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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29. 2023

혼자 여행할 때 느끼는 감정들

  2번째 홍콩여행

처음 혼자 여행을 간 것은 2017년 봄, 오사카였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비행시간도 짧은 나라로 한국 사람들이 가장 쉽게 여행하는 일본, 첫 여행지로 안전한 일본‘오사카’를 선택하였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떠난 첫 여행에서 난생처음 겪는 감정들을 느꼈다. 처음 다른 나라에 홀로 왔다는 낯선 감정과 묘한 성취감, 온전한 자유로움을 느꼈고 삼박 사일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오사카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일본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포토북도 만들고, 각종 비행기표, 티켓들, 기념품들을 하나의 상자에 고이 담았다. 성공적인 첫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2017년 오사카의 야경

  

20대 중, 후반을 흘러 오늘날의 삼십 대 초반이 되기까지 줄곧 혼자 여행을 다녔다. 여행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부재했고, 여행 모든 계획을 동행자와 맞춰야 하는 부담감이 나를 반복적인 혼자 여행의 길로 이끌었다. 이제 가족들은 내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당연히) 혼자 가겠지’라고 생각하는지 누구랑 가는지도 잘 묻지 않았다. 아직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우와 혼자 여행을 간다고? 무섭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그런 질문조차 익숙하다. 줄곧 들어왔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에게 혼자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해 왔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혼자 여행을 떠나면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 일상적인 곳을 떠난 낯선 곳에서 오히려 본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와 함께 있던 결국에 인생은 고독한 것이고 고독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안정정인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코로나가 터진 2년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어린이집 교사라는 직업 또한 코로나에 한층 불안하게 만들었고, 최근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하지만 올해부터 해외여행을 가도 될 것 같다는 결심이 들었고 오랜만의 해외여행인 만큼 가장 실패확률이 적은, 첫 여행지였던 일본 ‘오사카’를 선택했다. 이전의 추억을 생각하며 거리를 다니는 것은 즐거웠다. 폭포수처럼 비가 내렸던 것을 제외하면     


오사카 여행 이후 6개월이 지난 최근 해외여행을 가게되었다. 여행지는 ‘홍콩’으로 10년 전 엄마와 함께 여행한 경험이 있는 익숙한 여행지였다.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엄마가 홍콩에서 사준 가방(브랜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꽤 유명함), 이름 모를 식당에서 먹었던 토마토 스튜(무척 맛있었음)였다.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다는 것과 지하철이 있어 여행이 어렵지 않았던 부분이 홍콩으로 마음이가도록 이끌었고 홍콩의 오묘한 분위기를 그리려 홍콩의 대표영화 ‘중경삼림’을 새벽에 보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중경삼림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

행복함과 기대감에 도착한 홍콩 공항, 홍콩은 공항마저 멋졌다. 세련되고 깔끔함 더불어 친절한 공항 직원들은 홍콩여행을 성공적일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두고 일정을 진행해야 했기에 곧장 호텔로 이동했다. 쌀쌀한 가을이었던 한국과는 다르게 홍콩은 습하고 더운 여름의 날씨였다. 미리 알고 여름옷(흰 블라우스와 새로 장만한 청바지)을 입고 왔기에 그마저도 즐거웠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대며 도착한 호텔 로비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 동양인보다는 서양인들이 훨씬 더 많았고 호텔 직원은 내게 ‘1302’이라고 적힌 카드키를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려면 카드키를 넣어야 한다는 호텔 직원의 말에 기다란 구멍에 카드키를 넣어보았지만 왜인지 잘 인식되지 않았다. 퍼뜩 불길함이 들었다.        

끼익 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 도착하니 호텔 복도가 나왔다. 복도를 보자 문득 ‘공포영화’를 떠올렸는데 정말 공포영화의 배경지가 될 만큼의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쯤 되니 호텔방 역시 형편없을 것이라 예상이 되었고 애석하게도 예상은 적중했다. 호텔방은 무척 어두워서 청소가 잘 되었는지도 살펴볼 수 없었고(살펴보고 싶지도 않았다.) 방에 있는 커다란 침대는 중간 크기의 침대 두 개를 붙여두었는지 침대의 중간 부분에 나무 기둥이 우뚝 솟아있어 이럴 거면 왜 커다란 침대처럼 연출을 해두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마 바닥보다 침대 위가 깨끗해 보여 침대 위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간 기대했던 홍콩 여행의 환상이 와르르 깨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호텔에 예약을 할까 싶었지만 비용부담이 많이 되는 방법이었다. 홍콩 호텔비용이 저렴하지 않았고 40~50만 원의 비용을 호텔비에 다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혼자 여행을 온 것이 처음으로 서러웠다. 만약누군가랑 같이 왔으면 호텔 비용도 절감될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속상하고 불안한 감정을 함께 나누며 안정감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을 것 아닌가. 모든 것을 홀로 견뎌야 함이 더 서글프게 했다.     

그럼에도 여행은 계속 되어야 했고 더욱이 여행은 즐거워야 했다. 속상한 마음도 미루어두고 센트럴역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의 일정은 홍콩 누들 맛집인 ‘침차이키’와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피크트램’이었다. 행복한 여행을 위해 호텔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최면을 걸었고 열심히 걷다 보니 ‘침차이키’에 도착했다. 유명맛집답게 침차이키 앞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잠시 대기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침차이키 새우완탕면 - 지금 생각해 보면 결코 맛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음울했던 마음과 면의 낯선 식감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50대쯤으로 보이는 한국 아주머니들 앞에 앉아서 가장 유명한 ‘새우완탕면’을 주문했다. 앙증맞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 새우완탕면은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우울했던 내 마음에 한줄기 햇살을 비춰주었다. 그렇게 완탕면을 한입에 왕창 넣었으나 에그누들의 고무줄 같은 식감에 마음이 빠르게 얼어붙었다.왜 유명한 음식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결국에는 2/3는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 한방, 완탕면에 두방을 연타로 맞은 내 마음은 잔뜩 쪼그라들어있었고 급하게 당 충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가까운 위치에 유명 에그타르트 맛집인 베이크하우스가 있어 에그타르트 집으로 이동하니 역시 웨이팅이 있었다. 줄을 서서 한 10분 대기했을까 내 순서가 왔고 진열된 빵 중에서 에그타르트를 열심히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꿋꿋하게 에그타르트 4개를 주문하자 직원은 에그타르트는 오후 6시에 나온다고 말했다. 핸드폰을 보았고 그때는 4시였다.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사는 것에도 실패한 나는 터덜 터덜 빵집을 나와서 정처 없이 걸었다. 여러모로 속상한 여행의 첫날이었다. 거리를 걷던 내 입에서 살짝 울먹이는 소리로 한 단어가 나왔다.

“엄마..” 20대 이후 그토록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첫날의 마지막 일정은 홍콩의 여경을 볼 수 있는 피크트램이었다. 피크트램은 이전에 와본 적이 있어 수월하게 길을 찾았고 조금 대기한 후에 트램을 탈 수 있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트램에서도 반짝반짝한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트램 안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침입하여 곤란했지만 아주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올라 드디어 피크타워에 도착하자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이 보였다. 10년 전에도 홍콩의 야경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호텔 직후 실망감으로 얼어붙어있던 마음이 누그러드는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피크타워를 구경하며 다시 행복과 즐거움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첫날은 조금(많이) 실망스러웠지만 앞으로의 여행은 어쩌면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나오고 밤늦게 들어가면서 최대한 호텔에 있는 시간을 줄여보자라고 긍정회로를 돌려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이럴 때는 참 도움이 된다. 금방 불행을 이겨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장점, 그 이후로 나는 (호텔방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즐겁고 행복하게 홍콩을 여행했다. 처음에는 고무줄 같아서 충격적이었던 에그 누들도 자꾸 먹다 보니 나중에는 맛있게 느껴졌고 먹지 못했던 에그타르트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살까지 찐 여행이었다. 호텔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다 보니 힘들지만 여러 여행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닐 수 있었고 삼시세끼 모두 각각 다른 식당에서 먹으며 다양한 맛도 느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홍콩에 근사한 박물관들이 홍콩의 매력에 새로움을 더해주었고 나중에는 이런 전시관, 박물관들을 위주로 다니는 문화여행으로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만족스럽고 알찬 3박 4일 여행이었다.  

    

홍콩에서 먹은 베스트 에그타르트(베이크하우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모든 순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 도시의 위생상태나 사람들의 불친절함이 주는 실망감들이 숱하게 존재하였지만 여행은 ‘결국에는’ 즐거운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나 혼자 여행을 온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오롯이 감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불안이 크게 번지기도 했다. 아직 여행을 하면서 소매치기를 당한다거나 무서운 위험에 노출된 적은 없으나 언제든 나에게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상황에 대비하여 긴장은 하고 있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서처럼 형편없는 호텔에 숙박하게 되었을 때 나와 함께 새로운 호텔의 금액을 부담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누군가 말이다.

        

또 먹고싶은 에그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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