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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Jan 12. 2022

내 생애 최고의 수학여행 3


수학여행은 사탕, 캐러멜, 과자, 초콜릿 등의 갖가지 군것질 거리가 풍성하게 담긴(약간 과대포장이 된) 종합 선물세트이다. 이번 일정만 해도 뮤지컬 관람으로 시작해서 서울의 상징 남산타워 견학에, 당시 최신 유행의 애슐리 식당은 덤, 마지막 날 에버랜드까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몽땅 담아 넣었다. 허나 모오-든 일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종합 선물세트에는 잘 팔리지 않는 인기가 없어 재고처리를 해야 하는 과자 봉지들이 곁다리로 끼어있기 마련이다. 수학여행 일정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짜여 있을 수가 없다. ‘수학’ 여행이 아닌가. 닦을 수, 배울 학의 수학이다. 2차 방정식은 아니어도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문화와 유적을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목적인 엄연한 교육활동이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하니 얘들아!)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박물관 관람은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유적지나 유명 관광지에서 수업시간만큼이나 지루한 해설을 들어야 하기도 하고, 여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교사는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파이팅을 외쳐야 하고(참고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파이팅이다. 자고로 인생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힘들면 쉬어가기가 내 삶의 모토 이건만. 아이들 앞에서 파이팅 하는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억지로 등을 떠밀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원치 않는 여정의 과정에서 애써 즐거움과 배움을 찾아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수학여행은 교사에게 완전 기 빨리는 하루라는 거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신체 나이가 이미 절정을 찍고 현재 노화를 겪고 있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 갱년기를 앞둔 나도 아이들과 똑같이 걷고 또 걷는다. 아니 아이들보다 더 걷고 더 뛰어다닌다. 먼저 목적지에 다다라 장소를 확인하고 입장권을 사고, 대열을 이탈하는 아이,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아이, 무리에 끼지 못하고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단체 관람 장소에서 위험한 행동이나 폐를 끼치는 놈들이 있을까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닌다.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저질 체력의 몸뚱이는 지치다 못해 너덜너덜해진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왔다. 수학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숙소만큼은 자신 있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새 호텔이었다. 열 명씩 한 방에 들어가 요를 깔고 자는 군대식 단체 숙소가 아니라 일인 일 침대, 삼인 일실의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호텔룸이었다. 사전 답사 시 동행한 부모님들도 깨끗하고 깔끔한 시설에 만족감을 나타냈던, 이번 수학여행에서 나의 자부심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줬던 부분이다. 수학여행의 꽃은 숙소니까 수학 여행비를 조금 올리더라도 좋은 숙소에서 아이들이 쾌적하게 숙박하기를 바라며 고르고 골랐던 곳이었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불평이 없겠지? 아이들도 좋아할 거야.’

나도 참… 감히 그런 기대를 가지다니.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모든 영화 주인공은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상상을 하지만 시나리오는 항상 그와 어긋나는 전개를 펼친다. 불행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서 민원이 속출했다.

“선생님, 방이 너무 좁아요.”

“쌤~ 여기 담배 냄새나요.”

“선생님, 왜 우리 방이랑 저 방이랑 달라요? 방 바꿔주세요.”

'아… 듣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너희들 생각해서 고른 숙소인데. 새로 만들어진 이렇게 깨끗한 호텔인데 그래도 만족을 못하니? 정말 너네 너무 한 거 아니냐?' 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뱉지 못했다.

“얘들아, 이 정도면 진짜 좋은 숙소 아니냐. 이 가격에 이 정도면 초호화 호텔급이야. 서울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여기 진짜 좋은 숙소야. 다시 한 번 둘러봐봐.”

아이들을 더 설득할 말을 생각하며 민원을 넣은 아이 객실 문을 열어젖혔다.

‘...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더라?’ 방을 확인 한 나는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말을 잊어버렸다.

“이건… 3인실.. 이야?”


수학여행 오기 전, 호텔 사전 답사를 했을 때 호텔 매니저가 보여주었던 3인실은 (나도 모르게) 2인실로 바뀌어 있었다. 넉넉했던 2인실 공간에 2인실에 침대 하나를 더 들여놓았다. 침대 3개가 꽉 들어찬 방은 캐리어를 바닥에 놓을 여유 공간조차 부족해 보였다. 답사할 때 나에게 큰 공간의 3인실을 사용할 것처럼 보여주고는 2인실을 3인실로 만들어 놓다니!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움은 점점 화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사기를 당하는구나 싶었다. 왜 세상에는 나처럼 이렇게 착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들 투성인건지.

호텔 측에 항의를 했지만 이 가격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지금 방 예약이 다 되어있는 상태라 방을 바꿔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다시 생각해도 화가 난다. 내 언젠가 이름을 밝히고 말리라!)

‘아니 이게 말이야 똥이야! 그럼 2인실에 침대 하나 더 들여서 세 명이서 쓴다는 말을 해 줬어야지. 3인실을 쓸 것처럼 보여줘 놓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황당함에 기가 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빅 똥에 나를 진정시키기도 전에 일단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들이 먼저였다. 불평불만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좁아터진 방에 짐을 풀어놓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난리가 났다. 모두 아시는가? 초등학교의 최고참 6학년은 수능이 끝난 고3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더구나 그들은 수학'여행’을 왔다.

‘밤에 배게 싸움하자. 다른 반 친구 방이랑 같이 모일 수 있나? 우리 밤새 게임할래?’

아마 아이들은 이곳에 오기 한 달 전부터 각자 한 가지씩은 계획을 세우고 왔을 거다.

사전에 그렇게 주의를 주고 안전교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들어와 흥분한 아이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객실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쿵쿵 쿵쿵 벽을 두드리며 신호를 주고받고, 창문 밖에 머리를 내밀어 옆 방의 친구와 소리치며 장난을 치고, 복도의 소방 대피용 발코니를 열어 왔다 갔다, 여기가 호텔 복도인지 운동장인지 모르겠다. 결국 호텔에서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는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아니 지금 컴플레인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군데! 내가 왜 호텔에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호텔에 항의를 하고도 모자랄 판에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겠다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화가 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괜한 억울함과 속상함이 밑에서부터 꿀렁꿀렁 올라와 내 안에 들어차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하루 동안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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