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쩌기저비 Jan 06. 2022

내 생애 최고의 수학여행 1



1월 1일. 해가 바뀌고 새로 구입한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치며 희망찬 시작을 다짐하게 되는 날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1월 1일을 '시작'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한 시작은 '3월 2일'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는(심지어 대학교까지) 짧은 겨울방학을 마치고(방학은 언제나 짧다.) 3월 2일에 일제히 개학을 한다. 아이들과 교사들은 개학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급을 시작한다.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낯설고 새로운 첫날, 나는 새 학급을 맞이하며 항상 하는 것이 있다. 아직 얼굴도 이름도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좀 더 빨리 알기 위해 선택한 지름길로 설문조사를 한다. 아이들의 가족 관계나 교우 관계, 학원 수강 여부를 알아보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학교와 학업에 대한 호감도, 자아 효능감이나 가족들과의 애착 형성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질문까지. 설문 내용은 보통 학년이나 학교 특성에 따라 조금씩 바꾸는데, 그중에 매년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올해 학교 생활 중 가장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6학년 담임을 해 본 선생님이라면 알 것이다. 다른 학년은 몰라도 6학년 아이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수학여행.’

수학여행 계획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학기초부터 아이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다. '수학여행 장소는 어디인지? 숙소는 어떤지? 모둠을 어떻게 짜는지? 고데기는 가져가도 되는지? 화장을 해도 되는지?' 처음 6학년 담임을 맡고 교사로서 첫 수학여행을 가게 된 해에 나는 수학여행 수요조사 설문지를 나눠주며 아이들의 빗발치는 질문을 받아주다 넋이 나가버렸다. 그 뒤로도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는 특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학급에서 우연히 수학여행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지 수학여행의 ‘수’자도 꺼내지 말라는 엄포를 놓곤 했다.

수학여행에 한껏 들뜨고 설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지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초등학교의 수련회나 중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은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니까. 사춘기를 겪을 무렵 수학여행 버스에서 짝과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듣던 신해철의 목소리와 그날의 멜랑꼴리한 분위기, 5월 한참 봄이고도 남을 시기에 대관령 휴게소에서 갑자기 흩날리던 눈발과 거친 바람에 신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찍었던 사진, 초등학교 시절 깜깜한 어둠 속에 담력훈련을 한다며 밧줄 하나와 플래시, 친구들의 온기를 의지해 올랐던 뒷산, 그때 누가 소리를 질렀냐며, 누가 울었다며, 누가 겁쟁이라며 깔깔대며 웃고 떠들던 순간, 바닥에 누워 한 이불을 덮고 괴담을 쏟아내며 쉽게 잠 이루지 못했던 밤.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나와 함께한다. 수학여행이기에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이다.

그렇다. 보통 우리가 기억하는 수학여행은 이런 것이다. 처음 합법적으로(?) 친구들과 할 수 있는 외박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 밤새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와 함께하는 즐거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일탈의 짜릿함. 그래 이런 것이지. 지금껏 나에게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시간들이었다. 지. 금. 까. 지. 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에게 수학여행은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녀석이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시간으로 구슬 속에 봉인해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기억이 되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지금의 괴로움도 ‘그땐 그랬었지.’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수학여행’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싫다. 개나 줘라.’ 하고 말하는 지경이 되었다.

내 생각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뀐 내 위치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교사의 입장에서 수학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으로서 즐기러 가는 수학여행과, 교사로서 일하러 가는 수학여행, 이 둘의 차이는 결혼 후 알게 되는 남편과 나의 차이만큼이나 어마무시하다. 교사로서의 수학여행은 즐거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을 챙기고 책임지는 교사라고 해서 괴로운 수학여행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나도 네 번의 6학년을 맡았고 교사로서 네 번의 수학여행을 경험했지만 모든 수학여행이 괴로웠던 것은 아니다. 유독 지옥 같았던, 다시는 수학여행을 오지 않으리 다짐했던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를 행복으로 만드는 비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