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Apr 12. 2021

일기를써야 하는이유

나의 방, 구석 책꽂이에는 첫눈에 보아도 낡은 공책 무더기들이 꽂혀있다. 그 공책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았으나 굳이 꺼내어 읽어보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다. 베란다 창문을 닫으러 책꽂이 쪽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그 낡은 공책들에 눈길을 주었고 흥미가 생겼다. 무의식적으로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공책을 꺼내 펼쳐보았다. 공책 속에 담겨있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써내려 갔던 일기였다. 작은 글씨들로 공책의 한 면을 꽉 채워 작성한 일기를 마주한 순간 ‘참 열심히도 썼었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다.     


몇 년 전 학생의 일기를 검사하는 것이 인권침해에 해당이 되어 검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소식을 듣고 내심 속으로는 ‘그래, 그래 일기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긴 하지.’하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나의 기억과는 달리 오래된 일기장 속의 나는 선생님들의 일기 검사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어떤 날에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숙제가 너무 많다고 항의하며 선생님께 숙제를 줄여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고, 누가 보아도 자랑을 줄줄이 써놓고는 ‘선생님 저 잘했죠?’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본 날도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일기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의 일기 속에는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었고 동어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비문이 되는 문장들도 많았다. 생각과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표현되어있었고 매일 일기를 쓰며 자아성찰을 하는 초등학생 이진솔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선했다. 일기 중간중간 속 보이는 ‘진솔이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하는 선생님들의 응원글들은 괜스레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지금껏 내가 점차 성숙해지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10대의 내 모습은 생각할 여지없이 철이 없었고, 20대 초반만 해도 오만함과 미성숙함으로 가득했으나 나이를 먹고 조금 고생도 하면서 넓은 시야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보다 성숙하고 속이 깊었던 어린 나의 마음을 일기를 통해 고스란히 느끼며 ‘아직 갈 길이 멀었다’하는 자조적인 미소를 나왔다. 아! 그렇다면 나는 점점 더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의 순수하고 이타적인 모습에서 문득 감동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 일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느끼며 다시 한번 ‘아 역시 아이들은 선하고 지혜롭다.’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아직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나의 아들 혹은 딸에게 2가지 숙제는 반드시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는 책 읽기, 두 번째는 일기 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의 끝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