다. 그이 앞에 앉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조가비처럼 꽉 다문 입술과 아래로 내리 뜬 눈앞에 마음이 졸아든다. 그렇게 만든 당사자의 한 마디에 우린 혈압이 상승한다.

"나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주눅이 자꾸 들어. 싫은 소리도 못하겠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는 내가 답답해."

한마디로 좌중을 얼어붙게 하는 그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얄밉다.



독서를 한 동안 멈춘 때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환생이라 할 만큼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이 가시동굴이 될 것처럼 읽어대던 내가 일시에 멈춰버렸다.


앞 서 말한 그이는 독서광이다. 어마무시하게 읽어 댄다.  읽다 체하진 않을지 걱정될 정도다. 그이가 그렇게 읽는 목적을 물어보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성장하고 싶어서라는 답에 나는 내 독서를 멈췄다. 겉으로만 성장하는 듯 보이는 그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 현타가 세게 왔다.



배우길 멈추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배우는 모습이 놀랍다. 독서광이니 배우는 것도 비슷한 결을 흐른다. 대충 하는 법도 없다. 내가 아는 중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학습자의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그이가 참여하는 수업의 선생님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적는 그이 곁에 있으면 없던 학구열이 치솟는다.


"배우긴 하는데.... 이건 이게 불만이고, 저건 저게 불만이야. 저 강사는 이런 점이 별로고 저런 부분은 좀 고쳤으면 좋겠어." 과정이 끝난 후 차근차근, 차분하게 쏟아내는 불평은 매우 설득적이다. 같은 장소에 있고서도 그이가 발견한 것 중 하나를 알아채지 못한 내가 한심해지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진다.


백만 년 만에 그이와 통화를 했다. 잘 나가는 사람이 더 잘 나가고 있었다. 복에 복이 더해진 그이가 살포시 부러웠다. 자식 복도 넘쳐 승승장구하는 그이 자식 이야기에 들고 있던 전화기기 뜨끈해졌다.

"대견하네. 어마 잘됐다. 정말 축하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어? 예쁜 아이가 더 예쁜 짓을 했네~" 자동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칭찬의 말이 튀어나왔다. 진심 그럴만한 성과였다.


"칫, 그럼 뭐 하니.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 요즘 나랑 말도 잘 안 한다? 뭘 물어보면 답도 잘 안 해. 넌 딸 엄마라 좋겠구나?" 빈정과 진심 그 어디 즈음 있는 그이의 화법이란!! 가슴에 실금 하나가 생겼다.


"하하하.... 그, 그래?"

"내 속을 어디 이야기할 곳도 없고, 속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어, 난." 새초롬한 듯 상처받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렀다.

"그렇구나. 나라도 자주 연락하고 싶은데, 내가 전화하는 게 방해되면 어쩌나 해서 자주 못했어." 실금 간 마음을 뒤로하고 그이의 마음을 살폈더니 돌아온 말은...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격이었다.

"그건 그래. 불편하지."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전화를 끊고 공자가 남긴 말을 만났다.


그는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격을 가진 걸까? 궁금했다. 배우는 것에 따라 사람의 격이 달라진다는 데, 그가 가진 격이 어떤 모양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격에 맞는 사람, 나보다 격이 높은 사람을 만나라고들 하는데 그이는 내 격에 맞는 사람인 걸까?

나는? 나는 어떤 격을 가진 사람인 걸까?

답도 모를 질문에 심란한 마음을 글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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