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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Oct 22. 2024

엄마는 왜 그래!!

“다른 집은 엄마처럼 통금을 정해두지 않아! 다른 애들은 나처럼 몇 시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하고 하지 않는다고! 왜 엄마만 그래?!!”


파르라니, 앙 다물었던 입술을 열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쏟아붓는 딸의 목소리는 격양되었다. 꼭 쥔 주먹에는 결의가 가득했지만 큰 눈에 맺혔다 떨어진 눈물이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물리지 않았다. 제가 옳다 주장했다.



현악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딸은 매주 토요일 연습에 참여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시골에서 차로 30분 이동해야 하는 도시에 연습실이 있다. 그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은 평소엔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딸이 수업받는 날과 오케스트라 연습하는 날엔 꼭 차를 끌고 나간다. 무겁지는 않아도 짐스러운 바이올린을 들춰 매고 움직이는 우리 모녀를 위한 배려였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 딸은 꿈드림 센터에서 만나 알게 된 언니와 놀기로 했다며 알렸다. 통보였다. 불과 며칠 전 약속을 정한 후 통보하지 말고 미리 상의해 달라 알렸건만, 새로운 친구와 놀게 됐다는 생각만으로 들뜬 딸은 이번에도 통보였다. 어쩌랴, 들떠 행복해하는 딸을 보며 그러라 했다. 어디서 얼마나 놀다 올 건지 미리 알려달라 한 내 말은 들뜬 딸아이 귓가에 닿지 않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약속 당일.

아침부터 서둘러 나서는 딸이 길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골목 어귀에서 지켜봤다. 일찍 나가 일찍 들어온다 했으니, 점심을 먹고 오겠거니 하며 걱정을 잠시 거뒀다. 엄마 걱정 따위 홀라당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저녁때가 다 되어도 감감무소식인 딸에게 전화를 걸고서야 귀가를 했다. 귀가한 딸을 마주하고 이렇게 늦은 연유를 물었다. 카페, 노래방, 패스트푸드 전문점, 만화방…. 한숨이 나왔다. 늦은 이유를 다시 물었다. 단박에 뭐가 늦었다는 거냐 되묻는 딸, 눌러 놓은 노기가 솟구쳐 올랐다.

아무 소식 없는 너를 마냥 기다리며 걱정할 엄마는 안중에도 없느냐 하니 왜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는 말로 맞받아 치던 딸은 기어이 다른 집 엄마와 나를 비교하며 너무하다 소리쳤다. 제 주변 누구도 귀가 시간을 두고 부모와 실랑이하지 않는다 했다. 기가 막혔다.


“너는 남다르게 살겠다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어. 남다르고 싶다면서 다른 집과 우리를 비교하는 이유는 뭐야? 우리는 우리만의 규칙이란 게 있어. 너도 동의했고. 다른 집에서는 자식이 언제 귀가하던 별 문제 삼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나는 달라. 그건 단지 자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네 안전에 관한 거니까!”

나도 강경했다.


“엄마는 나를 못 믿는 거지? 그냥 내가 알아서 하게 믿어주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 왜 못 믿는 거냐고!!!” 만만치 않은 딸의 반발이었다.



“그게 믿음과 무슨 상관이야? 널 믿는 것과 네 안전 문제를 혼동해서 말하지 마! 너를 믿으니까 네가 만나는 애가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출시켜 줬어. 나는 지금 네가 늦은 까닭이 궁금한 거야.”



“그럼 엄마는? 엄마도 친구 만나러 가면서 나한테 몇 시에 들어올 거라 말하지 않잖아? 엄마가 원하는 시간에 들어오잖아. 그러면서 나한텐 왜 그래?” 막무가내였다.


“내가 너와 어떻게 같아? 오십 줄 바라보는 나와 열다섯 네가 어떻게 비교 대상이 돼? 나랑 비교하고 싶으면 열다섯이었던 나와 지금의 너를 비교해야지. 너보다 삼십 년도 더 산 나와 너를 어떻게 동등하다 생각해? 미성년의 너와 내가 정말 동등하다 생각하니?” 되물었다. 잠시 떨리던 딸의 눈에 힘이 풀렸다. 쥐었던 주먹도, 앙 다물었던 입술도 연하게 풀어졌다.






늦은 밤, 딸은 서재에 앉은 나를 찾았다. 딸과 반목하고 싶지 않아 각자의 영역에서 할 일에 집중하고 서너 시간이 흐른 참이었다.

딸은 제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그런 딸에게 물었다. 우리가 정한 통금 시간을 늦춰주길 바라는지,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받길 원하는지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라 했다. 늦게 들어와 미안한 마음을 엄마 탓으로 올린 것일 뿐이었다며 우는 딸을 달래주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홈스쿨링을 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세운 원칙이 확고하고 그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네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보다 중요한 건 네가 네 삶을 주도하고 있는가야. 순간적인 즐거움에 휩쓸려 너를 놓아버려서는 안 돼. 엄마가 속상했던 건 네가 섭슬려 되는대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엄마도 언성 높여서 미안해."


그렇게 우리는 돌부리 하나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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