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쩌기저비 Feb 04. 2022

내 생애 최고의 수학여행 5


그날 밤 나는 저녁도 거르고(그 난리통에 저녁이 입으로 들어갈 수 있겠냐만), 수업 시간 아이들이 던지는 실없는 농담과 똑같은 유머를 구사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우스갯소리를 배경 삼아 계속 생각했다.

‘오늘 밤만 잘 넘기면 내일 집에 가는 날이다. 그래 이 밤만 지나면 돼. 이 밤이 마지막이야.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버텨봐. 내일이면 끝나. 내일이 끝이야.’

‘조금만 버티자’ 여섯 글자를 가슴에 아로새기다 보니 어느새 레크리에이션이 끝날 시간이다. 나는 광란의 클럽 같은 호텔 세미나 실을 뒤로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옆 반 선생님이 계셨다. 여섯 글자에 너무 빠져 있었던 건가? 세미나 실 안에서는 선생님이 안 계신 줄 미처 몰랐다. 옆 반 선생님은 여학생 둘과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레크리에이션이 시작할 때부터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긴 시간 동안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여자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긴 듯싶었다. 셋의 대화 소리가 어깨너머로 슬쩍 드문드문 들렸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를 피해 고막을 때려대는 음악 소리에 다시 나를 숨겼다.



물론 쓸데없는 짓이었다. 옆반 선생님의 호출이다.

‘올 것이 왔구나.’

아이 둘이 서로 친한 친구인데 한 방을 쓰는 다른 여자 아이 A와 함께 방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는 민원이었다. 이미 하룻밤을 지내고 이제 단 하룻밤만 더 보내면 되는데, 아이들은 완강했다. 그 친구와 방을 함께 할 수 없다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긴 레크리에이션 시간 동안 그녀들을 설득하고 달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애써 보셨지만 삶이라는 게 또 그렇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다.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누구와 방을 바꿔줄 수 있겠는가? 호텔에 남는 방 하나를 더 달라고 용을 써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다른 친구와 방을 바꿔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A를 환영할 다른 여자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물론 한 방을 쓰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두 아이가 이기적이고 괘씸했다. 동시에 두 친구 사이에서 A는 얼마나 눈치를 보며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나는 지쳤다. 정말 오늘 하루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지독한 하루를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으로 순간이동하고 싶었다. 이 논쟁을 끝내야 내 하루도 끝이 날 터였다. 아이에 대한 동정심, 교사로서의 책임감, 눈앞의 장애물을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조급함. 갖가지 감정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혀를 놀리고 말았다.

“그럼 그 친구 한 명을 제 방에서 재우세요. 제 방 더블 침대여서 두 명 잘 수 있어요. 그 아이 짐 다 싸서 308호로 보내주세요.”

연신 미안해하는 옆 반 선생님, 둘이 방을 쓸 생각에 신이 나면서도 애써 표정 관리를 하는 두 아이를 보면서 여섯 글자를 다시 새긴다.

‘조금만 버티자.’

’이 밤만 지나면 돼. 이 밤만…’



교사 숙소는 남자 방 하나, 여자 방 하나 총 두 개였는데, 공교롭게도 여교사가 나 하나뿐이라 더블 침대를 나 혼자 쓰고 있었다. 옆반 선생님이 이걸 이용해 나에게 은근한 압박을 한 것은 아니지만(지금 생각해보니 압박이었나?)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남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걸 골라야지.



레크리에이션을 정리하고 숙소로 올라가니 방 문 앞에 A가 있었다. 짐을 마구잡이로 욱여넣은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물쭈물하는 아이를 불러 시계를 보니 10시 30분.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같은 방을 쓰게 된 사이인데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나 이야기 좀 해볼까 생각했지만 대화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빨리 자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아이가? 내가?) 먼저 씻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 아이가 편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다른 아이들을 둘러본다는 핑계로 방을 나섰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충분히 씻었겠지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싸한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응? 뭔가 처음 들어왔을 때랑 느낌이 다른데? 뭔가 이상한데? 뭐지? 뭐가 달라졌지?’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약간의 불쾌한 감정이 아래서 쏙 머리를 내밀었지만 하루를 마무리할 중대 과업을 앞둔 나는 별 것 아닌 거라 여기며 이내 생각을 털었다.

나도 씻을 준비를 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허연 김이 내 눈을 가득 막기도 전에 나를 덮친 것은 악취였다. 냄새도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코를 찌른다는 표현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게 되는 그 냄새. 홍어를 먹었을 때 코를 쑤시는 암모니아의 향기와 같은 그것. 열자마자 반사적으로 다시 닫았다.

‘뭐지? 이건? 이게 지금 현실인 건가? 내가 뭔가 잘못 느낀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잠깐 내가 제정신이 맞나 의심했다. 그리고 문을 다시 열었다.

‘이 냄새가 맞구나…’

나는 아직 이불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 머리의 물기를 닦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

같은 냄새다! 화장실의 역하고 강렬한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아이 주변으로 퍼지고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올 때 낯설면서 불쾌한 공기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화장실에서는 좁은 공간과 뜨거운 물의 증기 때문에 냄새가 훨씬 크게 느껴졌던 것일 뿐, 그에 못지않은 냄새가 아이에게서 풍겨왔다.

“왜? 냄새가 왜 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씻었는데? 향기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향기 나는 바디워시로 몸을 닦았는데 왜 냄새가 나는 거지?

냄새는 강렬했다. 기상 이변으로 한여름 40도를 넘는 폭염에 내리쬐는 햇빛처럼 맹렬하게 내 코를 찔렀다. 이건 그냥 모른 척 무시하고 지나칠 수준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냄새에 노출되면 코가 적응해 사람이 냄새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이건 냄새가 아니라 통증인 건가? 좀처럼 이 냄새는 적응되지 않았다. 제법 쌀쌀한 밤공기에 덥다고 둘러대며 온갖 창과 문을 다 열고 환기를 해도 소용없었다. 냄새는 스며들었다. 호텔의 공간 구석구석에 이미 침투해있었다.



고민했다. 냄새가 나니 다시 한번 씻으라고 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님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 짧은 고민 뒤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기대했던 아이가 쫓겨나다시피 방을 옮겨와 선생님과 함께 밤을 보내는 날, 나까지 ‘너에게 냄새가 나니 다시 한번 씻는 게 어떻겠니.’라는 말을 하는 건 너무 아이에게 가혹한 수학여행이었다.



그날 밤 나는 등 굽은 새우 모양으로 최대한 침대 끝 모서리에 걸쳐 누웠다. 냄새는 밤새 나를 괴롭혔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투플러스 원 행사를 하고 있는 섬유 탈취제를 사 와 아이가 깨지 않게 눈치를 보며 침대와 베개 그리고 허공에 두 통을 모두 뿌려대었다. 악취와 섬유 탈취향이 섞인 고통을 동반하는 향 속에서 뜻하지 않은 일출의 장관을 감상하며 베개에 코를 박은 채 새벽녘에나 까무룩 잠에 빠졌다.










작가의 이전글 내 생애 최고의 수학여행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