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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Nov 30. 2021

나의 이별은 우리 반 아이들 때문이야


오늘의 기분. 최악.

그날은 정말 내 인생 탑 3에 꼽을 수 있는 최악의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그럴 용기도 없고,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이성의 실오라기를 붙잡고 출근을 했다.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울어 툭눈이 금붕어가 된 눈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게 대수랴. 출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 잘했다. 잘했어. 그래도 일은 해야지. 돈은 벌어야지' 하고 나를 토닥여가며 일단은 길을 나섰다.


아침 시간, 언제나처럼 교실의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안 듣고 즐겁고 신나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교실 분위기를 환기하며 수업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질 않는다. 선생님에게 농담을 던지며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을 놀며 때울까 궁리하는 아이들을 혼내고 다그치고 달래야 하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안 되었다. 최근 우연히 보았던 책 제목인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가 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날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선생님의 낌새를 아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평소와 다른 선생님의 분위기를 눈치챈다. 이럴 때 아이들이 ‘오늘 선생님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니까 선생님 말 잘 듣자!’를 외치며 칼각을 잡고, 스스로 할 일을 하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며,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바른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건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은 나의 빈틈을 후비고 들어와 헤집는다. 교사의 빈틈이 보이는 교실은 곧 아수라장이 된다. 수업 시간은 쉬는 시간의 연장이 되었고, 아이들의 난리 통에 청소함 문짝이 뜯겨나가 내 마음처럼 너덜너덜 해지는 지경이었다. 이런 아이들의 폭동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그날 나는 내 기분에 잠식당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식 시간이 되어 일이 터졌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급식 지도도 교사의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다. 급식실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밥 한수저를 뜨는데 물이 뚝뚝 떨어진다. 흐르는 건 숟가락에 넘치게 떠진 국물이 아니었다. 내 눈물이었다. 아침 수업 시간 내내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졌다. 한 번 시작된 눈물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문제는 우리 반 아이들과 내가 다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 밥을 먹다 아무 이유도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당황했다.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웅성웅성, 밥 먹는 급식실 탁자가 술렁거렸다. 결국 나는 수저를 놓고 운동장으로 나와버렸다.


이런 내 모습을 옆 반 선생님께서 보신 건지, 아이들이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년 부장님께서 따라 나오셨다.

"학교 일이 힘들지? 애들도 마음대로 안 따라오고.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 힘들고 어려운게 당연한거야. 혹시 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힘든 거 있으면 이야기해. 이럴 때 부장 써먹는 거지 언제 내가 부장 노릇 하겠어." 말씀하시며 내 기분을 달래주려 애쓰신다. 나는 부장님의 말을 듣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결국 말해버렸다.

"선생님, 저 어제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흐엉엉 엉엉허어엉 엉엉"

그 이후로 부장님이 어떤 표정과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부장님께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교실에 들어갈 때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내 남은 눈물을 쏟아냈던 기억뿐이다.


5교시 시간.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더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얼굴을 문지르고 이상한 낌새를 아이들에게 들키기 싫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시원하게 교실 문을 열었다. 

"어... 어라? 이게 뭐지?" 

교실 문을 여니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다."

스승의 은혜를 목청껏 부르며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잘못했어요. 저희가 말 안 들어서 속상하셨죠?"를 외치는 아이들. 오늘은 스승의 날도 아닌데?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 때문에 속상해서 우는 줄로만 안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 딴에는 깜짝 파티를 하면 선생님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 멘트를 칠판에 도배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했던 것이었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내 앞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기껏 마음을 다잡고 눌러 담았던 눈물을 다시 터트려 주었다. '고마워' 말 한마디를 못하고 나는 목놓아 울었다.

"엉엉엉 엉엉엉"

"야, 선생님 더 우시잖아. 선생님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엉엉. 앞으로 잘할게요. 엉엉엉"

‘아.. 그게… 흐엉엉 그게 아니라… 아… 엉엉엉'

눈물이 안 그친다. '선생님이 남자 친구랑 헤어져서 슬퍼서 그래.'라는 말을 어찌 털어놓으리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이 놈들아, 고맙다. 나한테 이렇게 울 기회를 만들어줘서. 이건 너희 때문에 우는 거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야.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 거야. 니들이 날 울린 거야. 그래, 울려줘서 고마워 얘들아. 

그리고 미안해. 이런 울보 선생님이라서. 


덧붙임. 그날 그 아이들은 지금은 장성해서 사회인이 되었을 텐데 그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본인들 때문에 힘들어서 울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녀석들이 이 글을 보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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