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방문하는 북카페가 있다. 일반 카페에서 책 읽는 게 불편해진 후 뒤지고 또 뒤져 찾아낸 곳이다.
카페가 자리한 곳은 사극에서 볼 법한 성문과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문화재 관리에 진심인 경주답게 유적과 현대적 건물이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관리되고 있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곳이다.
2층에 자리한 카페에 가기 위해서는 1층 유리문 하나를 지나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여닫이 문은 세상만사 바쁜 일이라고는 없는 한량처럼 열린다. 몸이 들어갈 만큼 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다. 0.5초 안에 열려야 마땅한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한숨이 푹 쉬어진다.
한량처럼 느릿느릿 열린 문을 비집고 들어가 계단에 첫 발을 디디면 LP판이 분명한, 특유의 색을 띤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느 날은 클래식, 어느 날은 재즈, 또 어느 때는 보사노바, 발소리마저 줄여가며 오르게 하는 음악에 한량 여닫이 문에 대한 아쉬움이 날아간다.
계단의 중간 즈음, 대부분의 날엔 공기 중에 퍼진 커피 향이 우릴 반긴다. 얼른 들어가 한잔 마셔야겠다 서두르게 하는 향을 따라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 중간 즈음까지 오는 단발머리의 카페지기가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이 카페만의 매력은 커다란 통창이라 할 수 있다. 거슬리는 창틀도 없이 크게 뚫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순간 나를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잘 다듬어진 성벽과 전통적 문양과 양식으로 만들어진 성문을 카페에 앉아 마주 할 때 느끼는 묘한 간질거림이 단전에서 파닥거린다.
겨울이면 통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에이도록 찬 바람에 탈곡기처럼 달달 떨리던 몸도 창가에 길게 놓은 편안한 소파에 잠시 앉아 있노라면 곧 느른해진다. 뜨거운 초콜릿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봄날 햇살 아래 앉은 병아리처럼 고개를 꺾고 졸기 십상이다.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 쳐진 블라인드가 아쉽다.
경주 중심가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여러 규제로 인해 올리지 못했던 덕에 경주 하늘은 언제나 뻥 뚫려있다. 해가 질 무렵 카페에서 마주하는 하늘은 장관이다. 성벽 너머 하늘이 핑크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갈 때 카페도 핑크 빛으로 물들어간다. 카페 불빛이 은은해서 어찌나 감사한지. 저녁시간 주린 배를 달래며 견딘 나를 마구 칭찬한다.
카페 가운데에는 열 사람도 앉을 수 있는 너른 나무 테이블이 있다. 나무 결을 숨기지 않고 애써 사포질 하지 않아 손이 스칠 때마다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부드러움이 좋다. 열 사람도 앉을 테이블에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넓고 편안하게 쓸 수 있도록 한 주인장의 배려가 따뜻하다.
겨울에만 만나는, 주인장의 비밀레시피가 잔뜩 들어간 뱅쇼를 그 테이블에 앉아 마시노라면 파리 어느 골목에서 침만 뚝뚝 흘리고 도전하지 못한 뱅쇼가 떠오른다.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생각에 주춤대다 결국 못 마신 그것을 경주 도심 한가운데서 마시는 아이러니를 즐긴다.
의도치 않게 우리 가족이 된 반려견의 분리불안 때문에 우리 가족의 아지트가 된 그곳에 못 가는 형편이다. 녀석의 분리불안이 해결돼야 할 텐데… 그곳에서 글을 쓰면 얼마나 후다닥, 휘리릭 잘 써지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요즘의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달래 본다.
북카페 주인장이 내려준 샷 추가한 짙은 아메리카노 한 잔이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