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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Dec 22. 2021

초보, 이 까잇거!


누구에게나 처음은 동등하게 주어진다. 면허를 갓 따 처음으로 도로에 나오게 된 스무 살의 초보 드라이버부터 햄버거 가게에서 키오스크를 마주하고 있는 여든 살의 노인까지.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언제든 처음인 순간을 마주한다. 우리 집 꼬맹이가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수영 학원에서는 중식 요리계의 명인이라 할 수 있는 이연복 선생님도 생초짜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어느 분야에서든 초보인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그 나이가 문제이다. 나이가 초보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엄마 나이가 이제 칠순에 가까워오는데 운전을 못하신다. 내가 이 전 휴직을 끝내고(나는 2년 전에 6개월 휴직을 한 경력이 또, 있다. 사실 그 전전에도 또 휴직을 했었다. 휴직이 취미는 아니다.) 복직을 하면서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손 벌림을 한다. 우리 집까지 차를 태워달라 아빠에게 부탁해야 한다.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남편에게 이런 시시콜콜한 부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탁구, 골프, 자전거 라이딩, 당구 등 셀 수 없이 많은 아웃 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아빠에게 다른 스케줄이 없는지 물어본다. 다행히 아빠가 귀찮지 않거나 별다른 일정이 없을 때야 우리 집으로 편하게 오지만, 버스를 타야 하는 때도 왕왕 있다. 엄마 집부터 버스 정류장까지 걷고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수고를 감내하며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한 발걸음을 한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 운전을 배웠어야 하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초보 드라이버의 딱지를 붙이기에 70의 나이가 엄마에게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실내 암벽등반 센터에서 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예전부터 암벽등반을 하고 싶었다는 남편은 “우리 가족 모두 같이 배워볼까?” 의욕에 앞서 외쳤다. 나는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그걸 지금 어떻게 해. 오빠도 그 나이에 잘못하면 크게 다쳐. 허리도 안 좋은 사람이. 애들이나 시켜.” 클라이밍 센터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가뿐하게 높은 벽을 오르는 젊은 여성 회원을 보며 나는 말했다. 나는 암벽등반을 시작하지 못하는 나이가 돼 버렸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농수 선수인 허재’를 알고 있는가? 8-90년대 우리나라 농구계를 휘어잡았던 그는 은퇴를 하고 지금은 1인 독립 가구를 체험하는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티비에서의 그는 일상의 매 순간이 새로운 것투성이다. 마트에서 카트를 끄는 것, 전기밥솥 뚜껑을 여는 것, 대중교통에서 교통 카드를 사용하는 것.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인 것들이 그에게는 낯설고 생경한 처음의 순간으로 다가왔다. 운동선수로 그의 삶을 훈련과 시합으로만 채웠던 그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시작해본다. 홀로 처음을 맞이하며 당황하고 우여곡절을 겪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농구 황제가 초보 딱지를 달고 낯선 것들에 허둥대며 사는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농구 황제도 그의 나의 육십이 다 되어 처음 시작하는 것들 투성인데, 이제 사십이 되는 내가 시작하지 못할 게 뭐인가. 나이 먹어 실수하고 실패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이 우스워보일게 걱정인가. 시내버스를 타 본 경험이 없는 허재가 무지하게 더운 여름 낮, 겨드랑이와 등, 배 할 것 없이 땀으로 옷이 축축해지도록 정류장을 찾아 걷던 모습을 보고 누가 비웃으랴. 모두 그 옆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줄 뿐이다.



"휴직이 다 끝나가는 12월의 말,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새로움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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