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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Jun 24. 2024

역설의 발견

 유난스레 신경을 긁는 이가 있다. 그이가 나에게 특별히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니다. 되려 무관심에 가깝다. 그런데 마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내 연약한 신경을 기타 줄처럼 튕겨댄다. 


  어느 날, 알고리즘이 끌어다 준 릴스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유튜버로 엄청난 성공을 이뤄 많은 사람들을 유튜버의 세계로 이끈 그는 관계를 정리할 대상에 관한 내용을 설파했다. 그가 말한 몇 가지의 사례 중 하나가 몹시 와닿았다. 

"나만 모르는 일을 만드는 사람과는 관계 정리를 하라"는 한 마디에 심장이 쿵! 했다. 연상작용처럼 내 신경을 긁는 그이가 떠올랐다. 나는 그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대부분 모른다. 심지어 연락도 씹히는 게 일상이다. 

아, 어리석은 이름, 바로 '나'였다.




  샤워를 할 때 기가 막힌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희한하게 물기를 닦고 나오면 함께 지워진다. 오늘도 그러했다. 아니, 그럴 뻔했다. 

나는 왜 내 연약한 신경을 끊어져라 긁어대는 그이를 마음에서 머리에서 밀어내지 못할까? 의문을 품고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든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내 삶이 평온하고 편안한 상태이구나! 현재 나와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소통이 되지 않는 존재가 바로 그이구나!!"


  그랬다. 내 신경이 유약하게 긁히고 튕긴 것은 그이가 만든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부스럼이었다. 함께 사는 가족들과 갈등이 없고, 사유를 나누는 친구들과 편안하고,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를 응원해 주는 이들과의 합의가 일치하는, 몹시 편안한 내 주변을 발견했다. 그러니 유일하게 나를 배척하는 그이가 유난히 부각되어 보였던 것뿐이었다. 그뿐이었다. 




  

  평안하다. 귀하지만 위험한 상태다.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라 그렇다. 도전을 미루고 성장을 피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 발견 끝에 리추얼과 거리 두기를 시전 하는 내가 보였고, 거슬렸다. 

2024년에 들어 그간 해오던 굵직한 일들을 멈췄다. 아니, 더 나은 너와 나를 위한 정리였다. 그런 터라 한동안 공허 속을 헤맸다. 해방감과 허탈함을 오가며 나에게 준 휴가가 너무 길었나 보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이와 이제 그만 끝내라고. 완전히 삶에서 삭제하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이는 내 신경을 긁어대는 존재인 동시에 깨달음도 주는 대상이다. 상처가 있어야 품어지는 진주처럼, 그이는 내 삶의 진주를 위해 상처 내는 역학을 맡고 있는 게다. 어쩌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그이는 그이도 모르는 새 해내고 있다. 

  훗날, 나는 고백할지도 모른다. 내 삶의 성장에 8할은 그이 몫이라고. 그래서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진정으로 감사하며 그이를 축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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