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쩌기저비 Dec 16. 2021

글쓰기의 이유


요즘의 나의 걱정을 선뜻 이야기하기가 겁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할 이유이기 때문이다.

‘배가 불렀구만. 복에 겨운 소리한다.’

라는 힐난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누가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지레 걱정을 하는 건 내가 이미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도 아니고,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도 아니고, 심지어 다음 날 아침 가족들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아침이 부담스러운 아줌마도 아닌 나는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나의 기상시간은 8시 10분이다. 8시도 아닌 8시 10분. 일어나야지 하는 다짐을 미루고 미루다 더이상은 어쩌지 못하고 일어나는 시간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부산스러운 아침 소리에도 베개에 머리를 묻고 꿈 너머의 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나이건만. 8시 10분에는 일어나야한다. 이 시간에 내가 아이에게 해줘야하는 일이 있다.


둘째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몇 년동안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아이구, 힘들다 힘들어 이야기를 하며 은근히 압박을 주고, 단발이 예쁜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다 예뻐 짧은 머리 스타일을 칭찬하며 유혹해봐도 소용없다. 오히려 숏컷인 내 머리를 보며 본인은 절대 엄마처럼 머리하지 않을 거란다.(알고보면 긴머리 고수의 원인이 나 때문인지도.)

머리 감기와 말리기 외에도 긴머리에 내가 해줘야 할 일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머리 묶기이다. 바로 이거! 이것 때문에 나는 아침 8시 10분이면 기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긴 머리를 더운 여름에 그냥 풀고 다니다 목 뒤에 땀띠며 발진이 생긴 이후로는 꼭 묶고 학교에 등교를 한다.

머리 묶기라는 엄청난 미션이 끝나면 내 오전 할 일은 끝이다. 집 안 정리와 청소, 아침 먹기 정도는 언제든 생략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하교를 한다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금세 학원으로 흩어지고 집에서는 각자 유튜브 시청, 그림 그리기 등 각자의 할 일을 가지고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3월 초, 분명 이런 여유있는 시간과 무료함을 기대하며 올 한 해 푹 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찾아온 건 무료함을 넘어선 권태. 나는 자기 전 내일 나에게 다시 올 권태의 시간을 걱정하고 있다.

아침 잠이 덜 깨어있던 나는 부족한 잠을 더 채우려 소파에 누워 버린다. 쿠션을 무릎사이에 끼고 웅크려 있다 잠깐 정신이 들라 치다가도,

‘어치피 할 일도 없는데 그냥 잠이나 더 자자.’

하는 마음이 생겨 계속 누워있는다. 귀찮음이 움직임을 이겨버린다. 귀찮음을 이겨내는 건 참지못할 허기뿐.

“오늘 급식은 뭐 먹었니? 오늘 학교는 어땠니? 회사에서는 별 일 없었어?” 하는 일상적인 대화도 입을 스쳐가는 말일 뿐. 핸드폰 액정 속의 자극적인 연예인의 가십거리와 혼란스러운 정치 기사도 흘러가는 언어일 뿐. 의미있게 내 안에 잠시라도 머물다 가는 것들이 없는 삶이다.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 해.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아봐. 다들 그렇게 살아. 뭐 특별한게 있는 줄 아니.’

하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권태를 견디는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 나는 글을 쓴다. 내 무료한 일상에 대해 글을 씀으로써 무료하지 않은 일상이 되도록 한다. 어쩌면 오늘 지금처럼 용기를 내어 글을 쓰다가도 내일아침엔 하루종일 방바닥을 딩굴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많겠다.) 하지만 그렇게 텅 빈 시간을 보내다가도 가끔씩 이렇게 용기를 내어주면 된다. 가끔씩 권태를 이기는 시간들이 결국 이기는 삶이 되겠지.


오늘은, 이겼다!

작가의 이전글 명절엔 엄마도 내가 야속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