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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Dec 01. 2021

인생은 말구처럼


D - 24.

아직 여유가 있지만 그날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할 예정이다.

'남편을 빼고 아이들과 나, 셋이 함께 자전거 여행하기.'

본래 나는 즉흥적이고 무계획의 삶을 사는 인간이다. 올봄, 보름 정도의 긴 가족 제주도 여행 계획과 준비는 남편의 몫이었다. 비행기표 사기, 자동차 렌트와 여행 일정 짜기 및 일정에 따라 바뀌는 숙소 예약하기 등 모든 준비가 말이다. 너무한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행동하는 법이다. 무계획 여행을 선호하는 나는 그저 ‘네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 여행을 동행해 주는 나에게 감사하거라.’ 하는 마인드로 그와의 여행을 함께하는 있는 것이다.

그런 내가 제주도 하이킹을 계획하고 있다. 평상시 아이들과 셋이서만 여행하기를 즐겨하거나, 자전거 타기에 능숙한 것도 아니다. 1박 이상 아이들과 셋이 여행을 해 본 경험 전무, 자전거 산 이후로 자전거 경력이 횟수로 단 2회. 사실 나는 제주도 라이딩을 무려 15년 전에 친구와 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해 볼까?” 하고 누군가 말을 던졌고, 누군가 잡았다.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의 한 바퀴를 돌아보겠다 호언하며 도전했지만, 후끈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버얼건 엉덩이만 남기고 제주도 정복은 하루 천하로 끝났다. 이런 안타까운 내 경력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여행이 무려 24일이나 남은 이 시기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인생은 그런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행동하는 법.)

여행 계획의 9할은 숙박, 교통, 식사가 아닌가? 아침부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출발하기 위해 라이딩 전 날 저녁 비행기로 떠나기로 계획했다. 자전거 대여점이 공항 근처에 있으니 공항 주변에 묵어야 한다. 마침 예전에 친구가 밤늦게 제주공항에 도착해 신라스테이에 묵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더 알아볼 것도 없이 빠르게 예약을 잡았다. 그 뒤 숙박은 예약 없음. 자전거 여행의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얼마나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숙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생략될수록 가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나게 된다. 그 말은 또한 이 여행의 불확실함이 더 늘어단다는 뜻이다. 슬금슬금 걱정이 빼꼼 내밀지만 이내 '어떻게든 되겠지, 대한민국에서 설마 노숙이야 하겠어.'하는 마음이 이긴다. 아무튼 지금까지 어려운 일은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자전거 대여다. 아이들과 내 짐을 싣고 달려야 하는데 자전거 초보자에, 저질 체력에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누군가는 비겁한 것이 아니냐 했지만) 전기 자전거를 골랐다. 아이들은 아직 전기 자전거를 타기에 키가 충분치 않다. 대신 최대한 가벼운 자전거를 골라 예약해 두었다. 그 외에 필요한 짐가방, 헬멧 같은 액세서리는 당일 예약이 가능하니 대여하는 날 사장님의 조언을 듣고 선택하기로 결정. 

여행 준비의 마지막. 식사는 고민할 것이 없다. 우리는 분명 맛집을 찾아다닐 여유가 없을 것이다. 달리는 길에 있는 식당 중에 눈에 띄는 곳을 찾아가는 수밖에.

그밖에 짐은 무조건 최소화한다. 세 명의 옷 두 벌, 양말 두 켤레, 속옷 두벌, 보조배터리, 세면도구, 선크림. 추리고 추려 꼭 필요한 것만 넣어도 배낭이 빵빵하다.

'이 여행...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 나는 초조하다. 내 머리에 새겨진 타이머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을 부지런히 세고 있다. 이제 복직까지 남은 시간 5개월 1일 13시간. 전시 상황에서 어렵게 지킨 귀한 전투 식량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걸 보고 있는 기분이 지금의 내 기분과 같으려나. 우물쭈물하다 이 시간이 흔적도 없어져 버리기 전에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저질렀다. 일을 할 때는 절대 긴 여행을 떠날 수 없는 황금의 가을.(일의 특성상 1월, 2월, 8월에만 장기여행이 가능하다.) 10월에 내 마음껏 제주도로 놀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버렸다. ‘이제 60세가 될 때까지 10월에 제주도는 오지 못할 터인데(드럽고 치사한 관리자에 이성을 잃고 중간에 때려치우지 않는 이상)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을 도무지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남편도 없이 아이 둘과 처음으로 여행이라니, 그것도 제주도 하이킹이라니! 내게는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다. 도전이라 이야기하면 뭔가 비장함을 가지고 기필코 성공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드는 모양새가 난다. 하지만 제주도의 가을 내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는 오전의 두세 시간, 점심 먹고 근처 숙소에서 오후를 프리 하게 보내는 계획의 일주일 여행을 ‘도전’이라는 단어와 어울려 쓰기에는 어색하다. 그 어색함이 시아버지와 며느리급이다.(아버님 죄송합니다.) 어울릴만한 다른 낱말을 찾아보자면 ‘시도’ 정도?

내가 회원으로 있는 사단법인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정찬필 사무총장(사무총장은 유엔에나 있는 줄 알았다.)을 회원들끼리는 ‘말구샘’이라고 부른다. 말구가 무슨 의미인가 국어사전을 뒤져보려 한다면 그 손을 조용히 거두기 바란다. 말구는 그가 평상시 자주 하는 말 ‘아님 말구’에서 가져온 단어다. 그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도전 거리를 가져온다. 그리고 일단 해보자라고 말한다. 이번에 할 이 프로젝트는 정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항상 이 말을 덧붙인다. ‘아님 말구.’

‘아님 말구’는 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일도 ‘그래 일단 해볼까?’ 하는 용기를 가지게 해 준다. ‘일을 성공해내야 해’ 하는 압박감을 덜어준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와 함께 일을 시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 둘과 제주도 라이딩 종주, 도전이 아니라 일단 시도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떠나려 한다. 그 여정에서 엄마와 아들 딸의 끈끈한 혈육의 정, 강인한 체력, 그들만의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가 멋지게 펼쳐질 것이다.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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